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있어도 '증거 無', 대가 입증 못해도 '뇌물죄'
법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을 구분 못한 검찰
▲ 대검찰청 이인규 중앙수사부장이 1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박연차 게이트'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12일 대검찰청 이인규 중수부장은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의 정당성을 피력했다. 또한 "박연차 회장의 뇌물공여 피의사실은 인정된다"고 밝혀 노 전 대통령에게 포괄적 뇌물죄의 혐의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측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검찰이 반성없이 고인을 욕보이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국가의 비극 앞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자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말이다. 검찰의 지금과 같은 태도는 정당한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그랬다. 지난 4·29 보궐 선거운동기간 중 노 전 대통령 수사가 극에 달했고,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참패가 불보듯 뻔했던 4월 30일 노 전 대통령 검찰출두명령과 조사가 이루어졌다. 시점이 좋았다. 누구를 위한 시간맞추기인가 묻지는 말자. 우연이라고 치자.
'후원자'라는 점 간과한 검찰
포괄적 뇌물죄!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기소하려고 했던 적용범죄이다. 이 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쉽게 말해 노 전 대통령 자신과 박연차 회장 간의 '금전수수'와 '대가성'이 있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직접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문제가 된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가족이 받은 사실은 이후 알게 되었다고 인정했다.
노 전 대통령이 가족의 금전수수 사실을 당시 몰랐다면 포괄적 뇌물죄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 이 부분을 검찰은 법적 근거나 사실증거가 아니라 상식 운운하며 언론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문제는 대가성 여부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의 베트남 화력발전소 수주사업을 지원했다며 그것을 대가성의 근거로 들기도 했다. 법적상식을 뛰어넘는 주장이다. 베트남이 대한민국 식민지인가. 그러면 검찰주장이 말이 될 수도 있겠다.
검찰의 논리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의 이라크 등 중동 건설수주 사업을 지원했다면 이것도 범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대한민국 기업들의 해외수주, 수출 등의 지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한편,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수사내용 판단과 달리,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민 모 전 전주지검장, 박 모 부장판사, 이 모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했다. 금전수수는 있었지만 대가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즉 금품수수 자체가 곧 뇌물죄가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연차 회장은 노 전 대통령 측에 금전을 전달한 것은 시인하고 있다. 그러나 대가성이 있는 뇌물을 전달했다고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법적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한 채 노 전 대통령에게 뇌물수수 혐의가 있는 것으로 언론에 기정사실화했다.
언론들은 참여정부 전후로 내내 이구동성으로 박연차를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라고 불렀다. 즉 노무현과 박연차는 특별한 사적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설령 특별한 사적관계가 있는 노무현과 박연차 간에 직접적인 금전거래가 있다손 치더라도 법적으로 뇌물죄의 대가성을 묻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 점을 검찰은 또한 간과하고 있다.
대한민국 검찰! 법적책임을 묻는 것과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은 구분하자. 검찰이 밝혀야 하는 것은 법적 책임여부이지, 도덕적 책임여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1억원짜리 시계나 노 전 대통령 딸 미국집 계약서 등을 조사했다. 이 부분은 노 전 대통령이 도덕적 책임을 질 문제이지 법적 책임을 질 문제는 아니다.
회갑 선물로 건넨 시계 문제를 언론에 흘린 것은 검찰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노 전 대통령 검찰조사 관련 세부내용 등이 언론에 제공된 것은 검찰이 책임질 대목이다.
노 전 대통령을 뇌물죄로 기소하려 했다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이 직접 금품을 수수했다는 증거, 그 금품수수로 박연차 회장이 대가를 받았다는 것을 입증을 해야지, 검찰이 금품수수 자체를 밝힌 것이 뇌물죄가 되는 것처럼 언론에 흘릴 일이 아니었다.
BBK 사건과 박연차 사건에 나타난 이중잣대
검찰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BBK사건 무혐의 결정을 한 바 있다. 이 대통령 스스로 "BBK는 내가 창업했다"는 대학 초청 강연 동영상이 있어도 검찰이 구체적 법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검찰로서는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한편 이해가 간다.
당시 검찰은 도덕적 책임을 이 대통령에 묻지 않았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수사에서 검찰이 보여준 모습은 달랐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 노 전 대통령 수사 내용을 언론에 연일 브리핑하며 흘린 내용이 과연 법적 책임과 관련 있는 것이었는지 검찰 스스로 되돌아 보아야 한다.
현재 검찰에 반성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다. 누구의 지시를 받고 무리한 수사를 했는지 밝힐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법적 책임을 밝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도덕선생 역할을 자임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에 이중잣대를 들이대지는 않았는지, 임기 4년 남은 권력을 무서워하고, 국민권력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였던 것은 아닌지 검찰 스스로 뼈아픈 자기 반성의 시간이 필요한 시기임이 틀림없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이 실감나는 시기다.
덧붙이는 글
남경국 기자는 독일 쾰른대학교 '국가철학 및 법정책 연구소' 객원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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