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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옥수수 밭 옆에 당신을 묻고..."

[새벽산책. 26] 바람이 흔드는 옥수수밭에서

등록|2009.06.30 11:15 수정|2009.06.30 11:15

옥수수밭 사이로너를 보내고 ⓒ 김찬순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 깊이 털어 놓지 못할 아픔의 씨앗을 알알이 옥수수처럼 품고 사는 것은 아닐까. 어제는 지인의 딸이 뱃속의 아기를 사산해서 낳았다는 나쁜 소식을 들었다. 가슴에 뭉클 했다. 나도 이런 동병상련을 앓았던 적이 있다.

알알이익어가는 삶의 눈물처럼 ⓒ 김찬순


삼십 년이 넘은 이 얘기 이제 나는 할 수 있게 된 것인가. 아기는 인큐베이터를 필요로 했으나 아기가 태어난 곳은 내가 근무했던 직장이 오지였던 탓도 있지만, 당시 인큐베이터 보급이 많지 않아 인큐베이터가 빌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아기를 집으로 데리고 오게 되었다. 저항력이 약한  아기는 끝내 그렇게 하늘 나라로 가고 말았다.

옥수수밭사이로.... ⓒ 김찬순


해마다 옥수수 밭을 지나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옥수수 밭 저 너머 하늘을 오래 응시하게 된다. 누구나 사람은 말 못할 아픔의 씨앗을, 옥수수처럼 알알이 익혀가면서 살아가는 것도 같다. 내 지인의 딸도 하루빨리 아기를 잃은 아픔을 딛고 주부의 자리로 돌아오길 기도해 본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지만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고,  그때 나는 직장 동료의 진실한 위로가 없었다면, 아무 일 없듯이 다음날 출근해서 직장생활에 충실할 수 없었으리라.

나, 부모가 되어 이제 부모님의 마음을 알 듯 하다. 우리 부모님께서도 너무 일찍 맏형을 잃으셨다. 그 힘든 슬픔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으셨지만, 그 마음 이제야 알 듯하다. 누구나 사람을 죽지만, 가장 슬픈 죽음은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마음인 것 같다. 지인과 지인의 딸에게 해 줄 말은 내가 30년전에 지인에게 들을 말이다. "부모는 한 번 잃으면 다시 얻을 수 없지만 자식은 낳으면 된다"고... 하늘 나라에 간 아가에게도 명복을 빈다.

아기 엄마의 눈물이 알알이 익어서, 도종환 시인의 시처럼  다시 엄마와 아기가 되어 만날 수 있는 그 인연의 축복을 진심으로 기도해 본다.

옥수수밭 사이로... ⓒ 김찬순


견우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함께 묻고 돌아오네
살아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벌 이웃께 나뉘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하는
이 밤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여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옥수수 밭 옆에 당신을 묻고>-'도종환'

옥수수밭 사이로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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