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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한국경제에 노정을 묻다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등록|2009.06.19 14:20 수정|2009.06.19 17:40

쿠오바디스 한국경제시장주의 도그마에 빠진 한국경제의 덫을 피할 길을 제시한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 ⓒ 푸른숲



88올림픽이 시작되기 전 상계동은 온통 논과 밭이었다고 한다. 부동산 투기로 수백억대 재산을 소유한 지인의 남편이 시골에서 처음 서울에 올라와 판잣촌을 바라보며 "서울에 저런 집 한 채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상계동에 아파트가 들어 설 때 몇 동을 통째로 잡아 두었다가 넘기는 수법으로 수백억대 부동산 졸부가 되어 일년이면 절반은 외국 여행을 다니며 살고 있다.

사실 쥔 것이나  배운 것 없이 맨손으로 서울살림을 시작하는 사람이 서울에 집 한 칸 마련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 만큼이나 실현가능성이 적은 현실이다. 일반 시민도 그러니 철거민촌 상계동에서 무허가 판잣집에 살며 하루 벌어 근근이 입에 풀칠이나 하는 사람들에겐 말할 나위가 없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한데 어느 세월에 집장만 하겠는가"라고 하면 부동산 투기로 한 재산을 그러쥔 이들은 " 그러게 누가 너희처럼 미련하게 개미처럼 죽어라 일이나 하고  경제논리에 눈뜨지 못하라고 했느냐? 그러니 그렇게 생고생이나 하지"라며 비아냥을 겸한 동정론을 펼치기도 한다. 근면과 성실이 어리석음과 동일시 되는 현실을 접하며 사는 비 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대한민국 경제,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쿠오바디스 한국경제>를 쓴 이준구 교수 자신도 사회문제에 대한 글을 고사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가 스스로 펜을 들었다는 것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을 만큼 한국경제는 위기에 처해 있다는 증거다.

원고 청탁을 자꾸 사양하다 보니 청탁조차 들어오지 않아 꼭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신문에 기고하는 것이 고작이었다던  학자가 스스로 펜을  든 것은  보수 바람 탓에   여론이 온통 한 군데로 쏠리는 현상이 지극히 위험해 보수 일변도로 치닫는 사회분위기에 누군가 제동을 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펜을 든 것은  비난의 화살만을 퍼붓거나 비평만을 위한 비평을 하자는 의도가 아니라 논의의 출발점과 생각의 지향점을 새롭게 설정하자는 데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힌다.

<쿠오바디스 한국경제>는  여섯 개의 장에서 우리 경제의 위기상황을 짚어보고 그 대안과 해법을 통해 흔들리는 한국 경제에 노정표를  제시한다.

토목입국의 신기루 대운하 사업이 왜 망상에 그칠 수밖에 없는지를  풀어주고, 폭등을 거듭하는 주택 가격의 진실과 해법을 밝힌 주택시장.  부자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유명무실하게 만든 종부세 등 전공 분야인 경제만이 아니라,  갈팡질팡  혼돈 속을 헤매고 있는 아마추어 정부의 첫 1년에 대한 우려와 감상, 늘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는 교육에 대한 단상, 시장주의자인 경제학자의 눈에 비친 현 시장경제 논리의 허구성과 위험성을 알기쉽게 풀어 낸다.

경제학자로 학자의 논리를 펼친  학자로서 이론이나 이념이 아닌 합리적인 경제적 대안을 일반 시민과 정책 입안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한 것이다. 그래서 피부로 경제 위기를 실감하는 독자 입에서는 글을 읽을 때마다 '맞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야'라는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오게 만든다.

 일례로 주택 가격의 폭등이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 기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대도시나  전망이 밝은 위성도시, 투기지역을 제외하면 미분양 아파트가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불패신화를 깨트리지 않으려는 정부의 정책이 투기 심리를  쉽사리 잠재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일반 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지 못한다면 제 2의 IMF와 같은 위기 상황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진실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런 진실에 꿋꿋하게 귀를 틀어막고 있는 것은 오직 정부와  충실한 추종자들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실을 알고 돌이키려 할 때면 이미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경제 문외한인 나에게도 거대한 공포로 다가온다. 부디 소통 불능의 정부가 이번만큼은  충실한 학자의 충고에 겸손히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한 줄기 위안을 찾을 수 있다면, 시장근본주의의 폭주에 제동을 걸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정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시장을 갖다 앉힌다면 그게 바로 개혁이라는 맹목적 논리는 이제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시장의 자율 못지않게 시장에 대한 적절한 감시와 통제도 중요하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쓸모없는 규제를 대폭 정리해야 한다는 데 전혀 이의가 없다. 그러나 규제 완화의 와중에서 필요한 규제까지 떠내려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 순간 우리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머지 않아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거세게 휘몰아 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공들여 쌓았던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발생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는 않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부동산 거품 붕괴다. 이것만 막을 수 있다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으리라 본다. 부동산 경기 부양책쯤으로 거품 붕괴를 막을 수 있으리라본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문제의 핵심은 패닉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는 데 있다. 이는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신뢰의 회복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가혹한 환경에서 대응 능력을 시험받고 있다. 이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리더십과 거리가 멀다. 무능력과 소통 부적으로 우리에게 실망감만 안겨주었을 따름이다. 이 리더십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현 위기는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경제>는 푸른숲에서 발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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