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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로 비친 우리 동네 농사꾼들

안흥 '말무더미' 마을의 농사꾼들

등록|2009.07.07 15:40 수정|2009.07.07 16:13

우리 동네 농사꾼 홍순조, 장금순 부부가 뙤약볕 아래 옥수수 씨앗을 심고 있다. ⓒ 박도


땀내나는 밀짚모자와 수건

참 사람이란 간사한가 보다. 40년 넘게 산 서울이 이제는 점차 낯설어지고 하룻밤 자기도 싫어진다.  엊그제 건강검진으로 아침 일찍 빈속으로 와 채혈을 하라는 병원의 지시로 하는 수 없이 아이들이 사는 서울 집에 가 하룻밤을 잤다. 이튿날 채혈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자니 또 하룻밤을 자야기에 그게 싫어 채혈을 한 뒤 곧장 안흥으로 내려왔다. 다음날 안흥에서 곧장 병원으로 갈 셈이었다. 아이들 사는 집이 후덥지근하기도 하거니와 이웃의 소음과 불빛으로 잠을 설치다시피 하룻밤을 보냈다. 

시외버스는 어찌나 세게 달렸는지 서울을 떠난 지 두 시간 만에 안흥장터 마을에 닿았다. 마침 서울 한 출판사에서 두어 권 책을 얻어 가방도 무겁기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자 살폈으나 장터에서 영업하는 세 대 모두가 보이지 않았다. 뙤약볕아래 무거운 가방을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데 우리 동네 '말무더미' 마을 어귀에서 낯익은 홍순조(73) 어른 내외가 아주 다정하게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제 배추를 뽑더니 그 자리에다가 뭘 심는 모양이었다. 내외가 뙤약볕을 가리고자 바깥어른은 밀짚모자에, 안어른은 챙이 긴 모자에 수건을 덮고는 나란히 밭두둑에 씨앗을 심는 모습이 여간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의 어떤 황제가 민정시찰을 가다가 방앗간에서 먼지 묻은 머릿수건을 뒤집어 쓴 부부를 보고 "그대들의 먼지 묻은 머릿수건이 내 왕관보다 더 아름답다"고 했다는 어느 책에서 본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수고 많으십니다."
"어디를 다녀오시오?"
"서울에요."
"두 분 일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습니다."
"좋게 봐 줘서 고맙소."
"수고하세요."
"잘 가시오."

마음속으로는 보따리를 여러 번을 쌌지만

집에 돌아오자 카사(고양이)란 놈이 나들이 문 계단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그에게  간식으로 우유 한 잔을 챙겨주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카메라를 메고 다시 홍씨네 밭으로 갔다. 마침 내외분은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배추를 제 값에 팔았는지 그게 궁금했다. 올 봄에는 배추 값이 다락같이 올랐다고 법석이었는데, 고랭지 배추농사 전문 농사꾼 앞집 노진용 씨의 말을 들으니 여름배추가 출하되는 이즈음에는 값이 폭락했다고 한다.

"배추는 제 값을 받고 넘겼나요?"
"한 매끼(단위; 한 트럭 분)에 80만원에 넘겼어요."
"그래도 제 값은 받으셨네요."
"계약재배를 했기 때문이지요."

농협과 계약재배를 하면 크게 이익은 남길 수 없지만 다소 이윤은 남길 수 있나 보다. 배추 뽑은 그 자리에다 파종을 한 게 궁금했다.

옥수수를 심은 부부내가 밀레라면 이 장면을 화폭에 담고 싶다. ⓒ 박도

"무슨 씨를 심습니까?"
"옥수수요."
"지금 심어도 먹을 수 있나요."
"그럼요, 심은 지 백일이면 수확을 해요."

부인 장금순(73) 씨가 집에 가서 차라도 내오려고 하는 걸 찬물이면 족하다고 굳이 붙잡고는 밭머리에 있는 주전자의 찬물을 한 잔 들이켰다.

"결혼하신 지 몇 해나 되셨나요."

한참을 세었다.

"꼭 쉰 네 해가 됐네요."
"친정은 어디인가요."
"둔네로, 시집올 때 가마 타고 왔지요."
"그동안 보따리를 몇 번이나 쌌나요."
"마음속으로는 여러 번을 쌌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못 쌌지요. 친정아버지가 여자는 출가외인이라고 시집간 딸을 다시 받아주지도 않았을 거에요."

이들 내외는 옛날에는 다들 그랬는데 요즘은 걸핏하면 이혼하는 세태를 도시 이해할 수 없다고 시절을 걱정했다. 내외는 슬하에 아들 딸 6남매로 다들 외지에 나가사는데 다만 막내아들을 아직도 장가보내지 못해 그게 부모로서 가장 마음에 걸린다고 하면서, 막내아들이 인천 아무개 회사에 근무하는데 아주 야무져서 회사 근처에다 아파트도 한 채 사두고 제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돈도 모아뒀는데 그만 혼기를 놓쳤다고 큰 걱정을 했다.

몸으로는 일하려 하지 않는 세태

다시 옥수수 씨앗을 내는 그들 부부의 모습을 두 컷 찍고는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랫마을 노진범(64) 씨가 고추밭에서 고추 모에 줄을 치면서"나도 한 장 박아줘요"하고 인사를 했다. 늘 부부가 나란히 일을 했는데 혼자였다.

농사꾼 노진범 씨말무더미 마을에서 가장 부지런한 노진범 씨가 고추밭에서 못줄을 치고 있다. ⓒ 박도

"오늘은 웬일로 혼자하십니까?"
"집사람은 집에서 일해요."

고추 못줄을 배낭에 담고서 일하는 솜씨가 여간 손에 익지 않았다. 노진범 씨는 우리 동네의 알부자로 여간 부지런한 농사꾼이 아니다.

곁에서 지켜보니까 논밭 농사뿐 아니라, 소도 여러 마리 키우고 닭도 돼지도 먹이는 등, 사시사철 노는 일이 없었다.

"우리처럼 사시사철 일하면 먹고 사는 데는 걱정 없지요. 사람들이 몸으로는 일하려 하지 않고 머리로만 입으로만 먹고 살려고 하니 세상이 시끄럽지요."

일하는 모습을 두 컷 찍고는 돌아서는데 그새 이마에서 주르르 땀이 흘렀다. 뙤약볕에서 일하는 농사꾼들이 내 눈에는 성자로 비쳤다.

"수고하세요."
"올라가세요."

숱한 백성들을 먹여살리는 이들이 바로 이 시대의 성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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