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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집을 부숴요?"

소방도로 만들기 위해 마을 집 철거하는 풍경

등록|2009.06.11 09:23 수정|2009.06.11 14:36

▲ 건물에도 사형선고가 있다. 붉은 스프레이로 그려진 철거라는 글씨. 코스모스가 철 모르고 피었다. ⓒ 전용호


철거. 그 불편한 단어를 만나다

아침에 길을 가다가 담장을 가득채운 커다란 붉은 글씨와 마주쳤다. 철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가 살던 집도 아닌데…. 매일 지나치는 골목일 뿐인데…. 붉은 스프레이로 꿈틀거리며 써진 글씨는 나의 머리에서 강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철거(撤去)는 사전적인 의미로 건물이나 시설 따위를 무너뜨려 없애거나 걷어치운다는 뜻이다. 그 뜻을 떠나서 단어의 어감도 강할뿐더러 행위자체도 일방적인 힘의 논리가 강하게 배어있다. 굳이 최근 참사를 일으킨 사건을 말하지 않더라도…. 거기다가 붉은색 글씨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문구로도 보인다.

매일 아침 만나는 풍경

아침저녁으로 지나가는 마을은 옛날부터 살던 집들과 골목이 그대로 남아있는 소미(小美)마을이다.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무척 정감이 넘치는 이름을 가졌다. 하지만 도시화를 거치면서 마을 바로 앞 넓은 들판은 커다란 아파트와 상가들에게 내주었다. 반면 산비탈에서 오랫동안 살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도시 가장자리로 밀려 앉았다.

▲ 곧 부셔질 것을 예고하는 철거라는 글씨와 붉은 가위표. ⓒ 전용호


▲ 마을은 조용하고 한가롭기만 하다. ⓒ 전용호


큰 도로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작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큰 길로 다녀도 되지만 굳이 구불거리는 골목을 따라 걷는다. 집들 사이로 작은 텃밭에는 고추며 가지들이 자란다. 콩 잎이 땅을 덮어가고, 옥수수 큰 잎은 하늘로 팔을 펼쳐가고 있다. 담장너머로 자두가 여물어가고 비파가 익어간다.

골목길로 들어서면 아침마다 마주치는 할아버지가 한분이 있다.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면서 지팡이에 의지한 채 밭으로 일 나가시는 할아버지. 불편한 몸에 행동이 느리다 보니, 서로 마주치면 멋쩍게 미소를 지으신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인사를 하게 되었다.

오늘도 그 집 앞을 지나간다. 그 할아버지 집 대문 양쪽에는 붉은 가위표가 그려졌다.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더니….

바로 뜯겨지는 집

낮에 다시 마을을 찾았다. 집은 이미 창틀과 대문들이 뜯겨졌다. 열심히 담장 앞을 쓸고 있는 분이 계셔서 물었다. "혹시 사시던 분들은?" "아마 보상 받고 나갔을 거요?" "그럼 철거하시는 분이세요?" "고철이나 있나 보려고 왔는데…" 나이 드신 아저씨는 곧 철거될 집이지만 창틀을 뜯어내면서 떨어진 유리조각을 쓸어 담고 있다.

▲ 자주달개비가 곧 다가올 운명을 모르는 채 환하게 웃고 있다. ⓒ 전용호


▲ 철거가 예고되면 먼저 창문과 문들이 뜯겨진다. ⓒ 전용호


뜯겨진 창문사이로 거실의 소파가 덩그렁 놓여있다. 주인을 잃어버린 소파는 아직 다가올 운명을 모르는가 보다. 오랫동안 사람 품에 기대어 지내왔을 터인데…. 살던 주인은 가져가지 않았다. 새로운 소파를 샀던지, 아니면 좁은 집으로 옮겼던지….

무너진 잔해 위로 포크레인이 점령군처럼

다음날 그 마을길을 다시 걸어간다. 철거라는 글자 대신 무너진 집과 담장이 눈을 막아선다. 무너진 담장과 집 위로 커다란 포크레인이 긴 부리를 휘저으며 집을 헤집고 있다. 개가 무서워 내 뒤를 졸졸거리며 따라오던 꼬마가 물어온다. "왜 집을 부숴요?"

▲ 집은 포크레인 앞에 힘없이 무너져 버린다. ⓒ 전용호


▲ 곧 지도에서 사라져갈 집 ⓒ 전용호


▲ 집은 철거라는 이름표를 받은 후 하루만에 뜯겨져 버렸다. ⓒ 전용호


어제 철거라고 써진 글씨를 봤다고 한다. 아이의 눈에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가 보다. 이 아이도 매일같이 학교를 가면서 수도 없이 지나쳤던 집이었는데…. '집을 철거한 이유는 좁은 골목길에 소방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서란다.'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면…

소방도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10여 채의 집들이 철거된다. 철거로 인한 충돌이나 저항은 없다. 하지만 오랫동안 살아왔던 터전을 비워주고 떠나야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가 떠나는 일. 금전적인 보상에 서운함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닐 것 같다. 떠나는 사람도, 남은 사람도….

▲ 철거가 완료되면 큰 도로가 지나가고 마을도 바뀌겠지. ⓒ 전용호


▲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길도 며칠 후면 영영 다시 볼 수 없는 골목길이 될 것이다. ⓒ 전용호


철거가 완료되고 도로공사가 마무리되면 마을길은 더욱 넓어지고 차량통행이 원활하게 되겠지. 하지만 정감 있던 골목길은 사라져 버리고 철거된 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마을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어느 세월 후에는 또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마을을 비워줘야 할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소방도로를 만들기 위해 철거되고 있는 마을은 여수 문수동에 있는 소미마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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