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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09)

― '둘만의 시간', '경쟁만의 세상', '오랜만의 재회' 다듬기

등록|2009.06.10 18:11 수정|2009.06.10 18:11

ㄱ. 둘만의 시간

..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나고 오십은 릴리를 택시에 태워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둘만의 시간이 되자 오십은 기다렸다는듯이 팔로 그녀를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  《앤 차터즈,사뮤엘 차터즈/신동란 옮김-나는 죽음을 선택했다》(까치,1977) 21쪽

 "크리스마스(Christmas) 파티(party)"는 "성탄절 잔치"나 "예수님오신날 잔치"로 다듬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녀'는 사람이름 '릴리'로 고쳐 줍니다. 또는 덜어내어 "팔로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로 적어 봅니다.

 ┌ 둘만의 시간이 되자
 │
 │→ 둘만 있는 시간이 되자
 │→ 둘만 남은 시간이 되자
 │→ 둘만 있게 되자
 │→ 둘만이 있게 되자
 │→ 둘만이 오붓하게 있자
 └ …

 사이좋은 두 사람이 있는 시간은 애틋합니다. 살가운 둘만 있는 시간은 오붓합니다. 누구도 끼어들지 않고, 아무도 해코지하지 못합니다. 스스럼없이 팔로 안고, 즐겁게 입을 맞춥니다.

 ┌ 둘만 느끼는 기쁨 (o)
 └ 둘만의 기쁨 (x)

 도타운 둘이서 기쁨을 누립니다. 오붓한 둘이서 즐거움을 나눕니다. 사랑하는 둘이서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을 맛봅니다.

 ┌ 둘만 있는 자리 (o)
 └ 둘만의 자리 (x)

 두 사람은 어딘가에 '있'습니다. 두 사람은 어느 시간에 함께 '있'습니다. 즐거움이든 기쁨이든 두 사람이 언제나 같이 '있'는 곳에서 즐거움을 맛보고 기쁨을 맛봅니다. 때로는 슬픔을 맛보고 때때로 아픔도 맛볼 테지요.


ㄴ. 경쟁만의 세상

.. "이런 경쟁만의 세상에서 죽도록 달려야 한다면 차라리 죽음에서 평화를 찾음만 못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  《리영희-스핑크스의 코》(까치,1998) 132쪽

 이 자리에서는 '경쟁(競爭)'을 그대로 둘 때가 한결 낫다고 느낍니다만, 다른 자리에서는 '겨루기'나 '다툼'이나 '싸움'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스치는 순간(瞬間)"은 "스치는 때"나 "스치는 그때"로 다듬습니다.

 ┌ 경쟁만의 세상에서
 │
 │→ 경쟁만 있는 세상에서
 │→ 경쟁만 판치는 세상에서
 │→ 경쟁만 넘치는 세상에서
 │→ 경쟁만 울렁거리는 세상에서
 └ …

 경쟁만 있는 세상은 '경쟁 세상'입니다. 싸우기만 하는 세상은 '싸움 세상'입니다. 다투기만 하는 세상은 '다툼 세상'입니다. 사랑이 없고, 믿음이 없으며, 나눔이 보이지 않는 세상입니다.

 경쟁만 판치고 경쟁만 넘칩니다. 경쟁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고 메슥거립니다. 경쟁 때문에 얼이 나가고 넋이 빠집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경쟁에 넋이 나가 삶다운 삶을 놓치거나 내버리는지 모르고, 삶다운 삶을 놓치거나 내버리면서 생각다운 생각을 놓치거나 내버리고, 또 말다운 말을 놓치거나 내버리는지 모릅니다.

 옳게 꾸리는 삶을 잊고, 옳게 가다듬는 생각을 잊으며, 옮게 가다듬는 말을 잊습니다. 우리 마음밭에는 언제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으나 우리 스스로 아름다움을 깨우지 않고, 우리 손으로 아름다움을 북돋우지 않으며, 우리 온몸으로 아름다움을 껴안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삶에 따라 아름다운 생각이요 아름다운 말인데, 하루이틀 경쟁이 시달리고 목매달고 발목잡히면서, 아름다운 넋보다는 바빠맞는 넋으로, 아름다운 얼보다는 돈밝히는 얼로 고꾸라집니다.


ㄷ. 오랜만의 재회

.. 그러니까, 어렸을 적 친구와 오랜만의 재회 …… ..  《니노미야 토모코/고현진 옮김-음주가무연구소》(애니북스,2008) 105쪽

 '재회(再會)'는 '다시 만남'으로 다듬습니다. '친구(親舊)'는 '동무'나 '어깨동무'나 '놀이동무'나 '소꿉동무'로 손질해 줍니다.

 ┌ 오랜만의 재회
 │
 │→ 오랜만에 만나는
 │→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 …

 오랜만에 보는 일, 오랜만에 만나는 일, 오랜만에 해 보는 일, 오랜만에 겪는 일입니다. 우리들은 예부터 토씨 '-에'를 붙여 "오랜만에 어찌어찌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오랜만의 만남이다"가 아닌 "오랜만에 만났다"이고, "오랜만의 운동이다"가 아니라 "오랜만에 한 운동이다"이며, "오랜만의 외식이다"가 아니라 "오랜만에 바깥밥을 먹는다"입니다.

 ┌ 오랜만에 겪는 일이다 (o)
 └ 오랜만의 경험이다 (x)

 그러나 '-에' 토씨가 아닌 '-의' 토씨를 붙이는 분이 적잖이 늘어납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날마다 무섭게 늘어납니다. "오랜만의 회포였어"나 "오랜만의 영화 구경이었어"나 "오랜만의 외식"처럼 자꾸자꾸 씁니다. "오랜만에 옛이야기를 나누었어"나 "오랜만에 영화를 구경했어"나 "오랜만에 밖에서 밥을 먹었어"처럼 올바르게 적는 분이 나날이 줄어듭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잊으면 우리 마음바탕을 잊고, 우리 스스로 우리 글을 잃으면 우리 생각바탕을 잃고 마는 흐름을 놓치고 있습니다. 말에 담는 삶자락을 놓치고, 글에 싣는 삶결을 놓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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