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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위 파국... '운명의 연장전' 남았다

여당 '표결 처리' 시사하자 방송사들도 '파업' 준비

등록|2009.06.18 14:23 수정|2009.06.18 14:23

▲ 근 6개월 동안 끌어온 '미디어법 전쟁'은 1차전(작년 12월~1월)은 민주당이, 2차전(2월)은 한나라당이 '판정승'을 각각 거뒀고 이제 양당의 명운을 가를 연장전만 남은 셈이다. 사진은 지난 2월 25일 고흥길 국회 문방위원장이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법을 직권 상정하기 앞서 민주당 전병헌 장세환 의원이 회의실 출입문 통제에 대해 고흥길 위원장에게 항의하는 장면. ⓒ 남소연


미디어법 논의를 위해 여야 합의로 출범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이하 미디어위)'가 여론조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18일 좌초됐다.

정당들의 대리전을 맡았던 미디어위가 활동을 사실상 종료함에 따라 여야 국회의원들의 정면충돌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들게 됐다. 한나라당이 의석수를 내세워 법안 통과를 강행할 경우 방송사 노조들이 파업에 들어가는 등 또 한 차례의 파란이 예상된다.

미디어위가 3월 13일 출범 직후부터 기구의 성격과 회의 공개 여부 등 소소한 문제들로 여야 추천위원들이 신경전을 벌인 것을 생각하면, 오늘의 파국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미디어위 좌초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여론조사에 대해 여당 추천 위원들은 시종일관 반대 뜻을 분명히 밝혔다. 여당측 공동위원장을 맡은 김우룡 한양대 석좌교수는 "미디어위는 자문기구일 뿐인데 자문기구가 왜 여론조사를 하느냐"고 말했고, 여당측 최홍재 위원은 "여당 위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여론조사 단일안을 낼 수 없으니 여야 3당 간사가 결정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미디어위의 여론조사 공방은 지난달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여야의 의견이 전혀 좁혀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시간만 낭비한 꼴이 됐다.

민주당 추천 강상현 공동위원장(연세대 신방과 교수)은 "한나라당 추천위원들과 더 이상 논의를 전개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 나름대로 여론조사를 거쳐 독자적인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5일이 미디어위의 종료 시한인 만큼 다음 주초에는 보고서가 나올 것"이라는 게 강 위원장의 말이다.

미디어법 여론조사 반대한 한나라당의 '속내'

▲ 정당들의 대리전을 맡았던 미디어위가 18일로 활동을 사실상 종료함에 따라 여야 국회의원들의 정면충돌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들게 됐다. 사진은 지난 2월 25일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원혜영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국회 문방위 회의실에서 긴급의총을 열어 고흥길 문방위원장의 미디어 관련법을 기습상정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는 장면. ⓒ 남소연


반면, 한나라당 추천 미디어위원들은 17일 성명서에서 "법률에 대한 찬반을 묻는 식의 여론조사는 원칙에 맞지 않고, 현실적이지 않으며,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기존 방침을 되풀이했다.

여당 추천위원들의 완강한 태도는 미디어위 활동을 법안 처리의 '통과 의례' 정도로 생각하는 여당의 기류와 일맥상통한다.

"미디어법은 반대여론을 감안해 충분히 논의 후 합의 처리해야 한다"는 응답이 75.5%(1일, KSOI)에 이르는 등 불리한 여론 지형도 한나라당이 여론조사를 꺼리는 이유다.

국회 한나라당 문방위 간사를 맡은 나경원 의원은 1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정책에 관한 여론조사는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동료 의원들도 미디어법에 대해 세세하게 물어보면 정확하게 모르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며 "모든 쟁점법안을 이렇게 여론조사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고, 또한 이는 국회의 고유한 입법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석수 창조한국당 대변인은 "국민은 물론 국회의원들도 모르는 법안을 강행통과시키겠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소수 과두정치를 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비꼬았다.

어쨌든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오게 됐다.

근 6개월 동안 끌어온 '미디어법 전쟁'에서 1차전(작년 12월~1월)은 민주당이, 2차전(2월)은 한나라당이 '판정승'을 각각 거뒀고 이제 양당의 명운을 가를 연장전만 남은 셈이다.

여당 지도부에서는 "이제 국회에서 여야 간 논의를 다시 시작해서 약속대로 6월내에 표결처리를 해야 한다"(안상수 원내대표)는 얘기가 다시 흘러나오고 있다. 임시국회는 아직 열리지도 않았지만, 22개 미디어 관련법이 국회 문방위에 상정되어 있는 만큼 여당이 미디어법의 상임위 통과를 시도하다가 야당 의원들이 물리력으로 저지하면 본회의 직권상정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의 6월 국회 통과에 집착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6월 국회가 끝나면 8월 휴지기를 거쳐 9월 정기국회로 이어지는데, 정기국회는 회기 중간에 치러질 '10월 재보선'의 승자가 정국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재보선 다음에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가 될 2010년 6월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재보선과 지방선거 모두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6월 국회에서 미디어법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6월 국회가 170석 거대여당의 힘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가 되는 셈이다.

박형준 "방송이 허구한 날 정부 비판해도 아무 이상 없는 나라"

▲ 미디어법 국회 상정을 앞두고 작년 12월부터 언론사 총파업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방송사 노조들도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언론장악저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언론노조 총파업 5차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언론관계법 개정 철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는 장면. ⓒ 유성호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노무현 서거 정국'에서 공중파 방송 3사가 고인을 추모하는 특집 방송들을 대거 편성함으로써 국민들의 반정부 정서를 자극한 것도 여당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에서 곧잘 나오는 "정부 정책에 대한 대국민 홍보가 부족하다"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정부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방송사'에 대한 섭섭함을 담고 있다.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은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공공재인 전파를 쓰는 방송이 허구한 날 정부 비판을 해도 아무 이상이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불편한 심경을 우회적으로 토로하기도 했다.

작년 12월부터 언론사 총파업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방송사 노조들도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이근행 MBC 본부장은 "1·2차 파업이 20일 넘지 않게 효율적으로 진행돼서 조합원들의 피로 누적 같은 것은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에 파업하게 되면 미디어법 관련해서는 마지막 싸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심석태 SBS 본부장은 "국회 상황을 차분히 지켜보고 있는데 미디어법에 대해서는 2월 대의원대회에서 조합원들의 '반대' 뜻을 확인한 만큼 (파업 결행 시) 찬반투표를 거칠 필요는 없다"며 "정국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더라도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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