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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옛골목들의 합창, 사람을 풍기다

등록|2009.06.25 13:29 수정|2009.06.25 13:29
1950년 6월 25일.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하며 가슴 속 깊이 새겨야 할 또 다른 역사가 만들어진 날이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흐른 대한민국은 '분단'의 아픔마저도 - 잠시 잠깐 감정적인 불편함을 느낄 뿐 - 일상생활의 익숙함으로 받아들일 만큼 성숙해졌다.

그때 그곳의 기억을 발판삼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부산 도시 끝 언저리에 자리한 보수동 책방 골목과 신창동 국제시장 깡통 골목이 생활터전인 그들. 과거를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 그 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책과 책 사이... 보수동 책방 골목

▲ 옛 부터 한국이 사랑해 온 전통 ‘여백의 미(美)’ - 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곳에 빽빽이 자리하고 있는 수많은 책들은 오늘날까지 함께해 온 시간의 길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것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 김다애


6월 9일 오전 9시 50분. 비오기 직전의 후텁지근함이 이마 위의 땀으로 송골송골 맺히는 날씨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다. 좋아하는 비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렘이란, 참 달콤하므로. 울산 남창역에서 출발한 부산 부전행 기차를 타고 1시간 가량을 달려 부전역에 도착, 또 다시 지하철로 선회했다.

1호선 중앙동역에서 하차, 7번 출구를 찾아 밖으로 나왔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드디어 바퀴에서 벗어났다는 다행스러운 해방감으로. 목적지 골목을 찾던 중 거칠게 움직이는 기계 사이로 잉크와 종이냄새가 즐비한 인쇄 골목과 용두산 공원 꼭대기에 자리한 부산타워도 잠깐 구경했다.

그렇게 20분을 걸어 도착한 보수동 책방 골목. 사진기의 스위치를 켜고 골목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8·15광복 직후 일부 주민들이 일본인이 남긴 책들을 팔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다. 6·25전쟁 후에는 피난민들이 생계를 위해 미군 병사들이 읽다 만 헌 잡지와 책, 그리고 학생들이 보던 참고서 등을 팔았다. 그 이후 대학교수들과 학생들의 필요에 의해 책방이 늘어나자 본격적인 가건물이 들어서면서 '헌책방 골목'이 탄생하게 됐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보듬으며, 힘겹게 찾아야만 했던 삶의 이유. 부끄럽게도 오늘 우리는 삶의 여유를 느끼고자 그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저 멀리 흘러간 우리의 시간, 옛 기억을 찾는 통로가 되고 있었다.

"미세스 박! 미세스 박! 이것 좀 먹어요~" 요구르트 아줌마가 책방 앞 의자에 앉아 깜빡 졸고 있는 할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응?! 언제 왔노? 아이고 덥네~" 집에서도 듣는 익숙한 사투리지만 그 속에서 오고가는 사람 간의 정은 항상 풋풋하다.

▲ 서로의 안부를 묻는 서점 미세스 박과 요구르트 아줌마 ⓒ 김다애


대화의 꽃을 피워보고자 천천히 다가갔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그러자 고개를 돌리며, "놀래라! 나 부른겨? 할머니라고?! 자네가 날 '미세스 박'이라 불러주면 좋겄는디, 학생은 쪼까 어리니까 별수 없네. 다음엔 나이 좀 들어서 와!" 자주 듣는 칭찬(?)이라 낯 뜨겁진 않았다. "근데 사진도 찍었나? 오늘은 안 되는디~" 주섬주섬 맛있는 과자를 주워 먹듯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헌책을 사고판다는 전통은 아직 유효했으며, 할아버지 서재에서나 볼 법한 책들이 높은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책'이 주는 멋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귀에 닿는 말보다 눈으로 보는 글의 운치가 잔잔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현재 부산 중구청은 이곳 보수동 책방골목을 전통문화거리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날 거리 바닥에 깔리고 있던 화강석에는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고, 향후에는 방송시설을  설치해 음악이 흐르는 거리로도 변화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책을 사고팔았던, 생계만을 위했던 공간이 이제는 문화적 공간으로 변화하는 시점을 맞이한 것이다.

다양한 삶의 공존... 국제시장 깡통골목

▲ 깡통골목에는 다양한 삶이 함께한다. 한국전쟁 후 생계를 위해 피난민들이 벌인 것과 같이 미국ㆍ일본 등지에서 가져온 다양한 식품들을 파는 상점들, 어르신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한편,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제품으로 가게 내ㆍ외부를 한껏 치장한 가게들은 젊은 여성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공간의 포용력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 김다애


보수동 책방 골목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마주한 신창동 국제시장. 1945년 8·15광복과 1950년 6·25전쟁 당시 일본인들과 미군들이 남기고간 전시 및 군용 물자, 그리고 부산항으로 밀수입된 온갖 상품들이 이곳을 통해 전국으로 공급됐다.

국제시장의 복잡하게 이어진 미로 같은 골목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깡통식품을 주로 팔았다하여 붙여진 이름, 바로 '깡통골목'이다. 가판대 위에 넓게 펼쳐진 물건들 사이로 곧게 뻗어있는 골목과 골목. 이곳에서 가장 많이 주워 담게 되는 즐거운 거리들은 40~60대로 유추되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추억들이다. 저마다의 삶과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입을 맞추며 과거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거 옛날에 많이 먹던 거네~", "그러네~ 5원에 10개씩 사가지고 몰래 까먹고 했는데~", "호호호~" 이렇게 웃고 떠들며 말만 하는 손님들이 지겨웠는지 주인아주머니가 몇 마디 크게 던졌다. "먹는 거 앞에 두고 왜 구경만 하는 거여! 먹을 거면 한 봉지 사서 가~!", "그럴까요? 호호호~" 뭐가 그리 재미있었던 걸까? 어찌됐든, 주인아주머니가 바라던 대로 거래가 성사됐다.

스키니 진과 스트랩 힐. 레깅스와 검은색 에나멜 백. 8개 숫자(학번)가 크게 적힌 책 한권과 A4크기의 파일. '시장'과 적절하게 어울리지 못할 복장으로 생각되지만 이곳에서는 괜찮다. 길목 끝자락 저편에서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들로 지나가는 여심을 붙잡는 서너 곳의 상점들 때문이다. 실질적인 필요성의 여부와는 별개로, 물건 자체가 지니고 있는 미적 가치를 자신의 그것과 동일시하려는 젊은 사람들의 성향에 아주 적절하게 부응하고 있었다. 그만큼 충분히 예쁘기도 했다.

골목과 골목 사이, 사람을 만나다

▲ 김밥, 떡볶이, 순대, 김치, 부침개 등을 팔고 있는 상인들과 이들의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있는 사람들. 아리랑 골목은 국제시장과 PIFF광장이 만나는 또 다른 골목이다 ⓒ 김다애

하루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좁은 골목들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으며 이렇고 저런 사람들 구경한 것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런 오늘임에도 시간은 정말 잘 흘러갔다. 소문으로만 익히 들어왔던 '명소'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놀랄만한 웅장함과 번쩍이는 화려함 등에만 익숙한 우리라면 오히려 좌절감을 맛봐야 할 테니 말이다. 그리하여 시작된 토막짜리 감상이었다. '역사'를 기억해야 할 자의 도리로서.

지난 몇 십년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인간의 무한한 욕망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도시를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덮어버렸다. 우리는 또 그것을 '기적'과 같은 것으로 칭송했다. 그 후 새로움과 화려함에 대한 갈망은 우리를 변하게 했다.

그렇게 변화된 우리의 가슴 속에서 '역사'는 제자리를 지키고 견디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역사는 그것을 기억하는 자의 몫이었음을. 때문에 역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다루는 방법과 노력의 정도가 변화한 것일 뿐. 어떤 위로의 말로 우리를 뉘우쳐야할지 곰곰이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했다.

언제나 그럴 테지만, 요즘 들어 부쩍, 옛날과 그때 그 시절 그리고 예전이라는 시간이 더욱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그 때보다 못한 생활 속에서 힘겨움을 이겨내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아서, 자꾸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로 지나가버린 것들과 지금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추억하는 것은 그것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인간의 작은 욕심일 것이다. 다행히도 그 욕심은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작게나마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높은 건물에 가려 쉽게 찾을 수 없었던 골목과 골목 사이. 그리고 그곳을 누비는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정.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와 버렸지만, 그때 그 사람들과 오늘 이 사람들이 이곳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골목과 골목들이 어울려 커다란 한 길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저런 너와 이런 나도 인연과 같은 만남을 통해 삶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으므로.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살맛나는 세상을 향한 작은 몸부림, 그저 즐거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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