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150일, 다음엔 내 차례가 될 수도..."
무심한 일상의 참회문... "아버지가 공권력에 의해 타죽으면 어떻겠니"
▲ '네가 어찌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느님이 사제단을 통해 묻고 있다. ⓒ 조호진
평온한 일상이 무섭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루치 행복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내 밥그릇에 밥 온전하니, 내 잠자리가 아늑하니, 내 식구들이 별 탈 없으니 무에 근심이랴 여겨온 죄를 참회해야 하겠습니다. 양심과 영혼의 망루에 올라서니 무정한 죄 못지않게 무관심한 죄 또한 크고 무겁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겨레신문> 광고를 통해 용산참사(1월 20일)가 발생한 지 18일이면 150일째가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의해 5명의 목숨이 희생된 '용산참사', TV 화면에서 본 불길에 휩싸인 망루와 '여기 사람이 있다'는 아비규환이 선연한데, 뉴타운과 재개발의 삽날이 서민의 삶터와 생존권을 무참히 부수는데 당장 내 일이 아니라고 잊고 지냈습니다.
용산참사에 관련된 소식은 언론을 통해 간간이 들었습니다. 검찰이 용산참사 수사기록 3000쪽을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 MB정부가 유가족에 대한 사과와 진상규명 등은 외면한 채 탄압을 일삼고 있다는 것, 5명 희생자에 대한 장례를 아직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듣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내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외면하고 지냈습니다.
용산참사 광고엔 희생자인 양회성, 윤용헌, 이상림, 이성수, 한대성씨의 영정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덧붙여 '순천향병원 차가운 냉동고에 시신이 갇힌 지 벌써 다섯 달! 이 냉동고에 우리들의 내일이 갇혀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꽁꽁 묶여 있습니다. 장례라도 치러드릴 수 있도록 이 냉동고를 함께 열어 주십시오. 이 얼어붙은 시대를 함께 열어 주십시오'라는 호소문이 실려 있었습니다.
용산참사 150일째를 앞두고 내 삶의 자유와 행복은 얼마나 떳떳한가! 오늘 안녕하므로 내일도 안녕하고, 모레도 안녕할 것이라고 믿으며 사는 내 삶은 진정으로 안녕한가! 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MB정권, 죄의 대가를 어찌하려고...
▲ 용산참사 희생자 고(故) 윤용현씨의 아내 유영숙씨가 큰아들이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 조호진
저에겐 올해 스물한 살, 열여덟 살 되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당연한 소리 같지만 저는 두 아들을 사랑하고 두 아들 또한 저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두 아들이 잘 성장해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으며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 소박한 행복을 위해, 오붓한 미래를 위해 자식을 키우는 수고를 기쁘게 감내하고 있습니다.
오늘(17일) 용산참사 현장을 찾았다가 저와 같은 소망을 품었던 아버지와 제 아들 또래인 아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소박한 소망을 빼앗긴 아버지, 용산참사 당시 희생된 고(故) 윤용헌(51)씨는 영정 속에 있었고, 그의 아들 윤현구(19)군은 아버지와 못다 나눈 사랑을 애타게 그리워했습니다.
고인의 아내 유영숙(48)씨는 이날 열린 '용산참사 희생자 및 노동열사 추모미사'에서 아들 윤현구군이 쓴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윤군은 편지에서 '아버지의 시끄럽던 코골이 소리가 그립다'고 했습니다.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아버지 양복도 맞춰드리고, 낚시도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못해드리고 보내드렸다는 게 너무나 억울해서, 죄송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들의 그리움이 저러할진데 고인은 그 화염 속에서 자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얼마나 몸부림치다 끝내 숯덩이가 되었을까요? 저 청년의 억울함과 죄송함이 제대로 풀어지지 못한다면 고스란히 원한이 될 텐데 어찌하면 좋을까요? 권력의 힘으로 아버지를 빼앗으면서 가족에게 천추의 한을 품게 한 MB정권은 그 죄의 대가를 어찌 감당하려고 오만의 칼을 거두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버지를 빼앗긴 아들의 아픔을 가슴에 담고 귀가했습니다. 집안엔 일상의 평온이 신발처럼 잘 정돈돼 있었지만 여느 때처럼 감사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용산참사에 대해 대략 알고 있는, 올해 고2인 둘째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만약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불에 타 죽었다면 넌 어떨 것 같으냐?"
아버지의 질문에 아들은 멍한 표정을 지을 뿐 답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했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질문인데 어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듯이 고인 또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죽임을 당해야 했고, 그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과 참사의 현장을 오고 가렵니다!
▲ 유가족과 경찰의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가운데 용산참사 현장이 150일을 맞고 있다. 17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시국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 조호진
독재의 악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MB시대를 증명하듯 경찰버스와 경찰들이 분향소와 농성장을 겁박하고 있는 용산참사 현장을 다녀온 뒤, 아버지로서 꿈꾸었던 소박한 제 꿈이 몹시 부끄러워졌습니다. 한 아버지의 소박한 꿈이 망루에서 화염에 휩싸여 시커멓게 타버렸고, 그 무참한 죽임도 부족해서 5개월에 이르도록 냉동고에 갇혀 지내게 하는 패악한 권력을 외면한 채 꾸는 그 꿈을 과연 소박하다고 할 수 있는가 말입니다.
유가족들과 범국민대책위 관계자들은 외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용역깡패의 침탈과 경찰의 탄압은 견딜 수 있지만 국민의 무관심은 싸움의 힘겨움보다 더욱 견디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시국미사와 단식기도로 위로해 주시고, 작은 촛불과 화분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주고 유가족들을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용산에서 그들이
내일은 우리 차례가 될지 모릅니다.'
'잊지 마십시오.
용산에서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신부님들이 참사현장 곳곳에 촛불, 화분과 함께 이런 팻말을 세워 놓았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럴 작정입니다. 그런대로 한 세상 사는 게 아니라 삶의 현장과 참사의 현장을 오가면서 촛불 하나 밝히고, 화분 하나 옮겨 놓으면서 아버지를 빼앗긴 아들의 울음도 들어주고, 지아비를 잃은 아내들의 눈물도 새기며 살렵니다. 얼어붙은 이 시대의 냉동고를 함께 여는데 한 손목 보태렵니다.
당장 용산참사 150일이 되는 18일 '용산참사 150일 규탄! 150일 추모문화제'에 열일을 제쳐두고 참석하렵니다. 이미 금이 간 MB권력인데, 한 사람 더, 한 사람 더 모이다 보면 수사기록 3000쪽을 내놓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진상규명을 약속하지 않겠습니까? 한 아버지가 더, 한 어머니가 더, 한 아들과 한 누이와 한 형제들이 더 모이면 냉동고를 열어 장례식을 치러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내일은 우리 차례가 될지 모릅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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