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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새벽산책 27] 봉선화 피면 시집 간 누나 생각 나

등록|2009.07.09 21:15 수정|2009.07.09 21:15

봉선화필 무렵 ⓒ 김찬순

봉선화는 속어로 봉사꽃이다. 여름에 피는 꽃 중에 가장 운치 있는 꽃이기도 하다. 봉선화는 추억의 누이꽃. 우리네 '누이꽃'은 그리움의 꽃이요, 흙냄새 하는 고향의 꽃이다. 그리 멀지 않는 시간 저편 어떤 집에 가든지 울 밑에 뜰안에 장독대에 우물가에 함초롬히 피어 있었다. 그 그리운 추억의 누이꽃을 오늘 새벽 산책 길에서 만났다.   아주 어린 시절 이즈음이면 연례 행사처럼 우리 누나들은 마당에 놓여진 평상에 모여 앉아서, 모깃불 피워 놓고 봉선화 꽃잎 찧어 백반을 넣은 그 꽃물을 손톱에 싸서 물들이곤 했다. 철없던 나는 나도 꽃물을 들여달라고 울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누나들은 남자애가 봉선화 꽃물을 들이며 고추가 달아났다고 놀리곤 했으나, 나는 막 무가내로 손톱에 봉선화 꽃물을 들여달라고 떼를 쓰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누나들에게 떼를 써서 얻어 들인 꽃물이 쉽게 빠지지 않아서 오래동안 동네 여자아이들에게 얼레꼴레 얼레 꼴레 놀림을 받던 기억이 난다.   

봉선화 ⓒ 김찬순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듯 힘줄만이 서누나 <봉선화> '김상옥'

합 ⓒ 김찬순



봉선화 ⓒ 김찬순

우리 집은 누나가 넷이고 형이 셋이다. 그 중 나는 막내라서 늘 누나와 형의 과보호 속에 자란 것이다. 큰 누나는 어머니와 나이가 열 여섯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큰 누나는 나를 항상 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식처럼 생각했다. 내 손톱에 봉선화 꽃물을 내가 떼를 쓰면 곱게 들여주던 큰 누나는 얼마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팔남매의 장녀였던 큰 누나. 남은 형제들을 생각해서 시집갈 때 혼수품을 너무 작게 원해서 어머니는 큰 누나의 뜻에 따라 혼수품을 작게 해 주었다고 하신다. 그러나 그 작게 해 간 혼수품 때문에 오래도록 시집 살이가 고달팠다고 생각하시고 늘 큰 누나가 혹시 시어머니에게 구박 받을까 앉으나 서나 큰 누나 걱정이시던 어머니도 이제는 돌아가신지 10년이 넘었다.   봉선화 꽃은 꼭 시집간 누이의 눈물 흘리는 것과 같다 해서, 어떤 시인은 봉선화를 '누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줄기와 가지 사이에서 꽃이 피며 머리와 날개, 꼬리와 발이 모두 우뚝하게 일어서 봉의 형상과 같으므로 봉선화라는 이름이 생겼다 한다. 그 봉선화가 올해도 피었다. 그러나 이제 시집 간 큰 누나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누나…그 큰 누나의 현현인듯 붉고 아름다운 봉선화 꽃이 피었다. 나만 보기 아까운 봉선화 꽃이…  



봉선화 ⓒ 김찬순

봉선화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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