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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일도 기념하는데 6.15는 왜 안돼?

'전쟁'이 아닌 '휴전'을 기념하는 미국

등록|2009.06.17 20:17 수정|2009.06.17 21:32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9년이 흘렀다. 지난 15일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등 야4당은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을 기념하여 그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냈다. 매년 6.15선언과 관련된 행사에 대한 소식을 접하며 당연히 국가기념일이려니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6.15기념행사는 민간행사였을 뿐이었다. 새삼 놀랐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강산이 변하기 전 6.15는 국가기념일이 될 수 있을까?

'전쟁에서 벗어나는 거대한 발걸음', 6.15선언과 10.4선언

▲ 김대중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김대중평화센터 주최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6·15로 돌아가자!'(Let's Return to 6.15)의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6·15 선언을 탄생시킨 남북정상회담 직후 김대중 대통령은 "더 이상 한반도에 전쟁위협은 없다"고 선언했다. 바야흐로 '6․15시대'로의 진입을 공표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브레인으로 꼽히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1989~1993년)는 6.15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전쟁에서 벗어나는 거대한 발걸음'이라며 그 역사적 의미를 평가했었다. 이후 남북관계는 '6.15시대'에 걸맞게 물자교역은 물론 이산가족 상봉, 개성/금강산 관광 등 인적 교류에 있어 지난 시절과는 확연히 다른 교류양상을 보여왔다.

하지만 '잃어버린 10년'이라며 등장한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관계는 너무도 달라졌다. 유엔에 가입한 양 국가(TWO KOREA) 정상간의 합의마저도 정부 수반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됐다. 이명박 정부의 '악의적 무시'로 인해 쌀, 비료 등 인도적 지원은 물론 이산가족 상봉마저 여전히 중단 상태다. 금강산과 개성관광 역시 중단됐다. 이명박 정부의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이 빚은 아이러니다.

남북관계의 화해협력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개성공단에서 처음으로 철수하는 기업이 생겨났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국내 모기업의 부실과 6천여 협력업체의 동반 부도로 인한 직접적인 경제 피해만 6조 원에 이르고, 한반도 안보리스크 증가로 인한 국가신인도 하락, 외국자본의 유출 등에 따른 간접 손실까지 고려하면 피해가 14조 원 이상될 것이라고 한다(조봉현 기업은행경제연구소 연구위원, 6월 16일). '실용'을 강조하는 정부의 아이러니다.

현재의 남북간의 경색국면을 풀기 위한 출발점은 '6.15선언과 10.4선언의 전면적 존중과 이행의지 표명'이다. 양국가 정상간의 합의에 대한 '존중과 이행의지 표명'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이와 같은 쉬운 길을 가는 데 이명박 정부는 이미 1년 4개월여를 허비했고, 지금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용산철거민에 대한 강경진압이나 언론소비자주권운동에 대한 신속한 반응, 그리고 부자감세정책을 위한 속도전과는 너무도 다르다.

북미간의 뉴욕채널 등의 루트는 여전하나 남북간의 루트는 핫라인마저도 끊겨있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사실이나 억류된 유아무개씨의 소재조차도 파악하지 못하는 남한의 정보당국은 북한의 3세 승계문제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대해서는 너무도 자세한 내용까지 알고 있다. 대북 정보능력의 아이러니다.

미국 의회, 한국전쟁 휴전일 기념일 지정 법안 제출

지난 5월 미국에서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 하원 세입위원회 위원장인 찰스 랭걸 의원(민주당, 뉴욕)이 한국전쟁 휴전일인 7월 27일을 미국의 국가 기념일로 정하는 법안을 제출했다는 것이다. 법안명은 한국전쟁 참전용사 인정 법안(Korean War Veterans Recognition Act). 법안의 내용은 한국전쟁의 총성이 멈춘 휴전을 기념해 미국 전역에서 성조기를 다는 국가 기념일로 정하자는 것이다.

법안의 제출 이유에 대해 랭걸 의원의 에밀 밀내 보좌관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RFA 5월 18일)

Emile Milne: 한국전쟁에 참전한 랭걸 의원은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과 한국군 그리고 한국인의 희생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법안을 통해서 랭걸 의원은 이들의 희생뿐만 아니라 한국 전쟁부터 지금까지 미국과 한국이 긍정적이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고자 합니다.

아다시피 미국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총 178만9000명의 미군을 한국전쟁에 투입했다. 한국전쟁이 남긴 상흔은 미국에게도 너무도 컸다. 전사자 3만3665명, 비전투 희생자 3275명을 포함하여 총 3만6940명이 사망했으며, 작전과정에서 9만213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실종자 역시 8천여 명을 상회한다.

전쟁비용 역시 막대했다. 미국 의회조사국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6.25전쟁 비용으로 3200억 달러를 투입했다.(<미국의 주요전쟁비용 보고서>, CRS, 2008) 

그럼에도 미국은 전쟁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 전쟁에 참여한 이들의 희생을 기리고, 그 희생이 멈췄던 날을 기념일로 정하자는 입법안이 제출된다. '미국 왜 강한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6.25사변일은 물론 평화기념일 6.15와 10.4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야

다시 국내로 시선을 돌려보자. 한국전쟁과 관련한 우리의 기념일은 6월 25일, 즉 전쟁 발발일이다. 국가기념일 공식명칭은 '6.25사변일', 행사내용은 '6.25를 상기하여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하는 행사'이다.

평화국가조항 및 통일조항을 헌법에 둔 나라에서 휴전에 대한 기념은 고사하고, 한반도의 평화체제에 있어 '거대한 발걸음'인 6월 15일(1차 남북정상회담)이나 10월 4일(2차 남북정상회담)은 기념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기념일 지정은 법이 아닌 대통령령(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으로 정해진다. 따라서 기념일 지정은 '법 개정사항'도 아닌 '국무회의 의결사항'이다. 이른바 '입법전쟁'조차 필요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아닌 정전(휴전)을 기념하거나, 평화를 기념하는 날은 아직은 없다.

어찌됐든 한국전쟁 휴전일을 기념하자는 법안을 내는 미국의 법안 제정 움직임은 참 부러운 일이다. 휴전일을 기념일로 하자는 미국 내의 입법활동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국제적으로 미칠 파장은 미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화를 기리는 미국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미국의 힘을 보여준다.

이제 국회에서 6.15선언과 10.4선언이 있었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야4당의 의견으로 제출됐다. 이번 결의안을 정부가 수용하는 것은 '6.15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존중'이라는 의사의 직간접적인 표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파장은 현재의 경색된 남북관계의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적극적 조치를 기대한다.

6.15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지 9년이 지난 지금,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제2차 정상회담이 있었다. 회담내용은 차치하고, 회담의 전반적 분위기는 한국이 대북강경책을 주도하는 양상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전쟁은 무기를 든 외교이며, 외교는 무기 없는 전쟁'이라고 했다. 한국전쟁의 휴전을 기념하자는 미국의 움직임과 '6.15와 10.4 기념일 촉구결의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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