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말문 내가 먼저 터야
6개월간 연락을 끊고 지낸 분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앞으로 더 깊어졌으면 해요
▲ 아버지와 아들의 걸음걸이나와 그 분의 걸음걸이가 앞으로 아버지와 아들 만큼의 걸음걸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장성남
6개월 넘게 헤어진 채 지냈던 분을 엊그제 다시 만났습니다. 뜻하지 않는 일로 인해 그토록 긴 시간 동안을 연락하지 못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주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서로간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그저 마음 한 구석을 비우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 문이 이제야 트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 굳게 닫힌 문도 보통은 많이 가진 사람이 적게 가진 사람에게 먼저 다가설 때 트이기 시작합니다. 나이 많은 어른이 나이 어린 사람 앞에 다가와 손을 내밀어 잡아 줄 때에 더 손쉽게 트입니다. 손해를 덜 입은 사람이 손해를 많이 입은 사람에게 다가와 위로를 건널 때에 그 서먹함이 순식간에 풀립니다.
서로 사랑하라
그게 자연이 주는 이치이라지만 성경 어딘가에 나온 이 한 구절로 인해 내가 먼저 말문을 트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일방적이지 않고 의무적이지 않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그저 마음 이끄는 대로 내가 먼저 소통의 문을 열면 되겠다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한 참 나이 어린 나였지만 그 까닭에 그 어르신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것입니다.
이신전심이라고 하였던가요. 그 분을 만나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분도 이미 나와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며칠 전 꿈에 나타난 바 있듯이 그 분도 얼마 전부터 내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소통은 그래서 말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전달되는 게 분명했습니다.
한 번 사람을 겪고 난 뒤에 그 사람과 다시금 함께 어울릴 때에는 그만큼 더 조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 그 사람의 성품을 잘 알기에 서로에게 해가 될 일과 말 실수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더욱 신경을 쓸 것입니다. 걸음걸이조차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것 역시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든 적은 사람이든 서로가 조심해야 할 몫입니다. 많이 가진 자이든 적게 가진 자이든 서로가 더욱 존중해야 될 일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배려하면 세상에 그보다 좋은 관계도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보다도 더 진한 사이가 될 것입니다.
그 바람을 품을 수 있었기에, 6개월 동안 헤어졌다 만난 그 분과의 만남이 더욱 새로워진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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