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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21)

― '사람들의 이야기', '사람들의 노력', '사람들의 관심사' 다듬기

등록|2009.07.06 15:01 수정|2009.07.06 15:01

ㄱ. 사람들의 이야기

.. 있지도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꾸며서 얘기한다면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거야 ..  《리지아 누네스/길우경 옮김-노랑 가방》(민음사,1991) 17쪽

 "들으려고 하지 않을 거야"는 "들으려고 하지 않아"나 "들으려고 하지 않겠지"로 다듬습니다. '존재(存在)하지도'라 안 하고 '있지도'라 적은 대목이 반갑고, '조작(造作)해서'라 안 하며 '꾸며서'라 적은 대목이 좋습니다.

 ┌ 있지도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
 │→ 있지도 않은 사람들 이야기
 │→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
 │→ 있지도 않은 사람들한테 일어난 이야기
 └ …

 때때로 꾸민 이야기로 웃고 떠들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텔레비전에 흐르는 수많은 연속극은 꾸민 이야기입니다. 영화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습니다. 꼭 일어났던 이야기만 쓸 수 없는 법이고, 반드시 일어났던 사람들 이야기만 재미와 눈물과 웃음을 베푼다고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쉬 놓치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꾸몄든 지었든 만들었든, 어떤 이야기이든 우리가 발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 부대꼈던 이야기가 있었기에, 새롭게 꾸미거나 짓거나 만들 수 있습니다. 살아내고 부대끼고 복닥이는 삶이 있어서, 이렇게도 꾸미고 저렇게도 지으며 그렇게도 만들 수 있습니다.

 삶을 헤아리는 눈길로 이야기를 엮어냅니다. 삶을 돌아보는 매무새로 글을 씁니다. 삶을 살피는 마음씀으로 생각을 보듬습니다.


ㄴ. 사람들의 노력

.. 다행히도 잠금쇠는 계속 열리지 않았고, 사람들의 노력은 헛수고였다 ..  《리지아 누네스/길우경 옮김-노랑 가방》(민음사,1991) 98쪽

 '다행(多幸)히도'는 '고맙게도'로 다듬고, '계속'은 '끝내'나 '그예'로 다듬어 줍니다. '노력(努力)은'은 '애써도'로 손질합니다.

 ┌ 사람들의 노력은 헛수고였다
 │
 │→ 사람들이 애를 써도 헛수고였다
 │→ 사람들은 헛수고를 했다
 │→ 사람들은 애를 쓰나 마나였다
 └ …

 이 자리에서는 한자말 '노력'과 말짜임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사람들 노력은 헛수고였다"로 손보아도 괜찮습니다. 말짜임만 살짝 손질해서 "사람들이 노력해도 헛수고였다"로 고쳐써도 괜찮고요. 살을 살며시 붙이면서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라든지 "사람들이 노력해 보아도 헛수고였다"처럼 고쳐써도 잘 어울립니다. "애를 쓰나 마나"나 "애를 써도 헛수고"나 "애를 써도 보람이 없"다거나 "애를 쓰지만 부질없"는 노릇이라고 다듬어도 됩니다.


ㄷ. 사람들의 관심사

.. 근대라는 거친 물결이 사회를 덮고 사람들의 관심사도 변화하게 되자, 회화에서 묘사하는 제재도 필연적으로 바뀌기에 이르렀다 ..  《이마무라 요이치/김이랑 옮김-영상 미디어와 보도》(눈빛,1998) 11쪽

 '관심사(關心事)'는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눈길'이나 '생각'으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변화(變化)하게'는 '달라지게'나 '바뀌게'로 다듬고, '회화(繪畵)'는 '그림밭'으로 다듬으며, "묘사(描寫)하는 제재(題材)"는 "그림감"이나 "그리려는 모습"이나 "담아내려는 이야기"로 다듬습니다. '필연적(必然的)으로'는 '저절로'나 '시나브로'나 '마땅히'나 '으레'로 손봅니다.

 ┌ 사람들의 관심사도
 │
 │→ 사람들 관심사도
 │→ 사람들 눈길도
 │→ 사람들 생각도
 └ …

 사람들 말씀씀이를 살피면 재미있다고 해야 할는지 얄궂다고 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말을 할 때에 높낮이와 길이를 옳게 헤아리는 흐름은 거의 사라지거나 없어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만, 영어를 배우는 사람치고 '긴소리-짧은소리' 살뜰히 맞추어 내려고 안 하는 사람이란 아무도 없습니다.

 영어를 익힐 때에 전치사이든 과거형이든 빈틈이나 어긋남 하나 없도록 안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우리 말을 쓰는 동안 토씨를 올바르게 붙였는지 낱말이나 말투가 알맞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세상 흐름을 살피면, 무슨 일을 하든 영어는 잘해야 하며,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영어를 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동네 할매 할배한테까지도 가르치려고 드는 영어입니다. 초등학교뿐 아니라 동사무소에서까지 동네사람한테 영어를 가르친다 할 뿐 아니라, 길알림판에는 빠짐없이 영어를 함께 적어 놓습니다.

 과자봉지에조차 영어를 함께 써 놓습니다. 나라밖 사람을 만날 일이 없는 사람조차 제 이름쪽에 영어를 함께 박아 놓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우리 말과 글을 올바르고 알차게 배우지 않았으며, '학교를 마친 다음'에는 더더욱 우리 말과 글을 올바르고 알차게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말씀씀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앞서 배운 말에서 멈추지 않았나 싶으며, 당신들 스스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자리에서마저 아이한테 옳고 바른 말을 알맞게 가르칠 줄 모릅니다.

 수학을 하든 과학을 하든 우리 말을 올바르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운동선수가 되든 연예인이 되든 우리 말을 옳게 쓰고 우리 글을 바르게 적을 줄 알아야 합니다. 구멍가게를 하건 큰 회사를 이끌건 우리 말글을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사이든 교수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소설쟁이나 번역쟁이라 하여 다르지 않아요. 국회의원이나 시장은 다를까요. 대통령과 문화부 장관뿐 아니라, 기자와 의사도 꾸준하게 말을 배우고 글을 익혀야 합니다. 우리 몸을 꾸준히 살피고 다스리듯 우리 말을 꾸준히 살피고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 밥상을 날마다 새로 차리고 새로운 밥그릇을 받아들듯, 우리 말을 날마다 새로 돌보고 새로운 말씀씀이를 슬기롭게 익혀야 합니다.

 ┌ 사람들이 바라보는 눈
 ├ 사람들이 생각하는 눈
 └ …

 말이란 넋입니다. 말이란 삶입니다. 말이란 생각입니다. 말이란 우리 모습 그대로입니다. 사람이고 사랑이며 목숨이며 믿음인 가운데 마음입니다. 말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 가운데 생각과 사람과 사랑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말에 껍데기를 씌우고 알맹이를 버리는 사람치고 생각과 삶과 목숨에 껍데기를 안 씌우는 사람이 없으며, 알맹이를 느낄 줄 아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바르게 쓰는 말이란 틀에 맞추는 말이 아닙니다. 바르게 쓰는 글이란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틀리지 않는 글이 아닙니다. 내 삶을 가꾸고 내 넋을 돌보며 내 마음을 아름다이 일으키는 말입니다. 내 목숨을 사랑하고 내 생각을 믿으며 내 일과 놀이를 즐길 줄 아는 그대로 스며드는 글입니다.

 내 멋을 담는 말입니다. 내 맛을 느끼도록 하는 글입니다. 내 땀을 들이는 말입니다. 내 품이 배어드는 글입니다. 내 발자국인 말이며, 내 손자국인 글입니다.

 내 삶을 돈으로 사고팔 수 없다면, 내 말을 돈으로 사고팔 수 없을 뿐 아니라 돈으로 메꿀 수 없습니다. 돈이 있다 하여 삶이 넉넉해지지 않는다면 돈이 있다 하여 말이 넉넉해지지 않습니다. 아낌없는 사랑으로 내 삶을 가꾼다면, 아낌없는 이 사랑으로 바로 내 말을 가꿀 수 있습니다.

 내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는 말입니다. 내 동무와 마음으로 사귀는 말입니다. 내 식구와 깊은 사랑을 나누는 말입니다. 내 둘레 삶터를 아름다이 가꾸고 내 몸 비비는 모든 자리에서 싱그러움과 해맑음을 고이 뿌리내리도록 하는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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