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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떠맡은 철부지 대학생, 특기는 라면 끓이기

"하루가 짧다"란 말이 현실이 된, 15일간의 소중한 살림기

등록|2009.07.01 11:25 수정|2009.07.01 11:25
아침 일곱 시 사십 분에 알람이 울린다.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고, 눈은 채 뜨지도 못 한 상태로 벽을 더듬어 부엌으로 가서 국 불을 켠다. 냉장고에 있는 온갖 밑반찬은 다 꺼내 식탁 위에 대충 얹어 놓고 안방으로 뛰어간다.

"아빠, 오십 분이야 오십 분!"
"십 분만 더…"

여지 없이 십 분만 더 달란다. 그 사이 옷장에서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꺼내 침대 위에 올려 놓고, 구두를 꺼내 닦아 놓고 다시 아빠를 깨운다.

영락 없는 "주부"의 아침이다. 잘 하는 요리는 "라면"과 "밥 짓기" 뿐인 천상 "요즘" 아이인 나는 상상도 못 했던 풍경이다. 그렇다. 나는 요즘 주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게 이빠가 출근하고 나면 밀린 설거지를 하고, 두 시간 걸리는 집안 청소도 한다. 생전 해보지 않았던 화장실 청소도 시도한다. 관리비를 내러 은행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마트에 들러 파와 계란도 산다. 친구에게 전화로 이 얘기를 하니 어이가 없다며 웃기만 한다.

아침에 할 일 삼종세트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꺼내놓고, 밥상을 차리고 구두까지 닦아야 하는 정신 없는 아침이다 ⓒ 김윤혜


"보름 정도 네가 아빠 좀 챙겨드려"
"보름이나!! 안 돼. 절대 못 해! 내가 어떻게! 그리고 집에서 나 혼자 심심해서 어떻게 살아, 차도 없고, 아무 데도 못 가는데!"
"어디 갈 새도 없을 거다"

엄마는 이토록 쿨하게, 불안하지도 않은지 내게 아빠를 떡 하니 맡겨 놓고 잔뜩 신이 나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사주에 역마살이라도 잔뜩 낀 건지, 십 년이 넘도록 독일, 영국, 그리스 등 유럽 각지를 돌며 주재 생활을 하는 아빠를 따라, 똑같이 십 년 넘게 말도 안 통하는 외국 생활을 한 엄마다. 이렇게 이 년에 한 번 꼴로 한국에 가는 것이, 엄마에게는 놓칠 수 없는 소중한 기회다. 게다가 이번에는 다 큰 딸이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됐던 건지, 보름'씩이나' 집을 비우기로 했다.

나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영어도 안 통하는 아테네에서, 지리조차 몰라 혼자 시내에도 나갈 줄 모르는 상태로 보름씩이나 혼자 집에서 지내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하루 종일 컴퓨터만 붙잡고 늘어져 있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우울증에 걸려버릴 거라고, 엄마를 협박했다.

그러나 "살림"을 시작한 지 이틀만에 주부의 하루는 너무나도 짧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어디 나갈 새도 없을 것"이라던 엄마의 말이 완벽하게 현실화되었다. 청소라도 해야 하는 날이면 드라마 한 편 볼 새도 없었다. 장 보러 갔다가 잠깐 쇼핑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나들이다.

그제는 마른 걸레질과 색깔 있는 옷 빨래를 하루에 해야 하는 날이었다.

"딸님~ 엄마 심심해서 전화했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변이 시끌시끌한 걸 보니 아직 밖인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네 시. 아직 안방과 동생 방 걸레질도 못 했고, 빨래도 돌려야 하고, 아빠가 돌아오기 전에 두부 부침도 하고 불고기도 데워놔야 하는데.

"엄마, 나 바빠 죽겠어."
"뭐 하는데~"
"걸레질 하고 있었어. 빨래도 돌려야 되고 밥도 해야 돼. 끊어!"

엄마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한참을 정신 없이 웃더니 전화를 끊었다. 주부가 돼버린 딸의 모습이 재미있나 보다. 그 날은, 아빠 저녁 식사를 차려드리고, 와이셔츠 여섯 벌 다림질까지 한 후에야 끝이 났다. 침대에 누우니 손목이 다 시큰거렸다.

아빠와 딸 Aegina 섬으로 가는 페리 위에서, 바람을 잔뜩 맞으며 찍은 아빠와 딸의 셀카 ⓒ 김윤혜


잔뜩 입이 튀어나온 채 시작한 아빠 챙기기 겸 살림하기였지만, 십 일 정도가 지난 지금, 내 인생에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 입학하면서부터 떨어져 살았던 아빠와 나. 아빠는 무뚝뚝하고 나 역시 애교 없는 장녀인 탓에 전화 한 통 안 하고 간간히 이메일을 주고 받는 것이 다였는데, 십 일 동안 아빠 목소리를 실컷 들었다. 토요일에는 아빠와 아테네 항구에서 배를 타고 하루짜리 여행도 다녀왔다. 나란히 바닷가에 서서 셀카도 찍어가면서.

일이 년 사이에 나도 직장인이 되면, 그리스까지 가족과 지내러 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 될 게 뻔하지 않은가. 어쩌면 아빠를 위해 수저를 놓고 국을 끓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 사 학년인 주제에 인턴도, 학원도 다니지 않으면서 방학을 보낸다고 불안해 했지만, 평생 고마워할 보름을 보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수많은 딸들이, 아직 아빠를 위해 국 한 번 끓여보지 못 했을 것이라는 것을.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빠의 아침상을 차릴 수 있는, 세 번의 기회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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