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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때 묻은 도서관', 패랭이꽃 그림책 버스

그림책버스 이상희 관장에게 도서관운영의 ABC를 듣다

등록|2009.06.16 16:03 수정|2009.06.17 20:35

▲ 박경리 문학공원 옆에 그림책버스가 서 있다. 2004년 5월 1일에 상에 얼굴을 내민 패랭이꽃그림책버스는 올해로 여섯 살이 된다. ⓒ 오승주


천리길을 마다 않고 강원도 토지문학관을 찾아간 이유

서울에서 처음으로 차를 몰아 장거리 주행을 했다. 왕복 300km. 고속도로를 위태롭게 질주하다가 아주 정갈하고 예쁜 길을 만나 한적한 공원으로 들어갔다.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토지문학공원에 머물러 있는(주차됐다기보다) 그림책 버스에 도착한 것은 6월 10일 점심께다. 토지문학공원 한 편, 그림책 버스를 운영하는 이상희 관장(50)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대뜸 그림책 1권을 읽어줬다. 2004년 5월1일 개관식을 할 때 이 관장은 축사 대신 그림책 읽기로 갈음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그림책 사랑'은 남다르다.

그림책을 읽어주고 빼놓지 않는 것은 '읽는 요령'이다. 이상희 관장은 "그림에 많은 설명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감정을 살리거나 구연동화를 읽는 식으로 읽지 말고 담담하게 읽으라"고 조언했다. 불필요한 기교가 오히려 가독성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호흡'은 중요하니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림책의 전개를 보면서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가야 한다는 것이다. 속도만으로 극적 효과를 얼마든지 낼 수 있다.

기자가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강원도를 찾은 이유는 이동도서관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운영에서부터 도서 확보 등 자잘한 질문들을 들고 가서 4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했지만 이상희 관장은 피곤한 기색 없이 오히려 "작은도서관 코디네이터"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기자를 압박했다. 이상희 관장의 말대로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을 수 있는 기반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었다. 오죽했으면 관련 업계에서는 "꼭 책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유독 책이 지원되지 않는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작은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서 준비를 했지만 좌절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실패의 이유는 '운영' 때문이었다. 작은도서관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열의만큼 매뉴얼이 탄탄한 편이 아니다. 도서관 운영에 들어가는 품은 많은데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노하우를 지원받을 수도 없으니 도서관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버텨낼 재간이 없다. 이동도서관을 만들면 A~Z까지의 과정을 세세히 기록해서 새로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분들께 제공할 노하우와 매뉴얼을 만들어볼 생각이 없느냐는 역제안에 당황했다.

하지만 책에 대한 이 관장의 열정에 감탄하기에는 충분했다. 패랭이꽃 그림책 버스는 처음에는 아무 준비 없이 "순진하게" 벌인 일이었는데, 점점 일이 커졌다. 한 출판사에서 버스의 외벽과 내부 페인팅을 무료로 해주었고 지역 방송사와 공무원, 대학 학술원장, 박물관장 들이 말없이 도와준 덕분에 현재의 "도서관 꼴"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이 관장은 누군가 자신처럼 도서관을 시작하는 데 대해서는 손사레를 쳤다. 시행착오가 워낙 많아서 자신처럼 그림책에 푹 빠지지 않고서는 현실적 어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는 도서관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매뉴얼 작업이 절실하다는 말은 인터뷰가 끝나는 동안 계속 강조했다.

'손쉬운 도움'보다는 발품팔아 "손때 묻은 도서관" 만들어야

▲ 에 빼곡히 그림책 버스 지킴이 일정표가 붙어 있다. 자원활동가가 올해로 7기째이긴 하지만 그림책 버스 지킴이 일정표는 언제나 '빠듯한' 느낌이라고 한다. ⓒ 오승주


애초에 인터뷰를 한 목적은 이동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혹시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을까 하여 이상희 관장이 그림책 버스를 시작하면서 부닥쳤던 시행착오를 중심으로 필요한 정보를 재구성해보았다.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는 뜻 맞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다. 도서관 정착을 위해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이라는 단체가 있고 관청의 문화 담당 부서가 있지만 스스로 주체가 되어 힘을 보태는 지역 주민이나 지역 공동체 같은 동료들의 힘이 필수적이다. 패랭이꽃 그림책버스는 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다. 자원봉사자는 매달 달력에 "지킴이 일정표"를 만들어 하루에 두 번씩 교대로 버스를 지킨다. 단지 버스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손님의 상황에 맞게 책을 골라주기도 한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를 신청했다고 해서 바로 그림책 버스에 '투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상희 관장은 자원봉사자가 모이면 반드시 <자원 활동가 과정>(오리엔테이션)을 한다. 현재 자원봉사자는 7기째 이어져 오고 있다. 한 기수에 20명 정도 모인다. 자원봉사자 연수 프로그램은 복잡하지 않다. 그림책 함께 읽기로 시작해서 그림책 읽기로 끝난다. 이상희 관장이 오리엔테이션을 주관하기는 하지만, 스터디 활동을 통해서 충분히 자체 오리엔테이션 효과를 낼 수 있다.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지역 주민들이 주인이 되어 그림책 버스를 운영해 가니 버스가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관장에 따르면 지역에 분명히 도서 커뮤니티가 있다. 지역모임이나 지역 커뮤니티, 특히 책 커뮤니티를 찾아서 도서관 도우미로 참여시키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

이 관장은 "손쉬운 방법"으로 섣불리 도움을 얻으려고 하는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할 관청에 도서관 담당 부서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도서관이 활성화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체로 관청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지원금액 만큼의 투자액이 있어야 하며, '약간의 간섭'을 감안해야 하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정보다. 그리고 공무원 사회의 분위기와 메커니즘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거나 장이 바뀌거나 방침이 조정될 때 공무원은 이에 충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흐름을 잘 파악해야 대처방법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재정지원 등을 안정되게 하기 위해 법인을 만든다든가 외부투자를 받는 데 대해서도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법인체 후원을 받기 위해서는 직원을 고용하는 등 요건을 갖춰야 하고 변호사를 사야 한다. 결국 "좋은 일하자고 돈계산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관장은 초창기 도서관 운동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국립으로 편입되면서 원래 성격이 사라지고, 공공화되면서 오히려 딱딱해지고 관념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세부 매뉴얼이 확장되지 않고 그대로 죽어 버렸다고 평가했다.

결국 지역 주민들과 뜻 맞는 커뮤니티와 힘을 합쳐서 작더라도 하나하나 손때를 묻혀가며 일궈내야 '진정한 도서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춘다는 것이 이 관장의 결론이다.

"1권을 아주 정성껏 읽어주세요"

▲ 두 아이의 엄마가 도서관을 찾았다. 큰아이는 버스 핸들과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다가 곧 앉아서 독서삼매경에 빠져든다. ⓒ 오승주


그림책버스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을 주로 한다. 아이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에 책을 잘 읽어주지 않는다거나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면 금방 싫증을 낸다는 공포감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책 읽어주기"에 나서지 못하게 만든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을지 물어봤다. 이상희 관장은 "1권을 아주 정성껏 읽어주세요"라고 대답했다. 잘 만들어진 그림책은 100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100번 다 다르게 읽힐 만큼 깊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림책을 읽어주기 위해서는 많은 그림책을 읽어 보고 그 중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을 몇 개 골라서 반복적으로 읽는다. 그 책이 완전히 장악되고 다음 책을 읽기 전까지는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황소아저씨 엄마>라든가 <아빠 아저씨> 같이 그림책 제목으로 이름을 만들고 그 책을 집중적으로 읽어주면 아이들에게 나름대로의 캐릭터가 생기고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아갈 수 있다. 레퍼토리가 다양해지면 상황에 따라서 책을 골라서 읽어줄 수 있다. 예컨대 비오는 날에는 <비온 날 생긴 일> 같은 책을 잡고 읽어주면 손님들의 만족도는 더 높아진다.

우리나라 인구당 공공도서관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

▲ 패링이꽃 그림책 버스 이상희 관장은 어느 자리에서고 그림책 읽어주기를 한다. 도서관 개관식에서도 지역 유명 인사와 손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축사 대신 그림책을 읽었고, 자원 활동가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도 그림책 읽기를 중점적으로 한다고 한다. 이날 방문한 기자 앞에서도 그림책을 멋드러지게 읽어줬다. ⓒ 오승주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 비율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07년 12월 말 607개 공공도서관을 조사해서 발표한'전국공공도서관 예산 및 자료 실태조사'에 따르면 1관당 인구수는 8만 1168명이다. 그리고 최근 내놓은 2008 공공도서관 통계 조사 결과에서도 7만 6900여 명에 불과하다. 이는 선진국과 비교해서 적게는 2배에서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도서관 1 곳당 인구 수는 독일 7980 명, 영국 1만 3266 명, 프랑스 1만 4077 명, 미국 3만 1773 명, 일본 4만 1144 명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국민 1 인당 장서 수는 1.18 권으로 미국, 일본이 2.8 권, 프랑스 2.5권 등에 비해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특히 공공도서관 1곳당 어린이 대출자 수는 2007년 1만 9014 명에서 지난해 1만 5570 명으로 3500여 명이나 줄어들었다.

전국에 <작은도서관>을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는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은 2007년도에 75개 도서관을 지원했으나 2009년에는 63개로 오히려 12개를 줄인 실정이다. 그 중에서는 2곳이 문을 닫았고 2곳은 담당자의 개인 사정으로 쉬고 있다. 2008년 지원 도서관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지원대상을 재조정한 것인데 단지 도서관이 운영되도록 지원하는 것보다는 도서관이 지역사회와 어울릴 수 있는 것을 지원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사실 심각한 문제는 1인당 도서관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찾을 만한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공공도서관 1곳당 어린이 대출자 수가 2007년 1만 9014명에서 지난해 1만 5570명으로 3500여 명이나 줄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준 문화체육관광부의 통계는 우리나라 도서관이 점점 재미없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동도서관을 위해 장서를 모으고 있습니다. 도움을 주실 분은 기자의 메일(dajak97@gmail.com)로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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