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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유해발굴단장이 "매우 유감" 밝힌 까닭

[현장] 공주 왕촌 집단암매장지 유해발굴 '첫 삽'

등록|2009.06.12 21:14 수정|2009.06.13 16:45

▲ 박선주 민간인집단희생 유해발굴 조사단장이 공주 왕촌 암매장지 유해발굴에 앞서 희생자들에게 제를 지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박선주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가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매우 유감'이라는 글자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했다. 

12일 오후 2시 충남 공주 석장리박물관 앞에서 진실화해위 주최로 열린 공주 왕촌 희생자 추모제 및 개토제 행사장에서 경과보고를 겸한 인사말을 통해서다.

박 교수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민간인집단희생 유해발굴 조사단장을 맡아 한국전쟁전후 민간인집단희생 사건에 대한 유해발굴을 총지휘하고 있다. 

또 이날 유해발굴을 시작한 공주 왕촌 암매장지에 대한 유해발굴팀을 이끄는 책임연구원이기도 하다. 그는 민간인집단희생사건 외에도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가 이날 공식 인사말을 통해 '매우 유감'이라고 밝힌 것은 진실화해위의 민간인집단희생자에 대한 유해발굴 사업이 올해를 끝으로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진실화해위는 2007년과 2008년 한국전쟁전후 일어난 전국 7곳의 민간인집단희생지에 대한 유해발굴 작업을 벌여 1000여 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올해는 충남 공주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과 경남 진주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전남 함평 불갑산 사건, 경북 경산코발트광산 사건 등 4곳에 대한 유해발굴 사업이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이는 전국에 산재한 수백여 곳의 민간인 집단희생 암매장지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올해 예정된 암매장지 외에 더 이상의 유해발굴 계획이 없다.  

박 교수는 이날 인사말을 이렇게 마감했다.

"정부와 국회에 유해발굴 사업의 필요성을 적극 알리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당부드립니다"

김동춘 상임위원 "산적한 과제 풀기 위해 슬기 함께 모아야"

그가 최선의 노력을 당부한 대상은 진실화해위 관계자들이고 개토제에 참석한 유가족들이다. 하지만 그가 유감을 표명한 진짜 대상은 정부와 국회다.

▲ 진실화해위 김동춘 상임위원 ⓒ 심규상


연단에 선 김동춘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인사말을 통해 "아직까지 많은 일들이 산적해 있고 더욱 많은 집단희생지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산적한 과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많은 분들의 슬기가 함께 모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의 '유감표명'에 대한 우회적인 공감의 답변이라 할 수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희생자 유가족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토해냈다.

대전 산내에서 아버지를 잃은 한 유가족은 "올해로 유해발굴이 중단되면 대전 산내 암매장지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며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암매장지에 수십 년 동안 유해를 방치해 왔는데 유해발굴 작업이 시작되자마자 중단돼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곽정근 공주유족회장도 인사말을 통해 "오늘 위령제를 겸한 개토제가 정부와 국회 그리고 지역민의 각성을 촉구하는 마당이 되기를 바란다"고 꼬집었다.   

땅 속 진실규명 첫 삽... 공주시 관계자 "유가족 아픔과 고통 위로"

한편 이날 공주 왕촌(일명 살구쟁이) 집단 희생 암매장지 유해발굴을 알리는 개토제가 열렸다. 이에 따라 두 달간의 일정으로 59년 만에 땅속 진실을 밝히는 유해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곽정근 공주유족회장은 "참으로 긴 세월이었다"며 "이제 비록 유해나마 밝은 햇빛을 보고 보다 안락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잊혀지고 왜곡된 역사가 진실의 역사가 되고 아픔과 한이 화합과 상생으로 거듭나는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진실화해위 관계자 및 희생자 유가족들이 공주 왕촌 민간인집단희생지 현장에서 첫 삽을 뜨며 유해발굴 시작을 알렸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 공주 왕촌 희생자 위령제에서 공주 구룡사 진명스님의 천도제 바라춤 ⓒ 심규상


위령제 추도사를 거절해 사전 논란을 벌였던 공주시에서도 관계자가 참석해 추도사를 통해 유가족을 위로했다.

공주시장을 대신해 참석한 공주시 관계자는 "유가족들의 오랜 아픔과 고통에 위로를 표한다"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발굴현장에서 열린 유해발굴을 알리는 시삽식에도 참석해 유가족들과 함께 첫 삽을 떴다.

이에 따라 김동춘 진실화해위 상임위원도 "개토제 행사를 물심양면 협조해 준 공주시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답례했다.  

이날 개토제 및 위령제는 희생자 암매장지가 마주 보이는 석장리 박물관 앞 금강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김동춘 진실화해위 상임위원과 곽정근 공주유족회장, 박선주 충북대 교수(민간인 집단희생 유해발굴 조사단장), 전국유족회 김종현 상임대표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노용석 진실화해위 유해발굴담당의 사회로 대전산내 유가족인 전숙자씨의 추모시 낭독과 공주 구룡사 진명스님의 천도제 바라춤, 희생자에 대한 제례 등 순서로 진행됐다.

공주왕촌 집단희생 현장은 1950년 7월 중순경 당시 공주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수백 명이 트럭으로 실려와 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희생된 사건이다

▲ 한 유가족이 공주 왕촌에서 희생된 가족의 유품을 태우며 명복을 빌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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