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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날 새벽, 평사리를 추억하다

[서평]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평사리를 추억함

등록|2009.06.11 20:09 수정|2009.06.11 20:09
평사리 작품들은 문화사적 관심에서 해체 이전 마을의 정경을 담은, '상처 사랑하기'의 사진적 사랑법이다. 사진을 통하여 해체된 시골마을, '해체된 문화'의 씁쓸함을 복원하고 싶었다. 사진의 애수를 통하여, 내면 가득 고여 오는 '인간'과 '문화'에 대한 질문을 삶의 교역장에서 느끼고 싶었다. '사라지는' 삶의 문화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삶의 인정(人情)을 가슴 가득 채우고 싶었다.- 민병일의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머리말에서

▲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평사리를 추억함 겉그림 ⓒ 열림원

민병일의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열림원 펴냄)은 2000년대 이전, 그러니까 지금처럼 관광지가 되기 이전 농사를 지는 사람들이 살던 그 '평사리'를 추억하는 사진집이다.

타지의 나그네가 내 집 담 곁을 지나다가 빨갛게 익은 앵두를 한 움큼 따먹어도  큰소리치지 않고 빙긋 웃으며 함께 나누어 먹던 사람들이 더 많이 살던 그 곳 '평사리'를 추억하는 사진집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토지>(박경리 작)의 배경 무대로 널리 알려진 '평사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평사리'는 <토지>와 '박경리'만큼 우리에게 유명하다. 사람들은 평사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내게 평사리는, 드라마 <토지>를 재미있게 보던 그 여름날 밤의 매캐한 모깃불과 함께 기름진 고래실논 가득 출렁이던 벼와 누렇게 바랜 무명바지, 돌담 옆에 서서 수군거리는 사람들 등 옛 농촌에나 가야 볼 수 있는 풍경들로 기억되고 있다.

때문에 민병일의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속 평사리는 내게 애틋하다. 그립다. 평사리만큼 유명한 곳도 아니고, 지금도 친정 부모님께서 해마다 농사를 짓는 곳 그곳 내 고향이, 우리들이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풍경들이기도 하기에. 때문에 아쉽고 쓰리기도 하다.

사진집에서 만난 그립고 애틋한 풍경 하나 둘 셋...

▲ 그대 듣는가, 저 속삭임을... ⓒ 민병일


'그대 듣는가, 저 속삭임을'은 이 도록에 실린 사진들 중에서 내게 가장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잘 익은 치자 열매가 세숫대야 안에 들어있고 주위에는 두 켤레의 흰 고무신이 멈춰 있다. 고무신은 이 집 주인인 두 내외의 것이다. 내외가 이 나이까지 함께 살고 있다니! 이 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부부는 한 생애를 맑게, 열심히 살았고 하얀 고무신은 나란히 놓여 햇빛을 잘 받는다. 그 모습 속에 두 사람이 살아낸 이야기가 소롯하게 배어 있다. 마루의 기둥에 박혀있는 오래 묵은 나무의 나이테가 치자 열매와 고무신을 바라보는 모습도 따뜻하다.-곽재구 시인의 발문 중

▲ 말하렴, 넌 이제 어디로 가니?(1998년) ⓒ 민병일


▲ 거대한 짐(1997년)/푸른 시간의 흰빛(1997년) ⓒ 민병일


시골 태생이라면 누구나 부엌이나 주방보다는 '정지'라는 말을, 가마솥 가득 메주콩 삶아 만들던 날의 달짝지근한 냄새와 펄펄 끓는 아랫목을 추억하리라. 푹 퍼지게 잘 삶아진 콩이 이제 갈 곳은 어디? 이 콩들은 메주가 되고 된장이 되어 도회지 어린 손주에게까지 갈테지. 참 많은 것들이 오염 되어버린 오늘날, 어머니의 먹을거리들이 가장 진실하다는 것을!

접시하나, 대접 하나 참 귀하던 시절 시골 동네에 그릇을 가득 실은 트럭이 오곤 했다. 트럭이 동네에 도착,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할 마이크도 꺼내기 전 마을의 아녀자들과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리하여 필요한 그릇들을 사곤 했는데 몇 달에 한번씩 오는 이 트럭에서 그릇을 고르는 엄마의 얼굴이 참 진지하고 행복했었다.

선이 잘못 그어졌거나, 그릇이 거칠거나 등 아주 조금씩의 하자가 있어서 도시의 그릇 전에서는 팔 수 없는 것들이라 값싸고 볼품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순정한 시골 아낙네인 어머니는 진지하게 고른 이 그릇들을 윗목 찬장에 모셔두고 명절이나 곗날 등 많은 손님이 오는 특별한 날들에만 썼다. 그것도 이가 나갈까 아주 조심스럽게.

이제 이런 그릇들은 시골에 가도 쉽게 볼 수 없다. 이처럼 투박하고 무거운 그릇들 대신 얇고 매끈한 도자기 그릇들과 여러모로 쓰기 편한 플라스틱 용기들을 대부분 쓰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보며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투박한 그릇들이 옛 농촌 사람들을 닮았다는 걸. 그런데 아쉽다.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는 우리의 농촌이 사과 궤짝에 버려진 그릇들 같아서.

작가는 이 사진 제목을 '거대한 짐(1997년)'이라고 붙였다. 먹고 사는 일은 언제나 우리들의 가장 큰 짐이다. 정말이지 먹고 산다는 것은 크고 무거운 짐이다. 때문에 이런 제목을 붙였나 보다. 이 사진을 보면서 내 어린 시절 그릇 트럭이 올 때마다 가장 진지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그릇을 고르던 젊은 날의 어머니와 동네 어르신들의 젊은 날들이 떠올랐다.

사진들은 <토지>라는 소설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고, 드라마로 더욱 더 유명해지고, 이 유명한 소설의 배경이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서 사라진 모습들이다. 나쁘게 표현하면 개발과 발전이란 명목으로 우리들이 버린 모습이요, 빼앗긴 모습이랄 수 있다.

작가가 이 사진들을 찍은 것은 1993년~1998년이다. 이후 평사리에는 소설 속 최참판댁과 분이네, 용이네 등이 들어섰다. 최참판댁에 하동 평사리 문학관도 들어섰다. 이렇게 발전한 평사리를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그곳읋 다녀온 사람들 입을 빌리면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가게가 들어섰단다.

평사리가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많이 변해버렸는지 저자는 "…그리고 2007년 봄 십 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이 작은 마을에서 길을 잃었다. 내가 기억하는 흙길은 지워지고 길 위에 또 다른 길이  포장되고 건물이 섰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라지는 삶의 문화에서 사라지지 않는 삶의 인정을 가슴 가득 느끼고 싶었다"

▲ 평사리(1998년)/언젠가 내가 너를 잃어버릴 때, 너는 잠들 수 있을까?(1998년) ⓒ 민병일


▲ 평사리의 문고리들 ⓒ 민병일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속 평사리는 우리들이 개발과 편리라는 명목으로 기록할 겨를조차 없이 얼떨결에 놓고 버려야했던 우리들 고향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런 사진집이 더 귀중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또 다른 수많은 평사리들을 어떤 누가 이렇게 살갑고 친절하게 담아 우리 곁에 놓아줄 수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여러날 새벽, 푸르디 푸른 섬진강과 악양 벌판이 있는 이 사진집을 들췄다. 새벽 어스름속 깨어나던 고향을 떠올리며. 저자가 처음 평사리에 가서 첫사랑 때의 울렁거림과 설렘을 시작하던 날 동행, "저 집은 분이네, 저 집은 용이네…"라며 동네를 돌았다는 소설가 박완서는 평사리와의 첫 만남 그 감동과 함께 이렇게 적고 있다.

"…그동안 하동군은 평사리에다 덩그렇게 최참판댁을 복원했다.…(중략)…선생님은(박경리) 대체로 만족하신듯 하였으나 나는 영영 사라져버린 옛 평사리의 잔영만이 눈에 밟혔다.  소설 속 허구를 진짜로 있었던 사실로 여겼던 것처럼 복원한 것이 옛모습인지 사라져버린 것이 옛 모습인지 헷갈려서 심난했다.…(중략)…역사는 돌고 돈다던가. 평사리는 복원된 최참판댁으로 인하여 농경시대와는 또 다른 산업화 시대의 걸맞은 새로운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평사리를 지나는 길손들아 걸음을 멈추어라. 그리하여 당일치기 관광객이 되지말고 백년의 세월을 소요하는 나그네가 되어보지 않겠는가. 이 사진들이 그대에게 그런 마법을 걸 것이다."-박완서
덧붙이는 글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평사리를 추억함 (민병일 사진집 / 열림원 / 2009.5 /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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