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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소주만 찾지 말고 이 책도 보세요

[신간안내] 구도의 길라잡이, 불가의 합죽선 < 처음처럼>

등록|2009.07.01 14:06 수정|2009.07.02 08:44
처음처럼, 참 많이 보고 흔케 듣던 말입니다. 어느 회사에서 생산하고 있는 소주의 이름이 '처음처럼'이고, '처음처럼'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대중가요도 몇은 되니 이래저래 익숙한 말입니다. 그렇게 많이 듣고 자주 보았던 '처음처럼'이 제목인 한 권의 책을 며칠 동안 되새김질을 하듯 되뇌며 읽었습니다.
조계종 종립 승가대학원장인 지안스님이 현대인들이 초심을 일으키고, 초심을 잃지 않도록 경계하는 불서로 특별하게 강설하고, 조계종출판사에서 참 불서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로 출간한 '처음처럼'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으로 참으로 오래된 내용의 책입니다.

고려시대 지눌의 '계초심학인문', 신라시대 원효의 '발심수행장', 고려시대 야운이 쓴 '자경문'을 원저로 하여 합쳐 놓은 것이니 족히 1300년쯤 전부터 불교 입문의 필독서로 꼽혔던 내용입니다.

▲ 1300여 년 전부터 출가수행자의 필독서로 읽힌 초발심자경문은 구도자의 길라잡이일뿐 아니라 세속인들에겐 일상의 가이드라인이다. ⓒ 임윤수



초발심자경문은 출가수행자가 구도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삼가거나 경계해야 할 덕목과 내용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담고 있는 내용으로, 저자인 지안스님께서도 "'초발심자경문' 한 권만 똑똑히 배우면 평생 중노릇 잘할 수 있다"는 말로 서문을 열어 갈 만큼 출가수행자들에게는 구도의 지표(指標)인 알파며 경책(警責)인 오메가입니다.

구도의 길라잡이, 일상의 가이드라인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나쁜 친구를 멀리하고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하며, 오계와 십계 등을 받아서 지키고 범하고 열고 막을 줄 알아야 하느니라'로 출가수행자로서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좌표로 제시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경문은 경계하거나 극복해야 할 사항 등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니 출가 수행자에게는 분명한 구도의 길라잡이가 될 것입니다. 출가수행자만이 아니라 세속인들의 삶에서도 경문에 조금만 반추해 보면 삼가고 행함으로써 평온함으로 가는 골목,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또렷해지니 참살이로 안내하는 가이드라인이며 길라잡이가 될 것입니다. 

한자로 된 원문에는 한글 음을 달았고, 해설을 해 놓았으며, 눈높이로 개인교습을 해 주듯 강설까지 세세히 덧대어 놓았으니 1300여 년 동안 승가의 필독이었던 고전을 현대의 디지털 감각으로 더듬고 소화해 가는 기분입니다.

왜 '처음처럼'일까?

한자로 된 원문을 읽을 때는 가부좌를 틀고, 좌우로 몸을 흔들며 머릿속으로나 그렸던 서당 풍경을 흉내 내며 흥얼흥얼 소리 내 읽고, 해설문과 강설을 읽을 때는 법문을 대하듯 편안하게 읽었습니다. 그렇게 책을 읽어가는 동안 책 제목을 왜 '처음처럼'이라고 하였을까하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뭔가를 막 시작하는 사람에게 '처음처럼'이라는 말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작 해 얼마만큼의 시간이나 과정이 지나 관록이 있고, 처음의 뜻이나 자세를 상실한 듯한 사람에게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경계나 경책의 말로 '처음처럼'이라는 말을 하는 게 보통일 겁니다.

그러고 보니 저자인 지안스님께서 초발심자경문에 '처음처럼'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어느 정도 수행이력이 붙은 구참이거나 중진 반열에 선 수행자, 기득권층에 서 있는 세속인들에게 스스로를 뒤돌아보라는 경책의 죽비, 살아온 날들이 부끄럽거나 잘못되지는 않았는가를 스스로 뒤돌아보라는 자성의 거울쯤으로 보여주기 위해 처음처럼을 제목으로 올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지니 마음으로나마 저자인 지안스님을 향해 합장의 예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시작하는 구도자에게는 수행의 길라잡이가 되고, 세속인들에겐 일상의 가이드라인이 될 초발심자경문의 제목을 굳이 '처음처럼'으로 한 것은 구도의 길라잡이나 일상의 가이드라인으로서뿐만이 아니라 구도자로서 걸어온 수행의 삶, 세속인으로서 살아온 일상들이 어떠했는지를 스스로 가늠해 보고 정정할 것은 정정하라는 기준과 척도로 초발심자경문을 다시금 제시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처럼, 죽비도 되고 합죽선도 될 것

가만히 앉아 있어도 배어나오는 땀으로 등줄기가 후줄근해지는 요즘, 처음으로 읽고, 처음처럼 다시 새기게 될 초발심자경문은 스스로의 삶을 뒤돌아보거나 경책해 보는 죽비로서만이 아니라 지친 마음에 생기를 돋게 하는 옹달샘, 꺾어진 의욕을 불끈 불러일으키는 합죽선(合竹扇)이 될 것입니다.

<처음처럼>은 참마음으로 예경하는 구도자, 지켜봐 주고 싶은 출가 수행자가 오롯이 구도의 길만을 걸을 수 있도록 울타리가 되어 줄 싸리나무 하나, 발 담그지 않고 건너기를 바라는 경계의 도랑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 돌 하나로 선물하는 것도 좋고, 자신에게는 물론 인연들에게도 선사의 바람을 한 줄기 느끼게 해 줄 불가의 합죽선으로도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처음처럼-초발심자경문->(지안/2009.7./조계종출판사/10,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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