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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냄새 때문에 이 아비가 아주 죽겠다"

아버지의 금연과 담배 냄새

등록|2009.06.14 17:21 수정|2009.06.14 17:56
늦은 밤, 하루의 마무리를 함께 하는 것은 밤하늘입니다. 별이 잘 보이지 않는 서울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며 담배 한 개비를 꺼냅니다. 가느다란 황색 빛 뿜어내는 가로등, 이따금씩 거리를 배회하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성큼 성큼 뛰어 도망치는 고양이들. 잠든 거리, 작은 숨소리 하나까지도 명료하게 들립니다.

담배에 불을 붙여 길게 연기를 뿜어냅니다. 이런저런 계획, 고민 혹은 열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뜨겁게 타오르던 생의 열기는 잠시 잠들 준비를 합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하루의 마무리는 완벽한 셈입니다. 그러나 꽁초를 재떨이에 던져두고서 집 안으로 들어오면 안방에서 기척이 들립니다. 아버지가 분명해요. 그가 말합니다. 이를테면, "안 자냐?"라고 말하거나 "적당히 좀 피워라." 거나. 전자는 돌려서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직설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솔직히 하시는 거지요.

아버지가 정기검진을 받으신 게 육개월 전입니다. 폐에 이상이 있다는 결과를 받은 뒤로 마음 독하게 먹고 금연을 하셨어요. 금연초, 금연껌 등 온갖 방법으로도 끊지 못한 골초셨기 때문에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40년 가까이 피워온 담배를 어떻게 하루 아침에 끊을 수 있을까요.

얼마 못 간다, 얼마 못 갈거야. 내 생각으로는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그가 그걸 해냈습니다. 대신 문제가 생겼어요. 라이터와 담뱃값을 쓰레기통에 던져두고 아이스크림과 콜라 같은 단 음식을 찾기 시작한 거예요. 그 때부터 아버지의 폭식이 시작된 셈이지요.

불만투성이 이티가 된 아버지, 누가 좀 말려다오

아버지는 이티가 되어버렸습니다. 팔, 다리는 얇았지만 배는 날이 갈수록 남산이 되어갔지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볼 때마다 임신 9개월, 곧 출산이라고 놀려댔지만 아버지는 그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퇴근해 속옷 차림으로 소파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손에는 잠시도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럴수록 늘어가는 것이 비단 임산부 부럽지 않은 배만은 아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짜증이 늘어났어요. 불만투성이가 되어버린 겁니다.

"반찬이 왜 이렇게 싱거워. 소금 좀 팍팍 넣어봐"처럼 평소하지 않던 반찬투정이 시작되었고, "집에 왜 이렇게 먼지가 많아. 오늘 대청소!"라고 말하고는 틈만 나면 온 집안 대청소에 돌입하셨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욕과 짜증이 터져나왔기에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아버지를 피해다니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제게 가장 심한 압박은 바로 담배 냄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담배 냄새 때문에 이 아비가 아주 죽겠다. 너 나 말려 죽일래?"는 기본이요, "저것도 자식이라고 하여튼 호적을 파야 정신 차리지!"는 옵션이고, 어쩔 때에는 개 자식, 소 자식, 열 여덟, 구수하긴 하지만 의미를 함부로 되새기기는 민망한 욕설들이 아버지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집안의 평화를 위해 거국적인 결단을 하라는 가족의 은근한 강요도 계속 되었지요.

고등학교 때는 물론이고 군대 가기 전에는 담배를 손에도 대지 않았더랬습니다. 특별히 필요하다고 느끼지도 않았고  힘들거나 고민이 많다고 해서 무언가에 의지를 하는 성격은 절대 아니었지요. 그렇지만 군대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폐쇄된 공간. 자유와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 그 곳에서는 웃어도 맞았고, 전투화에 광이 나지 않아도 맞았으며, 작업이나 훈련을 못 해도, 말 실수를 조금만 해도 마찬가지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거기서 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개나 돼지에 가까웠을 겁니다. 치약으로 맞고, 전투화로 맞고, 수건으로 맞고,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때로는 훈련 성과가 계속 뒤쳐진다는 이유로 성적이 좋지 않은 몇 명이 야외 세면장에 끌려가 얻어맞기도 했습니다. 열 명 가량의 선임들이 문을 잠가 놓고 각자 맘에 맞는 무기를 들었지요.

누군가는 주먹, 다른 누군가는 대걸레, 누군가는 슬리퍼. 우리를 강제로 앉힌 채 그들은 원으로 둘러싸 집단 폭행을 시작했습니다. 맞고 나면 우리는 피 섞인 침을 뱉어내고는 세면장 뒤로 숨어 들어가 담배 한 대를 피웠습니다. 그 때 그 놈을 배웠을 겁니다. 안에서 자살이나 탈영이라는 단어가 들끓을 때마다 담배 한 개비가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었어요.

훈련장에서도, 전투교장에서도, 화장실이나 막사 앞에서도 그 놈만 있으면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무엇이든 견디어낼 수 있었으니까요. 사회에서도 쉽게 끊을 수 없었습니다. 난 담배를 즐긴다기보다는 그저 견디기 위해 무언가에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위안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아버지와 나의 갈등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서로 각자의 이야기만 할 뿐, 어느 누구 하나 타협하거나 양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렇잖아요? '힘대 힘'으로 맞서는데 싸움이 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짜증과 호소, 변명이 서로의 마음을 긁고 할퀴었습니다.

서로가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담배 냄새' 논쟁은 주변 가족까지도 긴장시키기에 이르렀지요. 누군가는 이해해 달라고, 누군가는 살려 달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각자의 마음, 그 안을 들여다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지요. 아니, 생각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도 귀 기울이면 들릴지도?

누구 하나는 물러서야 했습니다. 밤의 낭만을 버리는 게 어떨지 생각해 보았어요. 건강이나 경제 면에서 금연하는 것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물론 나는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가 서로의 내면을 정확하게 들여다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때때로 서로를 걱정하고 연민하며 지그시 바라보기도 합니다. 늦은 밤에 책 읽다가 불 켠 채로 잠이 든 아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슬며시 불을 꺼주는 아버지, 열두 시간 넘게 일하고 돌아와 속옷 차림으로 소파에 잠이 든 아버지의 어깨와 다리를 주무르는 아들. 늦은 밤 어둠이 그들을 지워버릴 때까지, 터벅터벅 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귓가에서 희미하게 들릴 때까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하고 욕하거나 공격하는 행위는 결국 서로를 무너뜨릴 뿐입니다.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결국 가녀린 육체는 바스러지고, 정신은 한없이 어둠으로 밑으로 떨어지겠지요. 우리는 결국 양립불가능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요?

조금만 더 다가가, 조금 더 귀 기울이면 들립니다. 그래요,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뭐, 그게 꼭 "아, 당신을 사랑한다오!"라거나 "우린 정말 홈드라마에 나오는 행복한 가족"까지는 아니겠지만.
덧붙이는 글 <냄새나는 글>응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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