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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복귀해도, 어떻게 얼굴 마주 보겠나"

[현장] '노노갈등' 지켜본 쌍용차 노동자 부인의 절규

등록|2009.06.16 16:39 수정|2009.06.16 16:39

▲ 16일 오전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공장 점거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파업철회'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사측 직원들앞에서 점거농성 노동자 가족들이 '함께살자'고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권지영(36)씨가 10살 난 딸과 4살 난 아들을 데리고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안에서 잠을 잔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20여 일 전 남편 이금주(37)씨가 동료들과 함께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저 집에서 아이들 잘 돌보면서 뒷바라지만 해주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정부는 2000명이 넘는 대량해고 사태를 두고도 "노사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며 사태해결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은 채 뒷짐으로 일관했다. 게다가 회사 측에서는 정리해고에서 제외된 직원들을 동원해 노조를 압박했다.

16일 공장 안으로 밀고 들어오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공장 정상화'가 명분이었다. 그래서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장 안에 있는 남편도 그것 때문에 싸우고 있는 것이다. 기어코 권씨가 아이들 손을 이끌고 공장 안으로 들어온 이유다.

장미꽃과 함께 아스팔트 위로 쓰러지는 부인들

▲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가족이 '점거농성 중단'을 요구하며 공장 밖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측 직원들의 방송차량을 가로막고 '함께살자'고 호소하고 있다. ⓒ 권우성

16일 오전 7시, 큰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공장 정문 앞으로 나온 권씨는 이미 도착한 정리해고자 부인 20여 명과 인사를 나눴다. 대부분 "울 남편 힘내라"라고 적힌 연두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오전 9시경이 되자, 길 건너편 공터에 그들의 50배가 넘는 숫자의 건장한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정리해고 비대상자들이었다. 그들은 연습이라도 하듯 팔을 치켜들며 연신 "정상조업, 파업철회"를 외쳤다. 긴 쇠갈고리를 들고 금방이라도 공장 안으로 들어올 기세였다. 

무조건 막아야 했다. 급히 다른 정리해고자 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던 부인들이 속속 달려나왔다. 그래 봐야 60여 명. 개중에는 갓난아기를 옆집에 맡기지 못한 채 안고 나온 부인도 있고, 유모차를 밀고 나온 부인도 있다.

일단 흰 천을 길게 이어서 인간띠를 만들었다. '제발, 이 선을 넘지 마라'는 간절한 호소였다. 권씨를 비롯한 몇 명은 흰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해고는 곧 죽음"이라는 의미에서다.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두 명의 동료 노동자를 잊지 말자는 상징이기도 했다. 장미꽃도 들고 나왔다. 같은 직원들끼리 싸우지 말고 평화적인 대화로 해법을 찾아보자는 뜻에서다.

하지만 장미꽃은 남편의 직장 동료들에게 전달도 되기 전에 아스팔트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해 하던 한 부인은 회사 측 방송차량 앞을 가로막고 눈물로 하소연했다. "제발, 우리 함께 삽시다." 아예 차량 앞 아스팔트 위로 드러눕는 부인도 있었다. 곳곳에서 서러움에 북받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같이 한솥밥 먹던 동료들이잖아요."

권씨가 남편과 한 부서에서 일하는 선후배 동료를 발견한 건 그때였다. 정리해고 비대상자들은 부서별로 대열을 만들고 서 있었기 때문에 찾기도 쉬웠다. 남편과 입사 동기로 주말이면 축구동호회에 함께 다니던 사람도 있었다. 10년 넘게 한 부서에서 일하면서, 남편이 '형님, 형님'하고 깍듯이 모셨던 사람도 있었다.

권씨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왜 거기 서 있느냐'고, '제발 이쪽으로 나오라'고….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은 권씨의 입 안에서만 맴돌 뿐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남편의 동료들도 권씨를 발견했지만, 쓴웃음만 지은 채 방송차량에서 나오는 선창 구호를 따라 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일터를 정상화시키자!"

상황이 여의치 않자, 회사 측에서 동원한 정리해고 비대상자들 1000여 명은 서문을 돌아 약 2km를 행진하며 후문으로 향했다. 부인들도 그들을 따라나섰다. 미리 준비한 현수막을 앞세웠다. 현수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솥밥 먹은 20년지기 동료들에게 더 이상 비수를 꽂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 살기 위한, 오로지 살기 위한 공장 점거 파업을 이어가며, 당신들의 동료들이."

"함께 삽시다" 눈물로 호소해 보지만...

▲ 쌍용자동차 사측 직원들이 공장 밖 공터에 모여 '파업철회' '정상조업'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회사 측은 결국 이날 공장 진입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장인 곽상철 전무는 "앞으로 궐기대회와 같은 방식을 통해 노조에 우리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갖겠다"며 제2, 제3의 재진입 시도를 시사했다.

오전 11시 40분경, 공장 후문 앞 공원에서 회사 측 임직원과 정리해고 비대상자들이 모여 정리 집회를 시작했다. 송승기 부장이 무대 차량 위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송 부장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구호를 외치자"며 선창을 하자, 정리해고 비대상자들이 "정상조업, 파업철회"라는 구호를 따라 했다. 송 부장이 다시 "공장 안으로 들어가고 싶죠"라고 묻자, 그들은 "예"라고 크게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공장을 향해 함성을 지른 뒤, 정리 집회는 끝이 났다.

멀리서 집회를 지켜보고 있던 정리해고 대상자들의 부인들 두 눈에 또 눈물이 고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울먹이던 한 부인은 그들이 야속하다는 듯 원망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같은 노동자들끼리 싸우게 만든 사람들이 누구냐? 정부 아니냐. 솔직히 나중에 직장에 모두 돌아간다고 한들, 어떻게 서로 얼굴을 마주 보겠나. 저 사람들은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지 말라는 법 있나?"

부인들은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정리해고 비대상자들을 향해 연신 "함께 삽시다", "공권력은 물러가라", "회사에 속지 마세요"라고 호소했다. 부인들의 두 눈에선 눈물이 뚝뚝 흘렀다. 상복을 입은 한 부인은 입을 틀어막고 서럽게 울었다. 그는 이내 "두 명이나 죽여 놓고 얼마를 더 죽여야겠느냐"고 통곡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또는 수건으로 얼굴을 둘러싼 채 돌아가던 정리해고 비대상자들은 아무 말 없이 그들의 눈물을 힘겹게 외면하고 있었다. 반면 공장 안쪽에서 얼굴에 마스크를 한 채 한 손에 쇠파이프를 든 파업 참가자들은 철조망 담벼락에 매달려 부인들의 절규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회사 측이 모두 돌아간 것을 확인한 뒤, 부인들은 다시 공장 정문 앞에 모였다. 권씨는 "이렇게 사람들이 갈고리에 굴착기로 밀고 들어온다고 해도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은 없다"며 "공장 안에 있는 사람들을 자극만 할 뿐이다. 정부나 회사 관리자 측이 그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그래서 더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목이 멘 권씨가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결국 북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이런 일 없었으면, (사원) 아파트 앞에서 (직장 동료) 가족들이 전부 모여 삼겹살 사다가 구워먹으면서…. (부인들끼리는) 서로 언니 동생 하면서 지냈는데…. 가슴이 미어지고, 너무 아프다."

▲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회원들이 '함께살자'고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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