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맞장 뜨던 그 기개 다 어디로 갔을까
똑똑한 검사들, 왜 욕 먹는 검찰 보며 침묵하나
▲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 9일 오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을 배석시킨 가운데 전국 평검사들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내게는 잘난(?) 검사 조카가 있다. 우리나라 법조계에서는 이른바 성골로 통하는 서울 법대 출신이다. 그 조카가 몇 년 전 서울 법대에 합격했을 때 그가 졸업한 고등학교 정문에는 <OOO 서울 법대 합격>이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가족들이 모두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조카의 부모는 아들이 겨우 법과대학에 합격했을 뿐인데도 마치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판사나 검사가 된 양 대단히 흥분했다.
서울대학교가 어떤 곳인가. 삼권분립이 철저한(?) 우리나라의 모든 권력 기관인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모든 요직을 독식하는 곳이 아니던가. 또한 권력과는 상관이 없는 학계에서도 그 간판이면 쉽게 이름을 들이밀 수 있는 최고의 엘리트 기관이 아니던가.
바로 그런 학교에 합격을 했으니 조카네 부모가 흥분할 만했다. 더구나 한 수 아래(?)로 치는 서울대학교의 '보통대학'도 아니고 최고의 수능 점수를 자랑하는 '법과대학'이니 그 흥분, 환희는 이해할 만 했다.
하지만 남편이나 나는 우리나라 대학 가운데 최고라는 서울대학교가 세계 순위로 보자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앞으로는 우리나라도 대량 변호사 시대를 앞두고 있는 만큼 사법고시의 매력이 과거와는 같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을 내놓으며 지나친 흥분을 경계했다.
물론 우리 부부는 내부적으로만 그런 예측을 할 뿐이었다. 모두가 흥분하고 좋아하는데 굳이 초를 칠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여간 조카의 합격은 가문의 영광으로까지 이어지는 당시 분위기였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합격한 조카는 다른 법대생들과 마찬가지로 재학 중에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 아니 법과대학뿐 아니라 다른 대학도 이미 '학문의 전당'이기 보다 '취업 준비 학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인 만큼 법대생의 재학 중 사법고시 공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조카는 결국 대학을 졸업한 뒤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물론 이번에도 조카의 출신 고등학교 정문에는 다음과 같은 플래카드가 몇 주일 동안 나부꼈다.
<O회 졸업 OOO 사법고시 합격>
사법고시 합격이 대단하게 여겨지던 때였다. 아직도 사법고시 합격이 그만큼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민망하지만 조카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고등학교 때부터 강한 역사 의식을 갖고 있던 조카의 사법고시 합격은 어쨌건 축하할 만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조카는 고등학교 시절에도 고등학생답지 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대견하게도 우리나라 민주주의 장래를 염려하던 학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 정의에 대해서도 자기 소견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래서 제 아버지를 포함한 어른들의 꼭 막힌 생각을 거침없이 비난하던 학생이었다. 조카는 통일에 대해서도 생각이 있었고 이따금 제 아버지와 격렬한 토론을 벌이며 욕을 많이 먹기도 했다.
하여간 나는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진 조카 같은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개혁가가 되어 우리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 나갈 것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시에 합격한 뒤 사법 연수원에 들어간 조카는 그 전에 보여주던 예리한 모습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듯했다.
과거에는 비판적인 시사 월간지를 읽으며 사회에 대한 예리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조카가 사법연수원생이 된 뒤로는 그곳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고달픈(?) 자리 다툼을 주로 얘기하는 현실적인 사람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조카는 연수원 성적에 따라 판사, 검사, 변호사로 장래 진로가 구분되고, 변호사 가운데에도 잘 나가는 화려한 로펌 변호사와 그냥 개인 사무실이나 자신이 직접 개업하는 보통 변호사로 구분이 되는 냉엄한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대단히 실리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는 조카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약간 실망스럽기는 했다. 하지만 조카가 원래 갖고 있던 꿈이나 소명 의식 등은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전공이나 직업을 결정하는 데 이미 그것은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기에. 물론 속단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하여간 사법 연수원을 잘 마친 조카는 다행히(?) 검사로 임용이 되었다.
처음부터 집안 얘기를 늘어놔서 좀 송구스럽지만 사실은 이 검사 조카를 인터뷰하고 싶었다. 아니, 인터뷰라기 보다 요즘 돌아가는 우리나라 검찰의 '꼴'을 보며 똑똑한 엘리트 집단인 검찰의 분위기를 취재하고 싶었다. 순진하게도.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검찰 욕을 하고 있고, 심지어 검찰 대신 '견찰'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의 똑똑한 검사들이 욕을 먹고 있는데 검찰의 실제 분위기는 어떠한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보직도 갖지 못한 조카와 같은 평검사들, 이 땅에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게 하기 위해 법대 진학을 꿈꾸었을 야심찬 초보 검사들의 진심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야무진 내 계획은 그만 시작 단계에서 암초에 부딪히고 말았다. 조카의 연락처를 알기 위해 어느 가족에게 연락을 취했을 때의 일이다. 난데없이 왜 조카의 연락처가 필요하냐고 물어왔다.
"요즘 시국 돌아가는 모습이 하도 답답해서 이러저러한 내용의 기사를 쓰려고 한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분의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요즘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는 분위기야"
"네가 지금 한국에 없어서 여기 돌아가는 꼴을 모르는 모양인데 여긴 시간이 거꾸로 가고 있는 느낌이야. 지금 한국이 어떤 사회인지 몰라서 그래. <PD 수첩> 작가의 개인 이메일까지 다 뒤져 언론에 공개하는 나라라고. 아주 살벌해. 야만적이고.
그러니 네가 미국에서 이런 사정도 모르면서 기사 쓰려고 욕심내지 마. 그 애 연락처 알 생각도 하지 말고. 그 애 역시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는 입을 안 열려고 할 거야. 어디서 감히 말을 하냐고. 익명으로 쓴다고? 소가 다 웃을 일이야. 익명으로 써도 그게 누군지 금방 알게 된다고. 만약 그렇게 되면 그 애는 사표를 내야 할지도 모르고.
너 그거 안 봤어? <PD수첩> 사건 담당 부장검사도 무혐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버티다 결국 사표 내고 나갔잖아. 한국이 요즘 그런 사회야.
언론도 언론이 아니라고. 검찰이 하나 흘리면 "얼씨구나" 하고 그대로 받아 적으며 대서특필해서 사람 죽이고 있고. 그게 바로 요즘 우리나라 언론이라고.
네가 알고 싶다는 검사들 의견 역시 검사들이 말을 못 해서 그렇지 검찰 내부에서는 분명히 반대 의견이 많을 거야. 하지만 그걸 공개적으로 표명하면 곧장 사표 내고 나가야 하는 분위기지. 한국이 이렇다고.
네가 잘 몰라서 그렇지. 지난 번 어느 국세청 직원도 내부통신망에 글 올렸다가 잘렸잖아. 한국이 요즘 그래. 게다가 어디 잘리기만 하는 줄 알아? 국세청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까지 했어. 한국의 이런 분위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
이명박 정권 이전만 하더라도 이렇게 냉소적이고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바뀐 것일까. 정말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후퇴한 것일까.
그 분의 장탄식을 여기에 다 옮겨 적을 순 없다. 그 분 뿐만이 아니다. 내가 아는 분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했고 현직 고교 교사인 친구는 교사들도 시국선언을 준비중이라는 말을 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런 시국 선언문이 나오고 있냐고.
교사인 친구는 멀리서 이런 꼴 안 봐도 되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멀리 산다고 이런 꼴 안 볼 수 있나? 인터넷 덕분에 모든 뉴스를 다 알고 있고 내 나라 민주주의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다고 안타까워 하는 이곳 분위기인데 말이다. 이곳에 사는 한 동창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요즘은 내가 미국 시민권자인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해. 사실 대한민국 국적 버리고 미국 국적 취득하면서 좀 착잡한 심정이었거든. 그런데 지난 번 노무현 대통령 죽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덧정이 없어지더라. 그 야만적인 행태에."
그 동창은 답답한 조국의 현실을 보며 대한민국 국적 포기가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물론 그 동창의 냉소적인 발언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죽을 때까지 대한민국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의 역설 역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큰 데서 나온 발언이었을 테고.
▲ 사진은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장관이 '평검사와의 대화'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 청와대 제공
대통령과 맞장 뜨던 당당한 검사들, 왜 침묵하는가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자 검찰에 들어온 검사들, 특히 아직도 순수한 초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평검사들. 나는 이들을 취재하고 싶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어쩌면 앞으로도 취재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현재와 같은 경색된 분위기에서는.
하지만 검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있다.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검사와의 대화>에 나와 선배 법조인이자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 맞서 기세 좋게 맞짱을 떴던 당시 평검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또한 선배들의 그 기개를 그대로 물려받았을 평검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왜 그대들은 침묵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검찰의 '오버'에 분개하고 있는 지금, 똑똑한 당신들이 나서 침묵을 깨고 대통령에게 따져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연판장이라도 돌려 검찰이 제 궤도를 찾을 수 있도록 서명하고 그 연판장을 검찰총장 손에 쥐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할 때 어느 누구 하나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단 한 명의 진정한 검사가 그리워지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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