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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현판, 옛 모습으로 거듭나다!

수리복원이 완료된 '숭례문 현판' 특별전시

등록|2009.07.02 16:48 수정|2009.07.02 16:48
문화재청은 숭례문 화재로 일부 훼손되었던 현판의 복원을 완료하고 오는 7월 7일(화)부터 8월 16일(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 중앙홀에서 특변전회를 개최한다. 복원된 현판과 함께 숭례문 현판의 복원과정, 옛 사진을 비롯한 숭례문 현판 관련 고증자료, 화재 수습당시 모습 등도 전시예정이다.

▲ 숭례문 옛 모습 ⓒ 문화재청



숭례문은 조선 건국 후 도성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도성의 남측 성문으로 축조가 논의 되어 공역이 시작되었으며, 1396년 상량을 하여 1398년 완공됨으로써 최초로 건립되었다. 창건 이후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가장 중요한 성문으로서 중요한 국가의례의 장소로서 이용되기도 하고 도성 내의 시각을 알려주는 종루로서의 기능도 수행하였고, 또한 1950년 한국전쟁 시에는 전쟁의 상흔을 입기도 하였다. 장구한 세월을 600년 고도 서울의 역사와
함께하여 왔으며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주요한 문화유산으로 오늘에 이르렀으나 불행히도 2008년 2월 10일 방화에 의해 문루의 일부가 소실되었다.

▲ 숭례문 화재 당시 ⓒ 문화재청


▲ 화재후 수습당시 ⓒ 문화재청



숭례문 현판 복원을 진행하면서 양평대군의 사당인 지덕사에 소장된 숭례문 현판 탁본자료, 일제 강점기 때  촬영된 유리건판사진, 복원 전 현판의 글자를 비교·분석한 결과 지덕사 탁본이 원래의 글자체임을 밝힘에 따라 숭례문 현판글씨의 원형을 찾게 되었다. 특별전시에 앞서 7월 4일(토)에는 11시부터 17시까지 숭례문 현장을 개방하여 현판을 미리 볼 수 있도록 현장 전시를 한다.

▲ 숭례문 현판 ⓒ 문화재청


지덕사(至德祠) : 조선태종의 장남이며 세종의 맏형인 양녕대군(1394 -1462)의 묘와 사당. 사당은 숙종1년(1675) 임금의 명에 의해 세운 것으로, 원래 숭례문밖에 있던 것을 1912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은 것임. 사당 안에는 양녕 대군과 부인 광산김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음.

임하필기 : 이유원이 1871년(고종8) 임하려(林下廬)에 은거하여 작성한 총39권 33책의 방대한 도서로 현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음. 조선과 중국의 사물에 대하여 고증한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저술로서, 경(經) ·사(史) ·자(子) ·집(集)을 비롯하여 조선의 전고(典故)·역사 ·지리·산물 ·서화(書畵)·전적(典籍)·시문(詩文)·가사(歌辭)·정치·외교·제도·궁중비사(宮中秘史) 등 각 부문을 백과사전식으로 엮어 놓음.

각자장(刻字匠) :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란 글을 새기는 것, 즉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긴 목판각을 각자 또는 서각이라 하며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각자장이라 함. 무구정광다라니경, 팔만대장경, 훈민정음 원본 등 많은 목판인쇄물이 각자로 이루어짐. 오옥진씨가 기능보유자로서 인정되어 있음.

단청장(丹靑匠) :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은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 등 다섯가지 색을 기본으로 하여 궁궐, 사찰, 사원 등에 여러 가지 무늬와 그림을 그려 장엄하게 장식하는 것을 말함. 이에 종사하는 사람을 단청장(丹靑匠), 화사(畵師), 화원(畵員), 화공(畵工), 가칠장(假漆匠), 도채장(塗彩匠) 등으로 부름 이치호, 홍점석, 임석정, 홍창원 등이 기능보유자로 인정 되어 있음.
덧붙이는 글 CPN 문화재방송국 뉴스와 동시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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