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청년, 구동백이 있어서 즐거웠다
[TV돌아보기] KBS 2TV 수목 드라마, <그저바라보다가>를 보고
▲ KBS 2TV 수목 드라마, <그저바라보다가> ⓒ KBS
우리 드라마. 그동안 참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 같다. 눈을 뗄 수 없는 현란한 볼거리와 흥미 진진한 내용으로 시청자들의 욕구를 사로 잡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비약적인 발전 속에서도 필자는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감동 캐릭터의 부재에 관한 것이다. 우리 드라마는 그동안 늘 판에 박은 듯한 인물들이 공간과 직업만 바꿔 나오는 듯한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그바보>속 구동백은 뻔하디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로 흐를 뻔했던 드라마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감동을 줬다. 평범한 듯하지만 개성적이고, 유치한 듯하지만 감동이었던 구동백의 매력, 덕분에 18일, 마지막 회를 앞둔 <그바보>는 명품 드라마로 거듭날 수 있었다.
구동백, 현대를 사는 남성들의 자화상
▲ <그저바라보다가>의 구동백(황정민) ⓒ KBS
사실 필자는 처음 <그바보>를 처음 보게 됐을 때, '남자 신데렐라'류 드라마라고 지레 짐작하고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앞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끈 <온에어>나 <스타의연인>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직업의 남자 주인공이 여자 스타와 우연히 만나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랑에 빠지는 흔해 빠진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바보>는 앞선 드라마들과 완전히 달랐다.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에서 큰 차이가 났다. 앞선 두 드라마 남자 주인공들은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데 반해 <그바보>의 구동백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것이다. 사실 <온에어>와 <스타의연인>에서 나온 스타와의 사랑은 있을 법한 일이었다. 매니저(온에어)나 대학교수겸 대필작가(스타의연인) 같은 특별한 일에 종사하는 이들은 스타와 만날 일도 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랑의 감정도 충분히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바보>의 구동백(황정민)은 그저 평범한 우체국 직원이었다. 평범한 직장인과 스타와의 만남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구동백과 스타 한지수(김아중)와의 만남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스타가 평범한 우체국 직원과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앞선 드라마의 남성 주인공들이 훤출한 외모를 지닌 반면, 우체국 직원 구동백은 뭔가 덜 떨어져 보이고 평범하게 생긴 인물, 그의 "아 그렇습니까? 제가 이렇습니다"라는 어색한 말투를 듣고 있으면 보는 이마저 얼굴이 빨개지게 만든다. 인기는커녕, 존재감조차 없어서 '있으나마나' 라는 별명이 붙은 구동백이 과연 매력만점의 여배우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물론 그가 드라마 남자 주인공이니 어떻게든 사랑은 이루어지겠지만 과연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감정이입이 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을 했다. 혹여나 <그바보>의 사랑이 코미디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 감동을 전해준 <그저바라보다가> 구동백, 한지수 ⓒ 곽진성
그래도 비단 가진 것 없고 매력 없는 구동백이라도, 그가 가진 사랑마저 별 볼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주인공 한지수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사랑을 한다. 그녀의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위장 결혼을 하고, 이혼 서류까지 써준다. 자기는 어찌되든 상관 안하는 그런 결핍형 사랑이 바로 구동백의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결국 따뜻한 감동을 전해줬다. 톱스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한지수가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 선택한 남자, 놀랍게도 그 남자는 걸출한 김강모(주상욱)이 아니라 그 바보 같던 구동백(황정민)이었다. 비단 구동백 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바보>의 구동백처럼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이들이 살고 있는 우리 세상. 그런 이들에게 <그바보>의 이야기는 가슴 따뜻한 자극으로 남을 것 같다. 덕분에 그동안 잃고 있던 자신감이 솟는다고 하면 그것은 지나친 과장일까?
아무튼. 이제 마지막 회를 앞둔 <그바보>, 순수 청년, 구동백이 있어서 즐거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덕분에 많이 웃고 감동했으며, 또 울었다. 고맙다. 구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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