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가 공해? 자연 더럽히는 건 인간"
울산태화강 비둘기 아저씨가 본 환경부 집비둘기 포획 개정안
▲ 울산 태화강변에서 비둘기아저씨가 호루라기를 불자 비둘기와 갈매기 수천 마리가 모여 들었다 ⓒ 박석철
"자연을 더럽히는 것은 비둘기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약한 새인 비둘기를 죽이면 자연이 보복을 할 수도 잇습니다."
환경부가 '야생 동·식물 보호법 시행규칙'을 개정, 집비둘기를 지자체장이 허가할 경우 포획할 수 있도록 한 데 대해 울산 태화강에서 16년 가까이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며 돌보고 있는 일명 '비둘기아저씨'가 발끈하고 나섰다.
로마 밀라노서 비둘기에 감명
비둘기 아저씨 곽용(68)씨는 젊은 시절부터 꽃을 보살피며 살아왔다. 어려서부터 꽃을 좋아한 그는 교육공무원으로 재직하며 70년대 고향인 합천과 거창의 교육청사를 꽃으로 가꾸다가 79년 울산으로 부임하면서 이삿짐 속에 꽃씨를 가득 꾸렸다.
그의 꽃사랑은 울산 태화강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2002년 퇴직후에는 본격적으로 매일 태화강에 나와 태화강변에서 꽃을 심고 가꾸고 있다.
비둘기와의 인연은 꽃을 가꾸고 있던 94년 태화강 꽃밭에 날아온 비둘기 두 마리와 시작됐다. 그는 "비둘기 두 마리가 먹이를 찾기에 초코파이 두 조각을 잘게 부수어 준 것이 첫 인연"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사실 1984년부터 비둘기를 만난 10년간 태화강 둔치에 심은 꽃밭에 꽃과 새와 인간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1996년 10월 공무원 연수로 이탈리와와 로마 교황청을 방문하면서 결정적으로 비둘기를 기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 성당 광장에서 사람들의 손과 어깨에 올라 있는 수 많은 비둘기를 보고서다. 그는 "관광객들이 뿌려 주는 모이를 먹기 위해 사람어깨에 올라오는 비둘기를 보고 '참 신기하다. 귀국하면 저렇게 해보고 싶다'고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또한 로마교황청 성 베드로 성당 내 현관 맞은 편 벽에 그려진, 힘차게 비상하는 비둘기 사진을 보고 이 결심을 더 굳히게 됐다고 한다. 가이드가 "비둘기는 성당을 상징하고 신성시하는 새"라고 설명한 것도 일조했다.
▲ 태화강변에 기른 꽃들 ⓒ 박석철
비둘기 점점 늘어 1400여 마리
귀국 후 자비를 들여 태화강에서 모이를 던져주니 비둘기가 점점 늘기 시작했다. 2002년 퇴직한 그는 퇴직금으로 모이를 대량 구입해 본격적으로 비둘기를 돌보기 시작했다. 비둘기 2마리가 태화강에 찾아온지 16년만에 현재 이곳을 찾는 비둘기는1400여마리로 늘었다. 특히 10년전부터는 이 소식을 들은(?) 갈매기도 한 마리 두 마리 찾아들기 시작해 지금은 3600여 마리가 모이를 찾아 온다고 곽용씨는 설명했다.
그는 "이젠 더 이상 힘이 들어 비둘기와 갈매기를 증가시킬 생각은 없다"며 "울산 태화강에 육지의 길조인 비둘기와 바다의 길조인 갈매기가 호루라기 소리에 5000마리 이상 모여든다는 것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전 한 TV 프로그램에서는 이 모습을 실험한 것이 방영됐다. 곽용씨가 부르는 호루라기에 비둘기와 갈매기가 우루루 모여 들었는 데, 다른 사람이 호루라기를 부니 꿈적도 하지 않은 장면이 전파를 탄 것.
그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잘 살다가 세상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보다 꽃과 새를 사랑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뜻있는 삶 아니겠냐"면서 "꽃과 비둘기를 사랑하고 키우자"고 말했다.
- 비둘기와의 인연이 깊나
"로마에 가기 몇 달전인 96년 초 태화강에서 꽃을 가꾸던 중 당시 심완구 울산시장의 기고문이 실린 종이 한 장이 바람에 날려 내 몸에 붙었다. 그 종이에는 '울산시가 지난 91년 부산 용두산 공원에서 비둘기 100마리를 분양받아 학성공원에서 사육했지만 겨울을 나기도 전에 어디론가 날아가 안타깝다'고 적혀 있었다. 이 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 환경부의 조치가 적절하지 않나?
" 2008년 8월 8일 베이지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북경 올림픽경기장은 새둥지 모양으로 지어졌다. 개막식에서 형광색 옷을 입은 수 백명이 대형 비둘기 모양을 만들어 평화를 그려내지 않던가.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날려보내고, LA올림픽과 몬트리올 올림픽 때도 비둘기와 종이 모형을 들고 입장하지 않던가. 세계 어디에서 비둘기를 죽이는 나라가 있나.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비둘기 똥 때문에 죽인다고 한다. 로마 비둘기도 똥은 다 싼다."
- 비둘기 변이 도시의 공해라는 지적이 있다.
"태화강 비둘기는 집 비둘기가 아니다. 또 태화강에 비둘기가 똥을 산다면 자연적인 일이고, 비가 오면 씻기면 그만이다. 우리 조상은 살생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전 세계인이 평화의 상징으로 여기는 비둘기를 죽인다니 말이 되나."
- 조류독감에 대한 우려도 있는데
"그야말로 기우다. 나는 16년간 수천 마리 비둘기와 매일 부대끼는 데 건강에 아무 이상 없고 젊은 사람 못지 않은 체력을 유지한다."
-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가
"전국 16개 시도에서 비둘기 공원이 없는 곳이 울산이다. 태화강변이 새와 꽃과 사람이 어울리는 비둘기 공원이 됐으면 좋겠다. 더 이상 많이 모이는 것은 이제 힘이 들어 지금 수준으로 꾸준히 비둘기를 돌볼 것이다."
- 지자체에서는 관심을 보이는가
"울산시장이 많은 관심을 보여 비둘기 집을 새로 지어주셨고, 모이 일부를 지원해 주고 있다."
한편 환경부는 '야생 동·식물 보호법 시행규칙'을 개정, 집비둘기를 지자체장이 허가할 경우 포획할 수 있는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해 6월 1일부터 시행했다. 환경부는 "집비둘기는 공원을 비롯한 도심 곳곳에서 활개치며 강산성의 배설물로 건축물을 부식시키고, 흩날리는 깃털로 시민 생활에 불편을 줬는데도 유해 동물로 지정되지 않아 적극적 퇴치가 불가능했다"며 이번 규칙 개정 타당성을 설명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이제 비둘기를 단순히 쫓아내는 소극적 퇴치에서 벗어나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으면 포획·제거 등 적극적으로 퇴치할 수 있다. 하지만 환경부는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으로 보는 국민 정서를 감안, 전문가에게 발주한 연구용역을 토대로 효율적인 관리방안을 마련해 지자체에 전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시 환경담당자는 "울산 태화강에 모이는 비둘기는 집 비둘기가 아니고, 불편하다는 민원도 없다"며 "태화강 비둘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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