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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속 몰아넣고 탕!... 돌덩이 채워 매립

[공주왕촌 유해발굴 현장] 속속 드러나는 참혹한 학살 현장

등록|2009.06.17 11:03 수정|2009.06.30 14:05

▲ 돌덩이에 짓눌려 있는 희생자 유해. 가운데 둥근 형태는 희생자의 두개골이다. ⓒ 심규상


▲ 유해 부근에 널려 있는 돌덩이. 상단 푸른색이 탄피이고 오른쪽 둥근 형태는 희생자의 두개골이다. ⓒ 심규상


군경이 공주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을 총살한 후 흙 대신 돌을 채워 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원회 공주 왕촌 유해발굴팀(팀장 충북대 박선주 교수)에 의해 59년간 땅 속에 갇혀 있던 공주 왕촌 살구쟁이 희생자들에 대한 진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유해발굴팀은 유해발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발굴 4일째인 16일에는 5지점의 매장추정지 중 1지점에서 유해 10여 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해 부근에는 5~15kg에 이르는 돌덩이가 널려있었는데, 형태로 볼 때 유해의 몸과 머리부위를 짓누르고 있는 돌덩이가 많았다. 다른 유해발굴 현장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박 교수는 "군경이 사람들을 총살한 후 쉽게 매장하기 위해 돌덩이를 채워 시신을 매립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부서진 두개골의 경우 이 과정에서 돌덩이에 머리를 맞아 깨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매립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시신 위에 돌덩이를 채워 넣었고 부서진 두개골도 돌덩이로 인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 군경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M-1 소총 8발 클립(clip) ⓒ 심규상


총살 직전 상황도 드러나고 있다. 박 교수는 "유해의 형태로 보아 구덩이 안에 몰아넣고 쭈그려 앉은 자세에서 총살한 후 그대로 매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대전산내와 충북 청원 분터골에서 발굴된 유해와 매우 흡사한 형태다.

현재까지 드러난 10여 구의 유해는 대략 20대 초반으로 분석되고 있다. 박 교수는 "1지점에서 대략 20여 구가 매장돼 있고 치아의 마모 상태로 미뤄볼 때 희생자 대부분이 20대 초반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주변에서는 수십 개의 탄피를 비롯해 탄창, 치아들이 발견됐다. 단추와 의족 등 유품도 나왔다.

▲ 훼손상태가 심한 희생자의 드러난 두개골 ⓒ 심규상

하지만 토질이 습한 탓에 유해 대부분이 삭아 없어져 유가족들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토양에 습기가 많아 다른 곳에 비해 유해가 빠르게 훼손된 것이다.

발굴팀은 남아 있는 유골의 경우 손만 닿아도 부서져 내릴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아 진땀을 흘리고 있다. 발굴팀은 이후 표면 경화처리(코팅)로 남아 있는 유해나마 보존하려 하고 있으나, 훼손상태가 심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공주 왕촌 살구쟁이 집단희생 현장은 1950년 7월 중순경 당시 공주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500~700여 명이 트럭으로 실려와 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희생된 곳이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는 충북대 내에 위치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추모관'에 안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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