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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백일간의 '해직의 아픔'을 돌아보며

서울 양천고에서 파면 받은 저, 소청위에서 징계 무효 판정 받았습니다

등록|2009.06.13 15:59 수정|2009.06.15 15:26

양천고 교문 앞 문화제 사진(저의 발언)문화제 행사를 모두 마치고, 제가 일어나서 참석하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말씀을 드렸습니다. ⓒ 양천고 문제 공대위



제 징계무효(복직) 소식을 들은 많은 분들이 저보다 더 기뻐하며 전화, 또는 문자 메시지, 전자우편으로 축하한다고 하는 바람에 요 며칠 정신이 없었습니다. 몇몇 언론의 전화 취재까지 있어 더더욱….

'축하'라는 말이 왠지 낯설고 쑥스럽기만 합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인데, 그것이 과연 축하받을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은혜요,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걱정과 수고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학교로 돌아가면, 물론 이전에도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더욱 좋은 선생님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아파 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물고기가 물밖에 나와 봐야 물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학교로 출근하지 못하고, 교문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면서, 교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고통을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저만 금식하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는데, 저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시로 드나들던 곳인데, 저의 20년 교직생활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곳인데, 저는 들어가면 안 되는 금지구역이었습니다.

물밖에 내던져진 물고기 신세가 되어보니, 많은 상념에 사로잡히게 되더군요. 그중에서도 특히 교실 안에 있을 때, 좀 더 열심히 가르치고, 좀 더 아이들을 챙겨주고, 좀 더 추억거리를 만들어주는 건데, 하는 자책을 했습니다. 

저의 파면이 부당하다는 자필 탄원서150명 이상이 정성들여, 자필 탄원서를 써 주었습니다. ⓒ 김형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지난 백일 간을 가만히 되돌아보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것을 새롭게 경험했습니다(2월 26일 : 징계위 열림, / 3월 9일 : 파면 통보 받음). 마치 내가 아닌 나로 딴 세상을 다녀온 것 같기도, 깊은 어둠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이제야 간신히 기어 올라와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햇빛을 바라보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 정의와 양심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고생을 좀 하겠다는 예상을 했으나,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교사에게까지 그 여파가 미쳐, "파면"이라는 고통을 당할 줄은 몰랐습니다. 

세화의 김영승 선생님과 염광의 황철훈 선생님의 사례에서 보듯, 교육청의 비호 아래, 부패한 사학들이 그동안 속칭 장삿속으로 학교를 운영하다가, 이를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하는 양심적인 선생님들을 눈에 가시처럼 여겨, 일제고사 해직 분위기를 틈 타, 이때다 싶어 무리하게 징계(그것도 교사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파면)를 강행한 것입니다. 양천고 재단은 아직도 보복성 징계가 아니라고 하는데, 엄연히 보복성 징계였습니다(<양천고 참교육 해내> http://cafe.daum.net/yangcheonhs 카페 참조).

전국적인 서명에 정말 고맙습니다.종이서명 2천명, 전자서명 1천명 : 서울에서부터 경기, 충청, 강원, 전라, 경상, 멀리 제주도까지 전국적인 뜨거운 지지와 응원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 김형태


파면 소식이 전해지면서,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은 아닌가 하는 사람들의 눈초리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몇몇 신문과 방송에서, 제가 죄가 없음을 보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저를 살리기 위해, 아니 대한민국의 교육을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주었습니다(자필탄원서 150명, 종이서명 2천명, 전자서명 1천명 : 서울에서부터 경기, 충청, 강원, 전라, 경상, 멀리 제주도까지 전국적인 뜨거운 지지와 응원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정말 많은 분들에게 제가 빚을 졌습니다. 앞으로 빚을 갚는 마음가짐으로 살고자 합니다. 그리고 세상 공부, 인생 공부… 톡톡히 했습니다. 하루는 웃고, 또 하루는 울고,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냉온탕을 오가면서 담금질한 덕분에 제가 많이 단련되었고, 또한 한 단계 성숙해진 느낌입니다(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원도 해보았고, 지금도 여전히 통원치료 중입니다). 

지난 백일, 솔직히 사람 때문에 힘들었고 사람 때문에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천사 같은 많은 사람들을 보내 저에게 힘을 불어넣어주셨고, 저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며 치유해 주셨습니다(파면 이후, 그나마 위안이라면 참으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점입니다. 이 분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길이 이어나가겠습니다). 

파면 전에는 제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도움을 주는 존재였는데, 파면 이후 갑자기 모두에게 부담이 되고 짐이 되는 존재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사사로운 이익을 좇다가 파면을 당한 것도 아닌데, "저 좀 도와 달라"며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초라했는지 모릅니다.

양천고 앞에서 열린 징계무효 축하 문화제바쁘신 가운데서도 참여해 주신, 학생, 학부모, 졸업생, 선생님, 지역주민, 시민단체 회원, 문인, 지인 등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저를 위해 오카리나 연주를 해주신 변규백 선생님과 제 시 '쇠별꽃'을 국악으로 작곡하여, 연주 및 노래해 주신 국악팀 이태원님에게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 양천고 문제 공대위



죽고 싶을 만큼 자존심 또한 심하게 상했습니다. '배운 대로 행동했고 가르친 대로 실천했을 뿐인데, 어쩌다 사람들에게 짐짝신세가 되었고,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나? 올곧게, 바르게 살고자 한 노력이 결국 이런 것이란 말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정말 모든 것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아내는 저에게 "그러게 미친 짓했다"고 하는데, 정말 제가 미친 짓을 한 것일까요? 

아주 가까운 사람들, 믿었던 사람들에게 내쫓김과 배신과 외면을 당하고,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저와 거리감을 두고, 벌레 보듯 할 때, 또는 거지 보듯 할 때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뻔뻔스러울 정도로 끈질기게 버틴 이유는, 바른 소리하면 손해보고 피해보고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명예를 회복하고, 정의가 불의를 이긴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진리임을 학생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이 학생들도 다음에 불의를 보면 그것을 바로 잡으려 노력할 테니까요.

지금 저처럼 예기치 않은 어려움으로 인해, 홀로 밤잠 설치며 울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모든 것이 지나가리라"는 말과 함께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네요. 그리고 사람을 바라보면 실망하니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자기 자신과 함께 하나님(하늘, 진리...)을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말을 꼭 덧붙이고 싶습니다.  

[예화 소개]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

미드라쉬라는 유대교 문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어느 날 보석을 만드는 세공인을 불러 자신을 기리는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라고 지시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답니다.

"내가 큰 승리를 거둬 환희를 주체하지 못할 때 감정을 다스릴 수 있고. 동시에 절망에 빠졌을 때 다시 힘을 북돋워 줄 수 있는 글귀 하나를 반지에 새겨 넣어라."

보석세공인은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지만 이런 양극의 상황을 동시에 만족시켜줄 촌철살인의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며칠을 끙끙대던 세공인은 결국 지혜롭다고 소문이 나 있는 왕자 솔로몬을 찾아가서 해답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솔로몬이 세공인에게 반지에 새겨 넣으라고 알려준 문구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
솔로몬 왕자가 말했답니다.

"왕이 승리에 도취한 순간 그 글귀를 보면 자만심이 금방 가라앉을 것이고, 절망 중에 그  글을 보면 이내 큰 용기를 얻어 항상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이 상황이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기 바랍니다. 현재 어려움에 처한 모든 분들에게 저의 자작시 '절망에서 희망으로'를 선물합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깊은 우유통에 빠졌지만
살아난 개구리가 있다지요.
다들 체념하거나 기도만 하고 있을 때,
그 개구리만이 살기위해 헤엄을 쳤고,
그 필사적인 몸부림과 발버둥이
우유를 응고시키는 바람에 살아났다는……

산 너머 산, 물 건너 물
장애물경기와도 같은 우리네 인생길
때때로 예기치 않은 폭풍우와 눈보라에
엎드려 울 수밖에 없는 연약함을 드러내고……

그러나 물에 빠졌다고 하여
다 익사하는 것은 아니지요.
깊은 어둠은 죽으라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빛을 찾아보라고 엄습하는지도 모르니까요.

운명보다 더 무서운 절망에
꼼짝없이 사로잡혀 있더라도
끝끝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
세상이 감당치 못할 그런 사람에게만
새아침은 돋을볕처럼 찾아오고
인생의 지도 또한 새롭게 바뀌겠지요.

포기하지 않은 개구리가 버터를 만들어 낸 것처럼…… - 리울 김형태

* 시인의 말 : 포기하지 않고, 밤이 맞도록 수고한 베드로에게 찢어지는 그물(물고기가 많이 잡혀)이 주어진 것을 기억하면서, 각자에게 엄습한 오늘의 고난과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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