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은 서울 방어 위한 최고의 안전판"
[6.15로 돌아가자 ⑥] 기로에 선 '평화의 전진기지'
▲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6일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이명박(MB) 외교의 한계다. 이른바 '이명박식 실용외교'에 걸었던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역시나'로 끝났다.
"북한은 전쟁에 대한 미련은 있지만 실행에는 못 옮길 것으로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워싱턴 한미정상회담 및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얘기다. 북측이 전쟁에 미련이 있다는 것은 '내심 전쟁을 원한다'는 뉘앙스이다. MB가 뛰어넘고 싶어하는 6.15공동선언은 물론, "전쟁을 배격하고 평화를 만들어 나가자"던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반한다.
문정인 "남북관계 위기 책임은 MB정부가 '전쟁 불감증'에 감염된 탓"
한미정상회담이 열린 다음 날, '위기의 남북관계, 전망과 해법'을 주제로 한 한국미래발전연구원(김우식 이사장) 정례세미나에서 문정인 교수(연세대 정치외교학)는 냉전시대로 회귀한 남북관계의 현실에 대해 "무엇보다도 MB정부 스스로가 안보와 전쟁 불감증에 감염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대북정책이 '평화를 소중히 하고 전쟁을 두려워해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기조였다면, MB 정부는 전쟁을 예방하기보다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 나면 빨리 이긴다는 생각뿐이다. 평화를 소중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부, 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현주소다."
보수우익을 대변하는 MB정부가 안보 불감증에 감염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그러나 MB의 안보 및 전쟁 불감증은 남북 분단과 갈등 관리를 단순히 경제관계로 환원시키려는 개성공단에 대한 인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MB는 공동기자회견에서 개성공단 유지 여부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개성공단 문제는 북한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미 4만 명의 북한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공단 문을 닫으면 북한서 4만 명 근로자의 일자리가 없어진다. 북한 자신을 위해서도 무리한 요구를 하면 안 된다. 지나친 요구를 하면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장담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은 북측이 지난 11일 2차 개성회담에서 토지사용료와 노동자임금 인상안을 제시한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을 뿐 아니라, 우리측이 먼저 개성공단을 폐쇄(철수)할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개성공단 철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던 정부의 기존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MB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장담할 수 없다"
2차 회담에 참석한 김영탁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상근회담대표는 11일 기자회견에서 "회담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부드러웠다"면서 "(개성공단에서) 나가라고 하는 뜻은 전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협상대표는 '그런(나가라는) 뜻이 전혀 없다'는데 대통령이 먼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나갈 수도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 같은 강성 발언은 정부의 선결과제인 현대아산 유씨와 미국 여기자의 억류 문제를 의식한 것이거나 미국에 대한 립 서비스일 수 있다. 실제로 MB는 이 발언을 하면서 "개성공단 근로자, 미국 기자들이 억류돼 있는데 조건 없이 석방하기를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장 남북한은 19일 3차 개성회담을 앞두고 있다. 협상을 앞두고 대통령이 먼저 선을 그으면 협상팀은 '노(NO)'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북측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벌써부터 걱정된다.
개성공단 제품의 최대 수입처는 유럽연합(EU)이고, 그다음이 중국, 러시아, 중동, 호주 순이다. 미국과는 원산지 표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 장기적으로는 개성공단 발전의 최대 장애물이다. 예를 들어 넥타이의 경우, 일반 국가의 미국 시장 관세율은 7.6%인 반면에 북한산에는 65%의 세율을 매긴다.
길게 보면 한미 간에는 개성공단 제품의 원산지 표기 문제가 과제로 남아 있다. 당장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산과 동일한 관세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역외가공지역(OPZ)으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부속합의서 개정을 위한 협상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통령이 공단에서 '나갈 수도 있다'는데 협상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개성공단은 DJ가 씨 뿌리고 노무현이 거둔 남북경제협력의 '옥동자'
개성공단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98~99년 방북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800만 평 규모의 서해안공단 개발계획을 제안해 김 위원장이 이를 수용한 것이 단초였다. 이후 6.15 남북정상회담 두 달 뒤에 현대와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사이에 개발합의서가 체결되었고,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첫 삽을 떴다. 김대중 정부가 씨를 뿌려 노무현 정부가 거둔 '옥동자'인 셈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생산의 3요소는 토지와 자본 그리고 노동이다. 산업화 이후에는 거기에 기술이 보태졌다. 개성사업은 남북한이 각각 비교우위가 있는 생산요소를 결합하는 시도이다. 즉 각각 비교우위에 있는 자본-기술(남한)과 노동-토지(북한)를 결합시켜 새로운 비교우위(연계비교우위)를 창출해 경쟁력을 키우려는 시도이다. 그런 점에서 개성공단은 남북한의 실용적인 경제협력모델로서 주목받는, 한 마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협력사업'이다.
▲ 개성공업지구 내의 우리은행에 근무하는 북측 여성 직원들. ⓒ 김당
개성공단은 원래 남한의 국민경제 활성화와 북한의 변화 유도라는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출발했다.
우선 개성공단은 저효율고비용 구조로 채산성이 악화되어 도산위기에 직면한 국내 한계기업의 탈출구로 마련되었다. 중소기업들이 지리적 인접성과 동일언어의 이점, 저렴한 인건비와 양호한 근로조건을 갖춘 개성공단으로 이전함으로써 기업은 경쟁력을 회복하고, 정부는 산업공동화를 막으려는 취지였다.
또한 개성사업은 만성적인 경제난에 허덕이는 북한에게도 직접적인 외화 수입을 통해 경제발전과 체제안정을 꾀할 수 있는 돌파구로 간주된다. 또한 남북간의 인프라 협력과 인적 협력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북한 당국과 인민에게 자본주의를 배우는 시험장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통일비용을 줄이고 북한경제가 세계경제체제로 편입되기를 바란 것이다.
이 두 가지 목적은 합리적 타당성을 갖추고 있고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이를테면 2008년 12월 말 현재 가동 기업체 수는 2007년 대비 67%나 증가했고, 북측 근로자 수는 무려 91%나 증가했다. 또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2004년에 입주한 24개 기업 가운데 5개 기업이 2007년에 이미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개성공단 사업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2006. 7. 6) 및 핵실험(10. 9)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크게 악화되었음에도 정경분리원칙에 의거해 꾸준히 발전해온 것이다.
토지임대료 5억 달러와 임금 300달러는 하나의 '시안'일 뿐
물론 위험요인도 적지 않다. 또 북측의 토지임대료 5억 달러 및 임금 월 300달러 인상안 제시로 토지분양가 및 인건비 상승이라는 위험요인이 현실화되었다. 그러나 통일부는 남북이 법적으로 개성공단의 임금 상승을 제한(연간 최대 5%)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북측이 법적 기준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북측이 제시한 것은 하나의 '시안'일 뿐 얼마든지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통일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보수언론과 경제신문들은 오로지 경제성만을 내세워 큰 난리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300달러 임금인상을 일괄 적용할 경우 개성공단에서 살아남을 기업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 지난 2006년 12월 개성공단의 북측 안내원이 핵실험 이후 공단을 찾은 남측 방문객들에게 개성공업지구 건설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 김당
그러나 경제성이 없다는 것은 엄살이라는 지적도 있다.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초기 투자비를 뽑고 이익을 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또 근로자에게 월 300 달러(1200원 환율로 36만 원)를 지급하지 못할 정도의 기업이라면 다른 데 가서도 살아남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문제는 인상안을 제시한 배경에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개성공단 사업은 남측에 준 일종의 '특혜'다. 이런 특혜를 준 것은 6·15선언 1항(우리민족끼리)과 4항(경제협력을 통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이 선언이 이행되지 않고 있어 남측에 특혜를 줄 근거가 없어졌기 때문에 '글로벌 스탠더드'(국제기준)에 맞추기 위해 새로 협상하자는 논리다.
실제로 개성공단 분양가는 평당 15만 원으로 중국의 단둥지역(평당 5만 원)보다는 높은 편이나 국내의 구미4단지(39만 원)와 시화지구(150만 원), 중국의 청도기술개발구(150만 원), 베트남 딴뚜언(40만 원)보다는 크게 낮은 가격이다(대한상공회의소, 개성공단의 투자매력도와 우리기업의 진출전략). 또 개성공단 최저임금 57.5 달러는 중국(100~200달러)보다 크게 낮고 베트남(60달러)보다도 낮은 편이다.
개성공단 때문에 북한은 최소 하루의 공격시간을 잃었다
실제로 국제사회는 현대아산이 1600만 달러만 내놓고 독점적으로 향후 50년 동안 무상으로 토지를 사용하기로 계약을 맺은 것에 대해 불공정 계약 시비를 제기한 바 있다. 미국 역시 남북한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문하면서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이중기준을 적용해 압박하는 모순에 빠지곤 했다.
이를테면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 사태가 터졌을 때 부시 행정부의 레프코위츠 대북인권 특사는 공단 근로자의 저임금과 임금착취를 문제 삼아 개성공단 중단을 요구했다. 반면에 대표적인 '네오콘'인 존 볼튼 당시 유엔대사는 개성공단 임금이 군부의 미사일 개발 및 2차 핵실험에 유입될 것을 문제 삼아 개성공단 중단을 요구했다.
그런데 개성공단에는 남한의 국민경제 활성화와 북한의 변화 유도라는 목적 외에 간과되고 있는 목적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안보위협 해소라는 정치군사적 목적이다. '개성공단의 정치군사적 경제적 효과에 관한 분석'을 다룬 국회 정보위 연구용역보고서(2008. 12)에 따르면, 개성공단은 '정치군사적으로 서울 방어를 위한 최고의 안전장치'다.
▲ 평화의 전진기지'시간별생산현황' 작업표에 종이꽃을 달고 작업하는 개성공단의 북한 여성 근로자들. ⓒ 김당
휴전선에서 서울로 접근하는 가장 짧은 축선이 판문점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개성-문산 축선이다. 그래서 개성은 과거 한국전쟁 때 북한군 기계화 부대의 주요 남침로였다. 그런데 개성공단이 생기면서 북한군은 휴전선과 개성공단 사이에 있던 장사정포부대와 전방부대(약 2개 여단)를 송악산 후방으로 14~20㎞ 후진 배치시켰다. 군부는 반대했으나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북한은 최소 하루의 공격시간을 잃었다는 분석이다.
근거는 이렇다. '대한민국 육군 야교 35-1'의 장비별 1일 가동거리는 전차 48㎞, 장갑차 48㎞, 자주포-대공포 22㎞ 등이다. 1일 가동거리는 전진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앞뒤로 움직인 모든 거리를 의미한다. 실전에서는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기 마련이다. 특히 전쟁 중에는 모든 부대가 대형을 맞추면서 이동해야 하므로 지상군 부대가 움직일 수 있는 거리는 22㎞를 넘기 어렵다.
판문점에서 서울까지는 40여㎞밖에 되는 않는다. 개성공단이 북한군 부대를 후진배치시킴으로써 짧은 개성-문산 축선을 1.5배 이상 늘린 것은 군사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준 것이다. 특히 개성공단은 절대적으로 우세한 남한의 공군력이 유사시 남침을 위해 집결하는 북한군을 휴전선 부근에서 공격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해줌으로써 전장(戰場)을 북한지역으로 이동시키고 서울 서북부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제공한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은 '평화의 전진기지'이자 정치군사적으로 서울 방어를 위한 최고의 안전장치인 개성공단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평화를 소중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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