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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이 양계장 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등록|2009.06.24 16:04 수정|2009.06.24 16:04
제목 치고 좀 길다는 느낌이 들지요? 이유가 있습니다. 어제(23일) 출타했다 돌아오니 사택 현관에 30개 들이 계란 다섯 판이 놓여 있었습니다. 교회를 비울 때 가끔 방문한 손님들이 선물을 놓고 갈 때가 있습니다. 간단한 메모를 남겨 어떤 분이 다녀가셨는지를 눈치채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메모를 남기지 않았다고 해도 물건을 보고 사람을 대충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놓고 간 계란 선물에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계란 위에 놓여진 메모가 이 글의 제목으로 올린 내용입니다. "저의 집이 양계장을 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교인 중 양계장을 하는 사람이 없으니 우리 교회 성도는 일단 아닙니다. 또 내가 아는 몇 분 양계장을 하는 사람이 있긴 한데 메모의 내용으로 보아 아는 분이 아닌 것도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알지 못하는 어떤 분이 갖다 놓았다는 말이 됩니다.

어떤 분일까?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며칠 전 수요 낮 노년부 예배 뒤 점심 식사 시간에 전순남 집사님이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몸이 아파 병원엘 다녀왔다고 합니다. 버스를 타려고 서 있는데 지나가는 승용차가 멈추어 서더니 병원까지 친절하게 수송해 주었다고 합니다. 병원 가는 승용차 안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선행을 베푸는 운전자가 교회에 나간다는 말에 전순남 집사님도 자신도 덕천교회에 다닌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한데, 그 운전자가 우리 덕천교회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사모님에 대해서도, 그리고 우리 노년부 사역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고 있어 놀랍기도 하고 한편 자긍심 비슷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혹시 그 분이 할머니들고 함께 식사할 때 쓰라고 갖다 놓으신 것은 아닐까?

저는 계란을 생각하면 잠복되어 있는 컴플렉스가 머리를 치켜듭니다. 초중고를 다니면서 도시락을 거의 싸 가지고 다니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혼자 생활해 온 탓에 그런 것을 챙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점심 시간에 아이들 도시락 먹는 것을 멀찍이서 바라만 봐야 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계란 후라이를 도시락에 얹어 온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 계란 후라이 하나면 나에게 좋은 요기가 될 텐데... .

누군가 놓고 간 다섯 판의 계란을 보고 놀란 것이 또 있습니다. 저는 저렇게 큰 계란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쌍생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두 개가 합쳐 한 알이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클 수가 있겠습니까? 공동식사 시간에 할머니들과 함께 반찬을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하니 그 자체로 포만감에 젖게 됩니다. 나눈다는 것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더라도 나누지 못합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왕 계란 다섯 판을 살며시 놓고 가신 분의 마음은 몹시 넉넉하고 따스할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이 메말라가는 시절,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 마치 유행이라도 되는 양 일반적 조류가 되어가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살며시 인정을 표현하는 분들이 많이 숨어 있고, 그 인정이 사랑의 원자탄이 되어 급속하게 확산되는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사회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받은 것으로 감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저것을 또 여러 사람과 나누어, 주신 분의 사랑에 보답해야 할 마음을 다져봅니다. 왕 계란 다섯 판을 받고 감사함을 글로 남기는 것은 이렇게라도 사랑의 일부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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