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가입 못하는 공무원 "우리는 현대판 노예다"
민공노 출범 2주년 토론회... 토론자들 "정부가 공무원 단결권 탄압"
▲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대우증권빌딩 컨퍼런스홀에서 '공무원노동자의 단결권, 제대로 보장되고 있나"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선대식
"우리는 현대판 노예다."
한 소방공무원의 말이다. "근무 환경이 열악하기 그지없다"는 지적이다. 이들에게 주 5일제는 먼 나라 얘기다. 24시간 맞교대로 주 84시간 근무한다. 주 40시간 근무자보다 월 195시간 초과근무를 하지만 평균 66시간의 시간외 수당만을 받는다. 나머지 129시간은 사실상 '유노동 무임금'이다.
노동3권을 보장하는 헌법에 따라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어 스스로 권익을 높일 수 있지만, 소방공무원에게는 노조를 만들 권리가 없다. 다른 공무원들도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의 가입 제한 규정에 따라 단결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대우증권빌딩 컨퍼런스홀에서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민공노) 이 주최한 '공무원 노동포럼' 토론회에서는 공무원노동자의 단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공무원이 노동3권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국제협약 위반"
첫째 발제자로 나선 문무기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결권은 자연권"이라며 "경찰과 군인을 제외한 모든 공무원에 대하여 최소한 단결권만이라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무기 교수는 "공무원노동자가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국제노동기구(ILO) 제87·98호 협약 위반"이라며 "국제기구에서는 관련 법 개정을 우리 정부에 수차례 권고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결사의 자유 등을 규정하고 있는 87호 협약은 2009년 5월 현재 ILO에 가입한 183개국 중 81.4%인 149개국이 비준한 상태다. 159개국이 비준한 98호 협약은 노조 가입자에 대한 차별 금지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두 협약을 아직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의 품격을 얘기하지만, 80% 이상의 국가가 비준한 협약을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고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우리나라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지만, 노동하기는 힘든 나라"라고 밝혔다.
권두섭 변호사는 헌법 6조 1항(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을 언급하며 "87·98호 협약을 국내법으로 적용할 수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노조가입 제한은 '반쪽 노동법'... "정부가 개입할 문제 아니다"
▲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대우증권빌딩 컨퍼런스홀에서 '공무원노동자의 단결권, 제대로 보장되고 있나"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선대식
공무원노조법과 관련해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많은 지적을 받은 것은 노조의 가입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공무원노조법 등에 따라 경찰·소방·교도행정·군 등의 공무원들과 5급 이상 공무원들은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6급 이하 공무원에 대해서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이 보장되고 있지만, 파업권과 정치활동은 금지되고 있다. 6급 공무원 중에서도 일부는 노조가입 제한 대상이다.
정용해 민공노 정책실장은 "교육공무원 등을 제외한 56만 명의 공무원 중 공무원의 종류·직급·직무의 성격에 따른 노조 가입 제한으로 29만 명만 단결권을 향유할 수 있다"며 "결국 단결권에 대한 광범위한 제한은 공무원 노조법을 '반쪽 노동법'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용자인 정부의 각종 지침과 계획들로 인해 노조 가입을 비롯한 기본적인 활동마저도 위협당하고 있다"며 공무원 단결권에 대한 정부의 탄압을 비판했다.
"행정안전부는 2009년에도 징계·고발, 가중처벌, 행정·재정적 불이익 등을 앞세워 공무원 단결권을 탄압하고 있다. 경기 시흥시청의 경우, 차기 지부장 및 지부임원 선거에 출마할 대상자들을 예견하여 미리 징계조치하고 단체교섭 거부의사를 표시했다."
이에 대해 권두섭 변호사는 "민간 노사관계에서는 대놓고 못하는 행위들을 버젓이 법의 이름으로 탄압하고 있다"며 "노동조합의 가입 범위는 노조 규약으로 해야 한다, 사용자인 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반면, 2004년 공무원노조법 심사에 참여했던 노항래 민주당 정책위원회 전문위원은 "공무원노조법은 악법이 아니다, 작은 진전이었다"며 "노조에서는 단결권의 확대 등을 주장하는데, 중요한 것은 국민 다수의 동의와 합의다,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좋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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