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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벌과 청탁, 폐쇄적 조직 문화에 '개혁' 부메랑

[국세청개혁 ③] 도마 위에 오른 국세청 개혁을 위한 필요충분 조건

등록|2009.06.18 21:38 수정|2009.06.18 21:48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검찰과 국세청 등 이른바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정 정국'의 첫 단추를 꿰맨 국세청에도 거센 후폭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전직 국세청장의 잇단 비리 혐의에 따른 구속에 이어, 한상률 전 청장의 친정권적 행태가 결국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권교체 후, 국세청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대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말]

▲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건물.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작년 3월 20일 국세청 강당에 수백여 명의 직원들이 모였다. 이명박 정부가 공식 출범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다. 당시 한상률 국세청장이 단상 위에 올랐다. 무대엔 '지식정보화시대의 국세행정운영 방향'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그의 강연이 시작됐다.

그의 이날 특강에서 눈에 띄었던 점은, 국세청의 고질적인 인사청탁 문화를 뜯어 고치겠다는 의지였다. 당시 한 청장은 직원들에게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고, 인사청탁은 반칙이다"면서 "인사청탁은 절대로 들어주지 않고, 몸을 던져서라도 막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나름의 인사시스템을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9개월 후, 그는 핵심 측근들과 함께 경주와 대구 등지로 달려갔다. 이명박 대통령의 주변 유력인사들과 함께 한 '인사청탁성' 골프 회동과 식사자리였다. 골프 회동이 끝난 직후, 그의 행적은 고스란히 언론사로 알려졌다. 마치 누가 옆에서 감시라도 했던 것처럼….

이 사건은 충청권 출신으로, 과거 정권에 임명된 청장을 밀어내기 위한 국세청 내부의 암투가 얼마나 치열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또 한편으론, 인사청탁은 몸을 던져 막겠다던 국세청 수장의 말을 믿고 따랐던 많은 내부 직원들에겐 다시한번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했다.

일그러진 그들만의 폐쇄적인 문화... 도마 위에 오른 국세청 개혁

▲ 한상률 전 국세청장 ⓒ 국세청

국세청 전직 고위간부 출신 인사는 "한 전 청장은 참여정부 말기에 임명된 후 거의 1년여 동안 골프를 하지 않았다"면서 "그때 처음으로 경주에 내려갔다가 그대로 날아가버렸다"고 말했다. 당시 언론에 한 전 청장의 구체적인 행적과 발언 내용까지 알려진 것에 대해, 그에게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 아니냐"는 물었더니,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전 청장을 둘러싼 온갖 의혹과 사건으로 국세청 개혁은 더이상 피할 수 없는 명제가 됐다. 이미 전직 국세청 수장들이 각종 비리혐의로 사법처리를 받았고,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의 단초를 제공한 표적 세무조사 의혹으로 국세청 책임론도 비등해진 상황이다.

권해수 한성대 교수(행정학)는 "역대 청장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각종 비리 혐의로 사법처리됐다"면서 "한 전 청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사건은 국민들로 하여금 국세청을 현재 시스템 그대로 둬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들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 국세청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왜곡된 인사관행과 이에 따른 파벌과 뿌리깊은 청탁 문화로 꼽힌다. 2만여 명에 달하는 거대조직 속에서, 청장이 바뀔 때마다 그의 지역과 출신에 따라 승진과 요직 인사가 이뤄지다 보니, 조직 내부 불만이 쌓이는 것은 당연했다.

권 교수는 "청장의 경우 과거 정권에서 청렴도나 능력보다 정치권력의 외압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국세청 내부에선 인사를 둘러싸고 학연과 지연 등을 통한 파벌과 청탁문화가 공공연하게 있어왔다"고 비판했다.

비리 첩보 듣고 국세청 고위간부 사무실 들이닥쳤지만...

또 이 과정에서 일부 국세청 수뇌부의 '정치권력 코드맞추기'와 내부의 부적절한 상납 관행도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국세청 내부의 독특한 단결성과 폐쇄적인 조직 문화로 이같은 사실들은 외부로 잘 알려지지도 않는다. 최근까지도 국세청 고위 간부를 비롯해 직원들의 여러 비리 의혹들이 끊이질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공무원의 내부감찰을 벌이고 있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팀(일명 암행어사팀)은 올해 초 지방의 한 세무서장 집에서 현금 3000만 원을 발견했다. 해당 서장은 돈의 출처를 설명했지만, 공직윤리팀은 뇌물로 보고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들은 또 지난 3월께 한 지방국세청장 사무실에 현금이 있다는 첩보를 듣고, 급습했지만 당시 지방청장이 끝까지 사무실 수색을 거부하면서 버티는 바람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국세청 고위 인사는 "총리실쪽에서 모 지방국세청장실을 보려고 내려갔지만, 해당 청장이 완강히 버티는 바람에 조사를 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자체적으로 조사했지만, 뇌물 혐의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당 지방청장은 지난 17일 기자와 통화에서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철저히 부인했다.

윤종훈 시민사회경제연구소 기획위원(회계사)은 "국세청의 경우 내부 조직이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그들만의 상명하복식 문화가 큰 영향을 끼친다"면서 "이 때문에 최근 나주세무서 직원 파면 사건처럼 내부의 건전한 비판이나 소통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5개월 넘도록 국세청 수장을 앉히지 않는 진짜 이유

어쨌든 국세청에 대한 개혁은 여당이나 야당, 진보나 보수 가릴 것 없이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국세청 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 없이 이미 떨어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고위 간부는 얼마 전에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국세청 (개혁) 문제는 오래된 숙제였지만 매번 쉽지 않았다"면서 "현재 정부차원의 국세청 쇄신안이 거의 마련돼 있으며, 신임 청장이 정해지는대로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새 국세청장이 개혁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국세청 선진화방안'이라는 이름의 개혁방안에는 국세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내부 비리 등을 감시할 감독위원회와 인사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행 본청-지방청-세무서 등으로 돼 있는 조직체제도 크게 손질할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개혁방안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또 개혁방안을 추진할 새 국세청장 인선도 계속 미뤄지고 있다. 5개월이 넘도록 한해 160조 원이 넘는 나랏돈을 걷어 살림살이를 꾸리는 세정 당국 수장이 자리를 비운 것도 사상 초유의 일이다.

청와대 쪽에선 "적임자를 찾고 있다"는 말만 했을 뿐,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을 비롯해 관료사회 내부에서조차 현 정부의 부실한 인사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참여정부 초대 국세청장을 지냈던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과거 국세청장 인선을 보면 대통령과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핵심 측근이 가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업인을 오랫동안 해 온 이 대통령이 국세청을 매우 중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정권을 보호해주고, 뒷받침해줄 수 있는 측근을 찾다 보니 5개월이 넘도록 청장을 임명하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살 만하다"고 주장했다.

▲ 지난 2007년 1월 4일 전현직 국세공무원 모임인 국세동우회이 국세청 연회장에서 연 신년 하례회.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은 이후 수뢰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 국세청


국세청 개혁에 필요충분한 조건들

경제부처의 한 고위간부도 "정부의 감세정책과 전반적인 경기침체 등으로 인한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재정까지 악화되고 있다"면서 "그 어느 때보다 국세 징수기능이 중요한 때 세정당국의 수장을 이렇게 오랫동안 비워둔다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 주변에선 이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이후 이번달 말께 검찰총장과 함께 최종 인선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허병익 국세청장 직무대행(차장)을 포함해 2~3명의 후보로 최종 압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는 기존에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예상 외의 외부인사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국세청 안팎에선 이번 기회에 경제검찰로 불리는 국세청에 대한 독립성과 중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권해수 교수는 "국세청장 인사는 전문성과 도덕성이 우선돼야 하며, 단순히 외부인사만으로 국세청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국세청 조직이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이를 위해 인사권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하기 위한 별도의 국세청 감시위원회를 설치해야 하며, 이 위원회에 민간인사들이 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경찰청장과 검찰총장 등과 마찬가지로 국세청장도 2년 임기제를 시행하고, 국세청 직원들의 재산 형성과정과 내용 공개를 좀 더 폭넓게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윤종훈 회계사도 "과거 참여정부시절 강금실 장관 한 명이 법무부 수장으로 갔다고 해서 검찰은 변하지 않았다"면서 "외부인사 한 명이 들어간다고 해서 국세청이 크게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부인사뿐 아니라 국세청의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의 정당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이 기구에는 정부와 민간인사들이 동수로 참석하고, 국세청 내부보다는 외부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영태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소장(회계사)은 "국세청장 인선과 함께 시스템 개혁도 중요하다"면서 "무엇보다 정치권력이 국세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을 먼저 버리거나, 이를 제도적으로 막는 장치를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도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현행 국세기본법 등에 명문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국세청장 임기제 도입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장단점이 있는 만큼 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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