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m의 647층 꼭대기에 인간애가 있을 줄이야!
[서평] 배명훈 첫 소설집 <타워>
▲ <타워> 표지 ⓒ 오멜라스
배명훈의 첫 소설집 <타워>는 그 빈스토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여섯 편의 이야기가 연작소설로 구성됐는데, 그 모습이 만만치 않다. 다양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바벨탑에 비유되는 가상공간의 정치, 사회, 경제, 외교, 문화 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소설집은 정 교수와 그가 고용한 박사들이 술병에 전자 태그를 붙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이 태그를 붙이는 이유는 권력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고급술은 선물하기에 알맞은 선물이었다. 그런 만큼 그것이 어떻게 도는지를 쫓으면 자연스럽게 권력 분포 지도를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연구는 성공하는데, 그 결과가 황당하다. 영화에 출연하는 개가 술을 선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당황한 박사들은 개를 제외하고 다시 연구를 시작하는데 뭔가 걱정이 된다. 정 교수의 아내가 이제 막 출산했기에 그곳에 찾아가서 '눈도장'을 찍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선물을 사들고 24층에서 647층까지 올라간다.
그 과정은 간단한가? 아니다. 엘리베이터는 일직선이 아니다. 계속 갈아타야 한다. 예컨대, 24층에서 30층까지만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탄 뒤에 자리를 이동해서 40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번거로워 보이지만 빈스토크는 그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설치한 것이다.
덕분에 박사들은 참으로 모진 고생을 한 끝에 647층에 오르는데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우스꽝스럽다. 그들의 모습이 곧 권력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 모습은 빈스토크의 모습을 상상하게끔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그곳이 어떤 세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소설 '자연예찬'에서는 과거에 비판적인 글을 쓰다가 이제는 '자연예찬'하는 글을 쓰는 소설가가 등장한다. 그는 왜 그리 자연예찬을 하는 것일까? 빈스토크 밖으로 나가지도 않으면서 대지와 지구의 아름다움을 왜 그리 찬란하게 축복하는 것일까? 빈스토크의 권력자들이 무섭게 때문이다. 이 세계는 누구든지 털면 먼지 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소설은 소설가의 어떤 두려움을 통해 빈스토크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그것은 조금은 오싹한, 조금은 지저분한 것이기도 하다.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는 어떤가. 빈스토크는 외부의 어떤 세력과 대립하는 중이다. 전쟁도 불사할 태세다. 그런 중에 어느 사람이, 군대에 다녀왔지만 빈스토크에 들어가기 위해 재입대한 남자가 빈스토크와 그의 적 사이에 고립되고 만다. 빈스토크는 그를 구해줄 것인가? 아니다. 그곳은 냉혹한 곳이다. 모른척한다. 그 남자는 그것이 서운할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빈스토크에 들어가려고 했던 이유는 무언인가. 그곳에 취직한 여자 친구 때문이었다. 빈스토크는 외부 지역과 철저하게 차별된 곳이었다. 오직 자신들만 위할 뿐, 다른 도시와 국가는 철저하게 차별하고 있었다. 남자가 여자 친구와 멀어지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남자가 군대에 간 것도 그런 이유였다. 빈스토크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을 채우려는 것이었고 이 또한 빈스토크의 오싹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소설이 주는 정보가 더해질수록 가상도시, 빈스토크가 낯설지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그곳이 현재의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력에 대한 비판, 자본을 숭배하는 것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영락없이 이 사회를 향해 돌아온다. '빈스토크'라는 가상공간은 그것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무대장치인 셈이다.
그렇다면 <타워>는 풍자소설일까? 그렇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하다. 철저하게 문명화된 그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더 극적인 인간애가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망적인 것이 나타난다. 그래서 <타워>는 단순한 풍자소설이 아니다. 가야 할 길에 대한 단서를 알려주는 소설인 셈이다.
가상의 것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놀랍다. 한국소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것을 통해 세상을 비판하는 모습도 놀랍다. 첫 소설집임에도 녹록치 않다. 하지만 <타워>가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소설이 지향하는 것이다.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647층의 타워 꼭대기에서 이토록 애틋한 인간애를 마주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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