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성의 소리는 이 푸른 차밭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 김현
보성 하면 녹차밭을 떠올린다. 보성을 간다고 하면 녹차밭 간다고 생각할 만큼 보성은 녹차로 유명하다. 나 또한 몇몇 지인들과 그 보성의 녹차밭을 가고 있다.
사람 사는 곳이 속세 아닌 곳이 없지만 그저 집을 떠나 길을 잡는다는 것 하나만으로 괜히 속세를 떠나는 느낌이 든다. 그 느낌만으로 잠시나마 행복해진다. 길가에 모내기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눈에 띈다. 모내기기 끝난 논에선 어린 모들이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고개를 들고 있다. 지금 뿌리는 내리지 못한 모들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힘겨운 싸움에 이긴 모들은 건강하게 자라 가을을 수확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모들은 시름거리다 작은 해충이나 바람에 쓰러지고 말 것이다. 그 어린 나락들을 바라보며 사람도 저 나락(모)과 다를 바가 뭐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관광지가 된 보성 녹차밭, 땀도 있었다
▲ 보성 차밭 입구에 늘어선 메타세콰이어가 길손들을 맞이한다. ⓒ 김현
보성은 차의 고장이기도 하지만 소리의 고장이기도 하다. 특히 담양과 함께 서편제의 본향이기도 하다. 또한 판소리 보성소리로 유명한데, 이 보성소리는 오늘날 전승되어 불려지고 있는 소리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리로 계면조(서름조)의 슬픈 정서를 잘 담아내고 있다.
사실 보성은 소리의 공간이고 차밭의 공간이면서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보성이란 곳은 땅끝 외진 곳이다. 이곳은 백범 김구 선생도 한때 피신을 했던 곳이라 한다. 또 보성의 벌교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무대이기도 할 만큼 민족적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차밭에 도착했다. 매표소를 지나 오른편에 있는 가게로 향했다. 그곳에서 푸른빛이 감도는 녹차쉐이크를 하나씩 입에 물고 차밭을 올랐다. 오르기 전에 바라본 차밭은 두 가지 모습을 하고 있다. 아래쪽은 푸른빛이 생생하게 넘치는데 위쪽의 그 빛이 연하디 연했다. 위쪽은 기계를 이용하여 차나무 머리 깎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로인해 빛의 차이가 난 것이다.
▲ 푸르른 빛을 머금은 차밭 ⓒ 김현
▲ 한 장 찰칵 해야지 ⓒ 김현
어떤 이는 이런 차밭의 푸른 풍광이 보성소리를 길러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만큼 보성소리는 주변의 풍광과 남도의 길, 바닷가의 삶들이 어우러져 나왔다고 한다. 위로 올라가자 차나무의 머리를 깎던 아주머니들이 나무그늘을 찾아 새참을 먹고 있다. 새참이라야 음료와 빵이지만 먹는 모습이 맛나 보인다.
또 한쪽에선 잡초를 뽑고 있다. 아주머니의 이마엔 땅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인사를 건네며 "더우시죠?" 하니 "많이 덥지라잉" 한다. 그러면서 차잎 하나 따주며 먹어보라 한다.
"이거 먹도 되는 거예요?"
"암토 안치라요. 먹어보며 쌈싸로니 조틴게요."
"어, 그러네요. 그런데 지금 따는 차잎은 어디에 쓰나요?"
"공장 같은 데로 많이 나가지요. 그냥 먹는 차 만드는거 머 그런거요."
요즘 따는 차 잎은 주로 티벡용 차로 나가는 듯싶었다. 아주머니와 헤어지며 차 잎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데 옆에 함께 있던 친구가 먹지 말라고 한다. 농약이 묻어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는 잎을 손에 들고만 있을 뿐 잎 근처엔 대지도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잎 하나 깨물었다고 몸 이상 있는 거 아닌게 괜찮여.' 하며 잘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는 손에 작은 생채기만 나도 염증 생길까봐 물을 안대는 친구나. 어제도 손등에 긁힌 자국 때문에 한 손으로 머리를 감았다며 말한 친구니 농약 성분이 묻어 있을까봐 차 잎을 입에 대지 않은 것은 이상할 게 전혀 없다.
차밭에서 내려와 대숲으로 발을 옮겼다. 보통 보성 차밭에 와서 녹차 밭만 보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차밭으로 오르기 전에 왼쪽의 대숲을 가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 일행이 갈 때도 차밭에 사람들이 많았으나 대숲엔 거의 없다.
대숲은 차밭을 구경한 다음 가는 게 좋다. 볕을 막아주는 그늘이 없는 차밭에 있다가 그늘로 가득 찬 대숲은 시원한 청량제와 같다. 대숲을 오르는 계단을 오르는 길도 그런대로 운치가 있다. 그 대숲 가는 길에 일본인과 동행을 하게 됐다.
▲ 차밭엔 농민들의 땀방울도 섞여 있다 ⓒ 김현
▲ 대나무 숲 오르는 길이 시원하다 ⓒ 김현
돈은 없어도 여행은 다니지요
▲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왕대 ⓒ 김현
그의 이름은 오츠까 시게르다. 올해로 이른 다섯이란다. 그의 어께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배낭이 걸쳐있다. 손엔 카메라가 들려져 있다. 그는 지금 배낭여행 중인데 한국말로 의사소통은 할 정도로 한다.
"여행을 좋아하세요?"
"많이 좋아해요. 1년에 세 번, 네 번 정도는 이렇게 배낭여행을 떠나요."
"혼자 다니세요? 경비도 많이 들 텐데…."
"네~. 혼자 다니지요. 돈은 없어도 여행은 다녀요. 더 늙으면 가고 싶어도 못 가잖아요."
그의 여행은 여유가 있어 다니는 게 아니란다. 조금씩 돈을 모아 빠듯하게 다니지만 여행을 통해 건강도 얻고 행복도 얻는다며 순하게 웃는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일본의 큐슈 지방에도 보성과 같은 대단지 녹차 밭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쯤이 장마철이라며 비가 많이 올 거라 한다. 한국보다 좀 빠르게 장마철이 시작되는가 싶다.
몇 몇 친구가 시게르 씨와 이야기하며 부러워한다. 그런데 그 부러움이란 게 많은 나이에도 젊은 사람 못지않은 열정을 가지고 홀로 여행을 한다는 점이다. 나 또한 그게 부러웠다. 그보다 많이 적은 나이인데도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요 핑계 저 핑계로 여행을 미루는 나다. 그의 모습을 보면 여행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 즉 몸을 움직이는 것임을 알게 된다.
▲ 배낭여행을 한다는 오츠까 시게르 씨 ⓒ 김현
▲ 사랑의 징표를 남기고 이들의 흔적들 ⓒ 김현
대숲은 그리 넓지는 않지만 왕대가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어있다. 왕대는 '늦죽'이라고도 하는데 죽순이 나오는 시기가 솜대나 맹족죽보다 조금 늦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른 팔뚝 굵기 만한 대나무엔 숱한 사랑의 자국들이 대의 몸을 할퀴고 있다. 어디 가서 한국 사람의 흔적을 보려면 박물관이 아니라 바위나 담벼락을 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은 무언가 흔적 남기길 좋아하는가 보다 생각하면서도 좀 참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꼭 연인과의 사랑이나 가족간의 사랑이 살아있는 것들에게 표식을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편으론 대나무에 새겨진 사랑(?)의 표시들을 읽는 것도 심심하진 않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대숲을 바라보며 한 친구가 젊은 시절 경험했던 대숲에 대한 이야길 한다. 낮의 대숲은 정겹고 밤의 대숲은 무섭더란 것이다. 이유를 물은즉 낮에 대숲에 앉아 있으면서 바람에 살랑이며 대나무 잎이 부딪히는 소린 그렇게 정겹게 들리는데, 밤에 대숲에 있으면 그 대나무 잎 부딪히는 소리가 으스스하게 들려 무섬증이 오싹 인다는 것이다.
대숲에서 내려오며 시게르 씨하고도 작별 인사를 했다. 시게르 씨는 이제 버스를 타고 여수로 간다면 악수를 건넨다. 언제 전주에 오면 전주막걸리 한 잔 대접하겠다며 연락처를 적어주니 꼭 한 번 들르겠다고 한다. 그를 마중 아닌 마중을 하며 내 나이 칠십 오세면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나도 시게르 씨처럼 여행을 하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새삼 그의 삶과 행동이 부러워졌다.
▲ 대나무 숲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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