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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식한 공무원인가 봐요!

진솔의 내음새는 오래 간다

등록|2009.06.16 16:57 수정|2009.06.16 18:02
나이와 상관없이 평생배우며, 이미 배운 것이라도 다시 새롭게 업데이트 된 것이라면 다시 배우는 것이 내 신조이다. 그래서 직무수행하면서 지역 정부기관에서 필요성이 강한 파워포인트 제작이라든지 조직갈등관리 등의 교육에 대한 안내가 올라오면 유심히 보았다.

문의전화가 있었지만 전화를 할 수 없는 청각장애이고, 사적인 일에 가까운 일이라 일하느라 바쁜 옆 동료에게 대신 전화해달라고 하지 않고 게시판에 질문을 했다. 요즘 웬만한 공기관에는 모두 게시판에 질문을 하고 답변도 매일 상세하게 나온다.

질문의 요지는 교육을 받고 싶은데 그러면 교육신청했을때 장애편의는 어떻게 제공이 되느냐는 질문이었고 꼭 답변해달라고 부연까지 했다. 그러나 왠 걸?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답변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몇 개월이 지났고 이번에 다시 꼭 받고 싶은 교육항목이 올라왔다. 총 4일간에 걸쳐 하루 5시간 20시간의 관리교육이었다.

교육대상은 물론 도민이었고 그 정부교육기관의 목표는 양성평등의 성인지적관점의 열린 교육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친한 후배에게 전화로 문의했는데 "청각여성장애인이 교육받고 싶다고요? 여긴 수화통역준비가 안되었는데요.."라는 여성장애인의 교육신청의도가 너무나 뜻밖이라는 반응이었다.

지역수화통역센터와 자원봉사센터 등에도 장애편의에 도움이 되는 통역자원봉사자를 구하기가 어렵고 예산은 전혀 없어서 난감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도민 누구나 평등하게 대상으로 하는 열린교육이 아닌 건강한 여성만 대상으로 하는 부분교육이라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답답해서 지역신문기자로 활동하는 김에 이러한 과정을 어제 보도했다. 보도된 직후 담당팀장에게 연락이 부지런히 왔다. 언론에 기관이름이 거론되면서 많이 혼난 듯하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문제라서 당황한 듯하다.

문자와 메일로 소통하면서 정당한 사유없이 교육의사가 있는데 장애편의가 제공이 안되면 장차법에 위배된다고 전달해주었다. 장차법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내용은 전혀 읽어본 적이 없다고 여자팀장은 진솔하게 답했다.

"선생님! 제가 공무원이지만 좀 무식한 셈이라고 할까요? 부지런히 교육만 계속 진행하고 게시판관리를 잘 못했어요. 이번 일로 좀 놀랐고 혼났기도 했지만, 이번 일이 계기가 되어 저희 센터내에서 장애편의에 대한 예산확보가 잘 되는 전화위복이 되었으면 해요!"

문제를 인정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서 다행이었다. 통역이 있든 없든 교육신청을 했으니 교육날은 나갈 예정이었고, 만약 통역이 없다면 교육진행기간을 내내 기록하여 국가인권위에라도 제소하여 그 기관이 지향하는 열린교육이 실천되게끔 이런 저런 목소리를 모으려고 할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담당팀장이 이리 저리 원만히 노력해서 장애편의는 제공되고 대충 마무리 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일하고 있는 곳에 그 공기관의 소장이 담당팀장과 함께 사전알림도 없이 찾아왔다. 낯익은 것 같으면서도 낯설은 얼굴이다. 그만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10여년 전 민간단체를 창립하면서 업무상 자주 접촉했던 담당계장이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강산보다 사람의 얼굴이 10년이면 이렇게 달라질까 싶을 정도로 나이를 거꾸로 먹은 것 같아 몰라보았다.

하지만 그 소장은 새삼 엊그제 만난 듯이 그동안 참 보고 싶었다면서 계속 과거의 인연들을 이야기하였다. 내가 장차법을 거론하자 장차법의 내용에 대해서도 잘 안다고 하였다.
갸우뚱해졌다. 기관장이 잘 아는데 밑의 팀장이 전혀 모른다면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가?
 이번 기회에 여성장애인에 대한 교육편의를 위해 노력을 많이 하겠다고 하면서 필요할 때 자문도 구하겠다고 웃으면서 말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돌아가는 뒷모습에서 뭔가 숙제를 하나 끝냈다는 노회하고 의례적인 느낌이 풍기던 것은 왜였을까? 오히려 장차법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스스로 무식한 공무원이라고 솔직담백한 담당부서장이 차이를 넘어 함께 열어가는 세상의 좋은 소통의 대상으로서 더 끌리는 듯한 것은 왜일까?

문득 노자의 지자불언 언자부지(知者不言 言者不知)부지가 생각난다.

아는 사람은 말이 없고,  말하는 사람은 앎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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