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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장인>-우리 전승 공예의 장인들을 만나다

등록|2009.06.24 09:57 수정|2009.06.24 09:57

▲ <장인>겉그림 ⓒ 현암사

<장인>(현암사 펴냄)은 우리 전승 공예 원세대 장인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저자는 수많은 세월, 오랜 작업 속에 농축된 장인들의 세계를 '단정한 몸가짐과 마음가짐', '풍물 연희와 풍류 생활', '생활을 가멸게 하기 위하여', '전통을 디자인하라'로 나눠 들려준다.

우리의 전승 공예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떤 과정들을 거쳐 어떻게 만들어질까? 우리에게는 어떤 전승 공예가들이 있으며 그들은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우리에게 전승 공예는 무엇이며 우리 전승 공예의 미래는? 그들은 어떻게 전승 공예와 인연을 맺었을까?

"타악기는 '영천 박씨'가 제일이다!"

1960년대, 우리 전통 악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 어떤 믿음처럼 퍼졌던 소문이다. 소문의 주인공 '영천 박씨'는 1989년에 타계한 '중요무형문화재 제63호 북메우기 장인 박균석씨'. 그는 당시 '서울 영천'에 살면서 북을 만들었다. 때문에 그를 영천 박씨라 불렀으며 그가 만든 북들은 '영천북'이란 별명까지 얻게 된다.

그는 어떻게 북과 연분을 쌓아오게 된 것일까. 인간문화재의 오늘이 있기까지의 '민중자서전'을 그로부터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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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메우기에 따라 북의 성패가 결정된다.(중요무형문화재 제63호 북메우기 장인 박균석(1919~1989)) ⓒ 김대벽


1919년생 그가 북을 만들게 된 계기는 순전히 가난 때문이란다.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가난한 살림 입 하나 덜고자' 12살에 광주 당숙네로 보내지는데 당시 그의 당숙은 농악패가 쓰는 장구를 만들고 있었고 이런 당숙의 일을 거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의 농촌 어느 마을에나 '두레'와 '농악패'가 있어서 사물놀이를 하던 때라 장구의 수요가 끊이지 않았다. 말하자면 동네북이 어느 마을에나 있어야 하는 그런 시절이라 그의 당숙은 늘 바빴다.

그런데 얼마 못가 사정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일제가 '내선일체'라는 구호를 앞세워 당제나 동제를 비롯한 조선의 것들을 없애고, 징이나 꽹과리 등 놋쇠로 된 것들을 모조리 공출하면서 농악패나 두레패까지 해체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일제의 이런 정책 때문에 장구(북)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자 박씨의 당숙은 일손을 놓게 되고 박씨는 당숙 집에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되어 무작정 상경을 한다. 그때 그의 나이 열여섯 이었단다.

박씨는 서울서 노점 등을 하며 갖은 고생을 한다. 이런 그의 눈을 번쩍 뜨게 한 것은 어느 날 종로통을 지나다 우연히 만난 북들. 유기전에 걸린 그 북들은 사찰에서 쓰는 법고(法鼓)와 춤판이나 굿판에서 쓰는 무고(舞鼓)였다. 박씨는 법고나 무고를 위탁받아 생산해내는 일거리를 찾아내 이때부터 자신만의 북 만들기에 전념한다. 그런 중 해방이 된다.

해방과 함께 사람들 입에서 억압받았던 노랫가락들이 비로소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예전처럼 어느 동네나 농악패나 두레패가 생기고 '동네북'이 응당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북의 수요가 많아진다. 북도 북 나름, 당시 박씨의 북소리는 평판이 자자했단다.

"영천북이라면 알아주었고 다른 데서 만든 것을 영천북이라고 속여서 파는 일도 비일비재했어요."

오죽했으면 이랬단다. 하지만 얼마 못 가 6·25가 터져 북도 노래도 뒷전이 되자 영천북을 찾는 사람들도 뜸해진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60년대 들어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국립국악원에서는  '우리의 전통악기들을 모두 원형 그대로 복원하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세우게 된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63호 북메우기 장인 박균석(1919~1989) ⓒ 김대벽


성경린, 박헌봉, 장사훈 등 선각적인 국악인들은 <악학궤범>을 비롯한 여러 문헌을 뒤지며 전통 타악기의 고증에 힘썼다. 임금의 행차와 출입을 알릴 때 쓰던 삭고(朔鼓), 천신 제사에 쓰던 뇌고(雷鼓), 지신 제사에 쓰던 영고(靈鼓), 인신제사에 쓰던 노고(路鼓) 그 외에 용고(龍鼓), 세요고(細腰鼓), 갈고(喝鼓) 등의 종류와 생김새, 크기 등을 고증해 낸 이들은 원형 그대로 악기를 만들기 위해 박균석씨를 찾는다. 이들과 힘을 합친 박균석씨는 18종의  타악기 중 17종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데 성공했다.…경주 불국사의 법고(法鼓), 속리산 법주사의 법고 등 전국 30여 유명사찰의 법고는 모두 그의 작품이라고.-책속에서

박씨가 중요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된 것은 1980년이다.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 법고를 출품하여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한 그 이듬해이다. 대통령상을 수상한 당시 화제의 주인공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도 했단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63호 북메우기 장인 박균석(1919~1989) ⓒ 김대벽


"평생 편안한 생활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허리 디스크도 생겼지만 외고집 하나로 북메우기 전통 기예를 끊이지 않고 이을 수 있다는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

북만들기 일생을 이렇게 회고한 박씨는 '술 한 방울 입에 대지도 못했고 화투 끝도 모르는, 그저 북만 만들면서 춘향가 한 대목 흥얼거리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다'고 덧붙인다. 옆에 있던 그의 부인은 "참으로 고집불통으로 살아온 일평생"이라고 박씨의 삶을 표현한다.

박씨의 이야기 제목은 '모든 동네마다 동네북이 있어야 하듯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동네북은 만만한 신세한탄이나 섭섭한 대접을 표현하는 말-이를테면, '내가 동네북인가? 아무나 툭툭 건들게 정도?-로 회자되고 있지만, 박씨의 북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제는 별 볼일 없는 동네북이야말로 한때 우리 민중사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섭섭한 동네북 신세와 오늘날의 전승 공예(가)들의 처지가 좀 닮긴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한때 어느 동네에나 반드시 갖췄던 동네북처럼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전승 공예품들이 이제는 필요 없어진 터, 역사의 뒤안길 속에 사라져 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들이 언제 다시 어느  마을에나 반드시 갖추던 동네북처럼 반드시 소용될 수 있으랴!

박씨의 이야기와 함께 만날 수 있는 것은 북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다. 장구, 설장구, 소리북(고장북) 메구북(줄북), 소고(小鼓), 대고(大鼓), 법고(法鼓)…. 형태와 용도에 따라 북이 이렇게 여러 가지라는 것도 놀랍다. 기껏 서너 가지 과정만 거치면 될 것 같았건만 북메우기를 비롯하여 북통 깎기나 가죽 메우기, 단청 입히기 등 여러 단계를 거치는 북 만들기의 과정이나 북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재료 이야기는 흥미롭다.

태고나 법고에는 소가죽을 쓰는데 장구는 개나 염소, 노루의 가죽을 쓰기도 한단다. 또한 북의 특성에 따라 특정 부위를 쓰는데 좌고처럼 큰 북에는 궁둥이 가죽을 쓴단다. 이는 단단하고 여문 소리를 내기 위해서란다. 배·다리·겨드랑이 쪽 가죽은 연하면서 높은 소리를 내는 용고, 목 쪽의 가죽은 고장북처럼 낮은 소리를 내는 북을 만드는데 적합하단다.

여하간 큰 북 하나를 만들려면 1년은 걸린다는데, 북 만들기의 핵심은 문화재지정명인 북메우기이다. 이는 계속 소리를 들어보면서 가죽을 조이는 기술인데 이론적으로 어찌 설명할 수 없단다. 오직 장인의 손놀림과 감각에 의존할 뿐이란다. 북메우기에 따라 몇 단계의 공정을 거친 북이 영영 쓸모없는 폐물로 전락하기도 한단다. 어쨌거나 북 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때문에 문화재 지정명칭이 됐었다. 하지만 박균석씨가 별세한 1989년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63호 '북메우기'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으로 편입되었다.

가시더라도 손은 남겨두고 가시오소서!

▲ 중요유형문화재 제4호 갓일-양태장 고정생(1907-1992) ⓒ 김대벽


▲ "가시더라도 손은 남겨두고 가시오소서!"(중요유형문화재 제4호 갓일-양태장 고정생(1907-1992) ⓒ 김대벽


이 책에 기록된 이들은 1960년대부터 지정되기 시작한 무형문화재 공예분야 제1세대들이었다. 실은 이 분들의 예능 보유를 지키기 위해 지정제도가 마련된 것이었으니 원 세대에 속하는 인물들이었다. 아슬아슬한 기회였다. 인물기행이 이루어지던 1980년대 이들은 이미 완숙된 노령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때를 놓쳤더라면 영영 만나 뵐 수조차 없었던 이들의 사진과 기록을 겨우 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기억에 대한 투쟁이라 하지만, 기억과 기록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중략) 문화재 전문 사진가로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았던 김대벽 선생은 이 책의 간행을 보지 못한 채 떠나셨다. 하지만 카메라를 만년필 삼아 그가 남긴 영상 기록들은 그리운 이들의 무형문화공예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후대의 역사에 전승되게 하고 있다.-머리말 중에서

관리만 잘하면 오래 보전할 수 있는 유형문화재들과 달리 무형문화재들은 기능보유자와 함께 아예 영영 사라지기도 한다. 용케도 누가 뒤를 잇는다 해도 사람마다 감각과 솜씨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 기능보유자 한사람 한사람의 장인세계를 기록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더우기 오늘날 우리의 전승공예 대부분은 산업화와 실용성에 밀려난 처지라 누군가 뒤를 잇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이런 기록들이 꼭 필요하리라.

이 책의 바탕이 되고 있는, 문화재 사진 전문가 김대벽과 글쓴이 박태순의 우리의 전승공예가 인물기행이 이뤄진 것은 1980년대. 이후 이들이 만난 몇 분은 이미 별세했고 김근수 유기장과 최은순 매듭장은 이 책의 출간을 앞둔 2009년에 별세했다. 나머지 분들도 고령이라 마냥 기약할 수 없는 처지이고 보면 이런 기록이라도 없었으면 이분들의 자취는 흔적 없이 사라질 뻔 했다.

▲ 북만들기에 쓰이는 박균석(1919~1989) 장인의 연장들 ⓒ 김대벽


사진을 찍은 김대벽(1929~2006.9) 스스로도 우리 문화유산 사진의 독보적인 대가로 손꼽힌다. 그는 40년을 훌쩍 넘는 시간동안 우리 문화재 속에 담긴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면을 추구, 수많은 문화재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책속에는 이미 고인이 된 우리 문화재 사진 전문가가 우리 전승 공예 장인들의 삶과 장인 세계를 진지하게 기록한 사진 200여점이 수록되어 있다. 사진만 따로 떼어 만나보는 것도 좋으리. 여러모로 남다른 책이다.

나머지 장인들의 이야기 한편 한편들이 독보적인 민중자서전 들이다. 양태장 고정생 할머니 이야기도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고정생 할머니에게서 갓양태 기술을 이수중인 딸 장순자 여사는 "혹시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더라도 손 하나만은 무덤 밖에 내놓고 가시라"고 말했단다. 이는 또한 순금 덩어리 같은 외길 인생을 살아온 우리 전승공예 장인들에 대한 우리의 애절한 소망이기도 하리라.

<장인>은 수많은 중요무형문화재 장인 중 겨우 20명을 기록(소개)한 것에 불과하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한 우리 전승공예의 세계와 그 장인들의 삶을 기록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책이다. 이 책이 표본이 되어 우리 곁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거의 잊혀지고, 죽음과 함께 결국은 영영 묻혀지는 우리의 좀 더 많은 장인들을 기록하는 바람이 활활 불었으면!

▲ 중요유형문화재 제4호 갓일-양태장 고정생(1907-1992) ⓒ 김대벽

▲물레 길쌈의 신명과 생명력-곡성 돌실나이 김점순 ▲특산품 세모시의 향토문화-한산 모시짜기 문정옥 ▲한번 맺은 매듭은 풀어내지 못하리니-매듭장 최은순 ▲제주도 여인이 지켜 온 갓 공예 전통-양태장 고정생 ▲감투도 출세도 모두 그냥 내려놓을까-탕건장 김공춘

▲의관정제의 매무시와 차림새-망건장 임덕수 ▲말뚝이의 성난 웃음과 호령 소리-동래야류 천재동 ▲모든 동네마다'동네북'이 있어야 하듯이-북 메우기 박균석 ▲고구려 궁도와 궁술을 잇기 위하여-궁시장 김기원 ▲방패연 할아버지의 연 날리기 사랑-연날리기 노유상

▲장죽의 사회풍속사와 담방구 타령-백동연죽장 추정렬 ▲안성맞춤 아직도 맞추고 있지요-유기장 김근수 ▲귀금속의 세계를 너희가 어찌 안다고-조각장 김정섭 ▲님을 향한 순금의 칼 -장도장 박용기 ▲왕골 돗자리여 하늘을 날아라-보성 삼정마을 용문석

▲명수 고수들의 법식 살리기-한옥과 도편수의 세계 ▲사람도 섬기고 문화도 섬겨라-나전칠기장 김봉룡 ▲전통공예에서 산업공예로 어찌 나가나-나전칠기 끊음장 심부길 ▲조선 목가구는 살아서 숨쉰다-소목장 천상원  ▲전통공예 기술과 예술의 통합을 위하여-두석장 김덕룡
덧붙이는 글 <장인>-우리 전승 공예의 장인들을 만나다(박태순 씀, 김대벽 사진 / 현암 출판사 / 2009.5 /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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