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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자리 허물고 보금자리주택 짓겠다?  절대 못 나가지, 나가라면 죽는 수밖에..."

[현장] 하남시 미사지구 주민들, 개발 계획에 강력 반발

등록|2009.07.01 09:55 수정|2009.07.01 09:55

▲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로 지정된 경기 하남시 망월동에는 '주민동의 없는 개발은 취소하라' 등의 펼침막이 걸려 있다. ⓒ 선대식


"우린 못 나가. 용산 사람들처럼 여기서 죽는 수밖에 없지."

6월 29일 오후 경기 하남시 망월동에서 만난 김순례(가명·74)씨의 말이다. 골목길 그늘 평상에 앉아 있던 그는 "심장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아 몸이 불편한데다가, 돈도 없으니 '나가라'고 하면 죽는 수밖에 더 있느냐"고 한숨 쉬듯 말했다.

김씨 뒤로 골목길에는 '제2의 용산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쓰인 펼침막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골목길 곳곳에는 보금자리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전단이 붙어 있었다.

이날 만난 주민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강제로 수용해 보금자리주택을 만든다는 지독한 역설 앞에서 반대 목소리를 크게 냈다. 하지만 정부는 9월 사전예약 방식으로 분양에 나설 계획을 밝히는 등 보금자리주택 사업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독재 시절 밀어붙이기 사업 방식과 판박이"

▲ 지난 22일 하남 미사지구 보금자리주택 환경영향평가서(초안) 주민설명회에서 지역 주민들이 '서민은 죽는다' 등의 펼침막을 들고 보금자리주택 사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선대식


하남에서는 망월동·풍산동·선동·덕풍동 일대 546만5천㎡가 지난 5월 '미사지구'라는 이름으로 서울시 우면·세곡지구, 고양시 원흥지구 등과 함께 국토해양부로부터 수도권 보금자리주택 시범지역으로 선정됐다. 이곳은 그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개발이 제한된 지역이다.

정부는 특별법을 통해 이곳에 장기임대주택·공공임대·공공분양 등 서민을 위한 다양한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정부는 향후 10년간 도심 인근 개발제한구역 등을 활용해 보금자리주택 150만 호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미사지구에는 보금자리주택 3만 호를 비롯해 모두 4만 호의 주택이 건설돼, 10만 명의 주민이 살게 된다. 서민을 위한 주택을 건설한다는 데 큰 이견은 없지만, 진행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우선 '속도전'이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월 "서울 근교 그린벨트에는 비닐하우스만 가득 차 있다"고 말한 이후, 불과 3개월 만에 보금자리주택 계획이 발표됐다. 또한, 정부는 사업승인까지 약 3~4년이 걸리는 국민임대주택사업과 달리 18개월 내에 보금자리주택 사업 승인을 내겠다고 밝혔다.

주민들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반발하는 이유다. 박덕진 미사지구 주민대책위원장은 "정부에서는 사전에 주민과 어떠한 협의도 없이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발표했다"며 "70~80년대 독재정권 시절, 국민과의 소통 없이 밀어붙이기식 사업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조상 대대로 400~500년간 살아왔다, 개발을 하더라도 환경영향평가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정부에서는 이미 보상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우리가 보상에 응하지 않으면 정부가 강제 수용해서 빨리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 이러다 몇 사람 죽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보상 문제도 난관이다. 구체적인 보상 기준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정부가 보금자리주택 분양가를 주변 아파트보다 15% 정도 저렴하게 내놓기 때문에 보상금도 다른 지역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특히, 40여 년 가까이 그린벨트로 묶여있던 탓에 공시지가가 실거래가에 크게 못 미치고 주변 땅값은 크게 올라, 주민들의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망월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실거래가 200만 원인 도로 인근 전답의 경우, 공시지가가 1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2배로 보상해줘도 양도세를 내고 내면 사실상 쫓겨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윤순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감시국장은 "땅값 낮은 그린벨트에 보금자리주택 짓는 것은 정부가 공권력을 이용해 싼값에 땅을 뺏겠다는 것"이라며 "합리적인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 사업이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용산 참사보다 더 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 한 주민이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로 지정된 경기 하남시 망월동의 E산업 사택 주변을 걷고 있다. ⓒ 선대식


미사지구에서는 '주민설명회'(2일), '환경영향평가서(초안) 주민설명회'(22일)가 모두 주민들의 반발로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MB악법 철폐하라', '서민은 죽는다' 등의 펼침막을 들고 적극 반대의사를 밝혔다.

망월동에서 밭 1652㎡에 농사를 지으면서 40년간 살고 있다는 김희원(가명·71)씨는 "40년 가까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 공시지가가 3.3㎡당 50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며 "다른 곳 땅값은 이미 크게 올라, 보상을 받아봤자 거기선 몇 평 얻지 못한다, 살 길이 없다"고 전했다.

2층짜리 집에 1층 세를 놓아 노후를 보내고 있는 김미자(가명·74)씨는 "지금까지 그린벨트·군사보호지역 등으로 묶여 지붕이 무너져도 제대로 고치지도 못하는 등 어렵게 살았다"며 "아파트 입주권을 준다고 해도 생계가 없다,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사지구에서 보금자리주택 추진에 가장 큰 걱정을 하는 이들은 E산업 사택(기숙사)에 사는 주민들이다. E산업에서 30~40년간 일했던 이들은 회사를 나온 뒤에도 갈 데가 없어 사실상 버려진 사택에 살고 있다.

40여 년 전 세워진 이 사택은 벽돌을 쌓고 슬레이트 지붕을 씌운 것으로, 현재는 허물어질 듯 위험해 보였다. '망월동 2통'이라 불리는 이곳의 주민들은 집주인도 세입자도 아니기 때문에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적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고령이라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없다. 기초수급생활 대상자도 많다. 김혜원(가명·68)씨는 "용산참사보다 더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달 기초생활 수급비 13만 원으로 우리 부부가 산다. 집도 없고 돈도 없으니 무조건 '나가라'고 하면 여기서 죽는 수밖에 없다. 용산에서 죽은 사람들은 세입자니까 돈이라도 조금 받지만, 우리는 한 푼도 못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기서 죽나, 나가서 죽나 똑같다. 절대 못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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