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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국 핀 헤이리 언덕에서 상생을 생각한다

헤이리에서 할미꽃이 사라진 사연

등록|2009.06.11 10:54 수정|2009.06.11 10:54
노란 금계국金鷄菊이 한창입니다. 얼핏 코스모스의 자태가 나나기도 합니다. 같은 국화과이며 원산지가 북미인 점도 같습니다만 코스모스의 여리고 하늘하늘한 맛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꽃모서리가 금빛이며 닭 볏을 닮은 연유로 금계국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 꽃은 외롭게 한두송이가 피기보다 군락을 이루면 장관입니다. 헤이리에도 지금 곳곳에 금계곡이 만개해서 노란 맵시를 뽐내고 있습니다.

▲ 금계국이 만개한 헤이리 벚나무골 ⓒ 이안수



헤이리는 이웃 간 담이 없는 마을입니다. 담뿐만 아니라 대지 경계선이 확연히 들어나는 어떤 물리적 방법도 금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자신의 땅 경계를 따라 울타리로 느껴질 방식으로 나무를 식재하거나 돌로 표식을 하거나 하는 일체의 행위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자칫 마음의 담일 수 있는 높은 담장을 만들기보다 담이 없는 불편을 감수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헤이리에서는 한 집의 조경이 이웃집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런 연유로 이웃 간에 공유하고 있는 몇 가지의 조경원칙이 있습니다. 너무 인위적이지 않을 것, 이웃집간의 조화를 우선할 것, 본디부터 우리 땅에서 나고 우리 땅에서 자란 나무와 꽃을 우선할 것 등입니다.

헤이리 건설 초기에 갈대광장을 비롯하여 곳곳에 할미꽃을 식재하고 메밀을 비롯한 몇 종류의 야생화 씨앗들을 뿌린 적이 있습니다. 모종을 심은 할미꽃은 활착에 성공해 한두 해는 소박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대처에서 온 사람들이 야생화는 채취 가능한 것으로 알고 한 두 뿌리씩 캐어가 버렸습니다. 지금은 갈대광장 언저리 어디에서도 할미꽃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파종된 야생화 씨앗들도 한두 해는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도 했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점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야생화도 인공화 된 곳에서는 결코 스스로 활착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증명한 셈입니다. 야생화야말로 진정 야생의 상태가 최상의 삶의 터전일 테니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파종하고 방치하는 건달농법에도 불구하고 본디 우리 꽃이 아니었던 이 금계국만은 번식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금계국의 굳건한 생명력덕분에 6월이면 헤이리 곳곳에서 만발한 금계국을 만날 수 있습니다.

▲ 금계국은 강한 생명력으로 인공화된 어떤 땅에서도 쉽게 생존합니다. ⓒ 이안수



1910년대에 처음 한국에 도입된 텍사스가 고향인 이 금계국은 귀화한 식물들의 특성인 강한 생명력과 자생력 때문에 요즘에는 각 지방 거리의 조경으로도 흔해진 꽃입니다. 둑길 주변뿐만 아니라 도시인근의 사람들이 땅에 손을 댄 어느 지역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듯 토양을 가리지 않는 뛰어난 적응력뿐만 아니라 풀 상태로도 겨울을 날 수 있습니다. 다 익은 꽃씨가 땅에 떨어지면 바로 발아하여 다시 자라다가 추위가 닥치면 그 상태로 성장을 멈추고 월동을 합니다.

이렇듯 이 꽃의 강한 생명력이 헤이리 사람들을 고민하게 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너무 강한 자생력은 다른 토착식물들의 생육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가꾸지 않아도 그 다음해 더 많이 피고, 그 다음에는 더욱 많아진다면 이것은 두려움입니다.

▲ 금계국의 너무 왕성한 생명력이 토생식물과의 조화를 염두에 둔 사람들에게는 두려운 요소이기도 합니다. ⓒ 이안수




이 지구상에 인간이라는 한 종이 너무 번식에 성공한 나머지 수많은 다른 종들이 멸종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인간의 도구 발명능력과 환경의 적응력이 다른 종들에게 재앙인 것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금계국의 지나친 번식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일부 이웃들은 이 금계국을 뽑아버리기도 했습니다.

금계국의 꽃말은 '상쾌한 기분'입니다.
경사지에 노랗게 흐드러지게 피어서 바람에 몸을 맡기고  무대 위의 능숙한 발레리나처럼 몸을 흔드는 모습을 보면 우울했던 마음도 금방 밝아집니다. 그 짙은 향은 저의 발길 뿐만 아니라 벌과 나비도 유혹함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 노란 금계국은 코스모스를 닮아 푸른 하늘과 더 조화롭습니다. ⓒ 이안수




사람에 의해 상처 난 땅을 이 노란 꽃으로 메워 상쾌한 기분을 회복하게 하는 금계국. 그 금계국에 의해 자리를 내주어야하는 여린 야생화. 금계국 핀 헤이리의 언덕에서 조화와 어울림을 생각해 봅니다. 이즘 우리 사회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상생이기 때문입니다.

▲ 노란집과 조화를 이룬 금계국 ⓒ 이안수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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