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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줄여 공부해라? 이런 교육 거부하고 싶다

[주장] 일제고사 전국 꼴찌 '충북교육청' 안간힘, 눈물겹다

등록|2009.06.23 14:20 수정|2009.06.23 20:07

▲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지난해 10월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림막을 친 가운데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 권우성


지난 주부터 무더위가 서서히 기승을 부리더니 장맛비가 내려 잠시 시원해졌습니다. 6월 말, 이맘 때면 학교는 서서히 학기말 정리와 여름방학에 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것마저도 여의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제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여름방학을 줄인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6월20일, 충주의 한 선생님을 만났는데 여름방학을 줄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걱정했습니다. 지난 9일 충청북도교육청이 연 '다문화가정 이해를 위한 교감 연수' 때 모 과장님이 '권장사항'이라며 '성취도평가 대비 여름방학 단축 예시(안)'에 대해 이야기 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 여름방학을 7~20일 정도 줄인다는 학교도 있었고 6학년만 나오자는 곳도 있었습니다.

원래 학교 개학과 각종 행사, 방학 일정은 연초에 계획을 하고 학교운영위 심의를 거쳐 결정이 됩니다. 황사현상이나 홍수 같은 천재지변이 아니라면 대부분 원래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편입니다. 방학에 교사들은 각종 연수를 하고 학생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에 학교에 나와야 2학기가 원활하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학교별로 마련한 학사운영계획을 도교육청에서 좌지우지하려 할까요? 물론 '권장사항'이라고는 하지만, 학교 관리자들 입장에선 흘려듣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위에서 기침을 하면 아래서는 태풍이 분다라는 말이 나오나 봅니다.

방학 빼앗긴 아이들, 2학기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상황은 충주만이 아니라 괴산과 청주, 음성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선배가 다니는 학교는 여름방학을 줄이고 6학년이 나오는 것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출퇴근 시간까지 멋대로 늘려 잡았다고 합니다. 그 해당 교육청에서는 학교마다 따로 불러 성취도 평가계획서를 내놓으라고 해서 교감선생님들이 곤욕을 겪고 있습니다.

여름방학을 줄이는 것은 정부정책이나 교육의 효율성 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그간 교육현장에서는 점점 아열대로 변해가는 기후 때문에 여름방학을 늘리고 겨울방학을 줄여왔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더울 것이라는 일기전망도 일찍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더위에 일제고사 준비로 아이들을 묶어두신다고요?

지난해에 선배 딸이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교실 아카데미에 2주간 참여했습니다. 과학프로그램도 있고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라 아주 즐겁게 다녔습니다. 헌데 2학기가 되자 몸이 너무 힘들다고 다음에는 절대 안 하겠다고 했답니다.

과연 여름방학에 시험풀이공부를 위해 2~3주씩 학생들을 학교에 나오게 하는 게 효과적일까요? 사실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어도 수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루 1~2시간 겨우 틀 뿐만 아니라, 에어컨을 틀어도 둘레에 앉은 아이들에겐 바람도 안 갑니다. 이러다 학생들이나 교사 모두 여름에 지쳐 2학기에 제대로 공부 못하면 그게 더 손해 아닐까요?

이는 또 정부의 에너지절약 정책에도 위배가 됩니다. 주춤하던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공공기관 자동차 짝홀제운영에 에너지절약 공문이 잊을 만하면 옵니다. 학교에서 가장 큰 걱정이 여름 전기세입니다. 그런데 일제고사는 기름값도 정부정책도 무섭지 않은가 봅니다.

아이들 꿈마저 시험에 속박돼야 할까요?

▲ 지난 5월 청주교육청 앞에서 장학날 일방적인 시험실시와 강압적인 방과후학교 운영을 규탄하는 교육시민단체 집회가 열렸습니다. ⓒ 전교조 충북지부


사실 이번 사태는 이미 예견된 것입니다. 일제고사가 시작될 때부터 학교가 시험풀이교육을 하고 학생들이 경쟁에 시달릴 것이라며 많은 국민들이 반대했습니다. 정부는 시도교육청별 점수를 공개하면서도 단지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충북교육청은 작년에 꼴찌를 했기 때문에 교육감이 사과를 하고 꼴지탈출을 위해 모든 노력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일부 교육청에서는 학교에 수업장학사를 내려보내 시험을 보게 합니다. 장학사가 시험 문제를 들고 와서 한 학급만 시험을 보게 하고 채점은 학교에 맡겨두고 갑니다. 법률적 근거와 효과를 물어보면 얼버무리면서도 그래도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물론 교육청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교사나 학생이나 방학 때 좀 덜 쉬고 공부한다고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슬픈 것은 우리 아이들의 꿈마저 시험에 속박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즘 선생님들이 장학이나 각종 회의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중간이라도 가자"입니다. 앞으로 무궁무진한 미래가 펼쳐져 있고 빛나는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 아이들에게 기껏 "전국일제고사에서 꼴찌는 하지 말자"라고 이야기 하거나, "중간등수"를 주문해야 할까요? 아이들의 꿈에도 등수를 매겨야 하는 걸까요? 일제고사를 강행하신 분들의 꿈이 바로 이런 것이었나요?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이 이런 것이라면 거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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