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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집과 커피의 그윽한 만남

남양주의 로스팅 카페 '고당(高堂)'

등록|2009.06.23 21:43 수정|2009.06.24 08:07
타오는 남양주의 로스팅 카페 '고당(高堂)'를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지난번 춘천 가는 길에도 다음을 기약했던 그 집입니다.  타오는 외국의 파트너가 오면 한 번씩 발걸음을 하는 곳이라 했습니다.

▲ 솟을대문에 막 들어서면 행랑채가 반기고 그 행랑채로 등을 두고 90도를 돌아 내외담을 지나야 안채 마당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낮은 한옥의 안채와 너른 마당이 우리 조상님들의 심성처럼 여유롭습니다. ⓒ 이안수


한옥의 '멋'과 그들의 것이지만 그들이 갖추지 못한 격조까지 갖춘 커피 '맛'에 대한 신세계를 체험키 위한 발걸음이지요. 그들은 늘 그 발품에 경탄으로 답하곤 했다는 곳입니다.

안채와 별채, 행랑채와 정자들의 알맞은 배치와 적당히 빈 안마당과 소담한 후정, 안과 밖을 가르기보다 오히려 소통하게 하는 창살과 문살, 산그림자 같은 처마의 곡선에 감탄하고 품이 들어간 즉석 로스팅과 핸드드립의 커피에 숙연해지는 표정을 읽는답니다.

▲ 아래 정자의 열린 문으로 본 초록. 어떤 화가가 이처럼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겠습니까. ⓒ 이안수


고당은 한옥에 관심이 지대한 아버님이 12년 전에 제대로 지은 한옥에 그 첫째아들이 커피를 매치시켰습니다.

고당의 한옥은 세월이 길지 않음에도 수백 년 반가 가옥 종택(宗宅)의 엄정함을 갖추었습니다.

▲ 아래정자 마루방 코너에 세워둔 그림 한 점. 빈 바리때 그림아래에 스님들께서 공양을 받을 때 지켜야하는 절차를 정한 식장작법의 오관게五觀偈가 새겨져있습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計功多少 量彼來處 忖己德行 全缺應供 放心離過 貪等爲宗 正思良藥 爲療形枯 爲成道業 應受此食 스님들께서는 쌀 한 톨이라도 시주하시는 분의 정성에 의해 마련된 것이므로 그분의 노력과 정성에 대한 고마움을 깊이 새기고, 밥 먹는 일조차 수행이라 생각하여 엄정한 절차를 따릅니다. ⓒ 이안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행랑채가 이어지고 멀리 발을 소박한 연못에 담근 아래정자가 보입니다.

왼쪽으로 돌면 내외담(차면遮面담)이 키 높이로 서있고 그 문턱을 넘어서면 너른 마당과 안채가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배전기와 핸드드립에서 뱉어내는 커피 향을 머금고 있습니다.

▲ 한옥의 창살과 로스팅 기계. 이 부조화의 조화 ⓒ 이안수


대청마루는 커피바가 되고 다른 대청과 방들에는 손님들이 커피와 만나는 소반이나 차탁같이 낮은 나무 테이블들이 놓였습니다.

키 낮은 내외담이 남여유별의 법도를 지키면서 음양의 조화를 일궈내듯 한옥과 커피의 어울림이 생경하기보다 멋스럽습니다.

▲ 저의 처도 이 집의 여유로움에 오랜만에 웃음을 지었습니다. ⓒ 이안수


이른 아침이라 커피를 마실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한옥의 여유 때문인지 집안 곳곳을 둘러보는 우리의 발길을 내치지는 않았습니다.

한옥은 정갈함과 여유, 예의와 법도를 생각나게 합니다. 헝클어진 마음을 가지런하게 다시 추스르는 효험이 있습니다.

▲ 별당앞의 매실나무. 소담스럽게 익은 주황빛 매실을 달고 있습니다. 이 매실은 제가 이 집을 다녀 온 이틀 뒤 수확해 설탕에 재웠답니다. 다음에 방문하면 이 매실로 만든 매실차를 마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안수


수백 년을 살아남은 고택들이 그 관리의 어려움과 생활의 방편을 위한 도시집중화로 점점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합니다. 사람의 온기를 머금지 않은 빈 집은 금방 낡아 폐허가 되기 십상입니다. 기껏 30년의 수명을 유지키도 어려운 도시의 콘크리트 아파트와 연립주택으로 이주하기 위해 1000년을 견딜 수 있는 잘 지은 한옥이 빈집으로 방치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입니다.

▲ 흰 창호지와 검은 문고리. 백과 흑이 한몸처럼 조화롭습니다. ⓒ 이안수


고당이 보여주고 있는 한옥 용도의 전환은 아직 쓰임을 찾지 못한 채 부담스러운 유산으로만 여겨진 한옥 종가의 식구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 격조가 흐르고 있는 연못정자라고도 불리는 아래정자 ⓒ 이안수


안목 높은 제비가 이 고당 행랑채의 처마 밑에 둥지를 마련했습니다. 일찍 깨어난 제비새끼들은 이미 마루를 오르내리며 비행연습을 하고 있고 둥지를 떠나지 않은 형제자매들도 이제 곧 비상이 임박한 것 갔습니다. 한옥과 제비집의 이 아름다운 조화처럼 한옥과 현대의 삶이 어우러지는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올해 이곳을 고향으로 해서 태어난 제비 형제자매들중 일부는 행랑채의 마루를 오르내리며 비행연습중이며 아직 둥지를 벗어나지 못한 녀석들은 둥지에서 비행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이안수


핸드드립이나 에스프레소를 배워볼 수 있는 커피아카데미가 개설되어있고 한 달에 한번은 안마당에서 소박한 마당음악회가 열린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 이런 한옥에서는 걸음이 느려지고 서선은 탐색이나 탐욕대신 여유를 살피게 됩니다. ⓒ 이안수


이 집을 몇 년간 출입한 타오조차도 오래된 종가집을 개축한 것으로 여길 만큼 고당은 허튼 구석 없이 섬세한 정성으로 지은 집입니다.

이 한옥에 대한 몇 가지의 사실 확인을 위해 이 집의 둘째아들인 김지훈씨와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고당을 신축하신 분은 현재 이집에서 '고당커피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첫째아들 김재윤씨의 아버님인 김병렬 선생님입니다. 김병렬 선생님은 음식솜씨가 남다른 부인과 함께 1988년도 고당과 지척에 있는 '기와집순두부'집을 창업하여 명성을 얻었고 그 명성에 힘입어 서울과 경기 인근 여러곳에 체인점 형식으로 순두부집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번 큰돈을 거반 이 고당을 신축하는 일에 아끼지 않고 쏟아 넣었습니다. 88칸 고당은 제대로 된 한옥을 갖고 싶다는 김병렬 선생님의 우직한 열망의 결과인 셈입니다. 10여 년간 준비기간을 거쳐 15년 전에 착공한 다음 3년간의 시공을 거쳐 12년 전에 완공했습니다.

수도권 몇 곳의 순부두집을 남기고 남양주의 기와집순두부집은 다른 분께 양도를 하고 김 선생님 부부는 2000년에 은퇴를 합니다. 거주를 목적으로 한 애초의 계획대로 이 집에서 은퇴 후의 삶을 향유했습니다. 하지만 김재윤씨의 어머님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찾아오는 분께 차를 내곤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당은 여전히 거주가 주가 되는 집이었습니다.

지금의 커피집은 대금을 전공한 국악인인 김재윤씨가 커피의 세계에 빠진 탓이었습니다. 김재윤씨는 일본까지 가서 커피를 공부하고 작년 4월에 이 한옥에 로스팅카페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커피집으로서의 고당도 기반이 충실해져서 컴퓨터를 전공한 둘째 지훈씨조차 커피무역회사를 준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고당을 활용한 커피집의 오픈에 크게 반대했던 김병렬 선생님 부부는 이집 별당의 일부를 점유하고 여전히 한옥의 삶을 즐기며 아침마다 정원을 돌보는 일에 몰두하고 계십니다. 부부의 손맛으로 큰돈을 얻게 되었고 그것을 헛되게 소비하는 대신 앞으로 대를 물릴 한옥 유산을 남기는 일에 아낌없이 쏟아 넣었습니다. 김선생님은 고당 앞 2천여평의 부지에 일군의 초가집들을 신축하여 '조안 민속한마당'이라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전통문화체험장을 완성할 계획입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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