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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뻔뻔하게 만드는 교회는 기독교 아냐"

김상봉, 그의 인생과 기독교... '열정'과 '형이상학적 동요'를 거쳐 '혁명'으로

등록|2009.07.07 16:21 수정|2009.07.07 16:21

▲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과). 독일 괴팅겐, 프라이부르크, 마인츠 대학에서 철학, 고전문헌학, 신학 연구. 현재 전남대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진보신당 부설 미래상상연구소 이사장, 5.18 기념재단 이사이다. ⓒ 김준열

김상봉 전남대 교수를 알게 된 지는 몇 해 전 일이다. 생명평화연대가 주최하여 '학벌 없는 사회'라는 주제로 강연이 열렸다. 초청한 강사는 김상봉 교수였다. 그 인연으로 <학벌사회>를 읽었다. 줄곧 김 교수가 쓰는 책과 글에 관심이 있었다.

사회학자가 써야 할 책을 철학을 전공한 분이 손수 썼는지 궁금했다. '신학'을 공부했다는 이력은 그의 철학 바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궁금했다. 임마뉴엘 칸트를 전공한 학자에게 신학은 어떤 의미였을까.

7월 6일, 한국기독교연구소 주최로 제13회 예수 포럼이 청파감리교회에서 열렸다. 주제는 "내 인생과 기독교"였다.

그는 철학을 공부했다.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와 같은 글을 쓰는 서양고전문헌학자이다. 그리스도신학대학교에서 종교철학과 교수를 지냈으나 학내 문제로 해직되었다. 그 후 '학벌없는사회'를 만들어 반학벌 운동을 펼쳤으며,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전남대에서 가르치고 있다. 일관된 문제의식이랄까, 5·18을 재해석한 결과를 공동 집필하여 <5.18 그리고 역사>를 출간했다. 현재 진보신당 부설 미래상상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에게 철학은 '정치적'이다. 이 모든 흔적은 기독교를 만난 곳에서 드러난다.

그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인용한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를 다시 인용했다.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은 내가 사는 세계에 대한 물음, 내 존재의 내용에 관한 물음이다. 철학자는 세계에 관심을 가진다며 자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쑥쓰러워했다. 의리를 지키는 게 소소한 준칙 가운데 하나라며 김기석 목사의 부탁으로 강연을 왔노라 했다.

첫 번째 경험, 열정

첫 말문을 열었다.

"저는 목사 아들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산 덕분에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아버지와 생각이 정반대여서 관계가 좋지 않았다. 마음 깊이 아버지를 존경했다. 아버지는 김해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군용 천막을 만들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물을 끓여 발 밑에 두고 잠을 잤죠. 삶이 대단히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런 삶은 돈, 세속적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뭔가 숭고한, 지상적인 척도를 뛰어넘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무언의 침묵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설명해 준다해도 이해할 수 없는, 헌신하는 삶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죠."

한국기독교연구소 제13회 예수 포럼한국기독교연구소는 청파감리교회에서 매월 예수 포럼을 연다. 이번 포럼에는 청년들이 비교적 많이 참석했다. 다음 예수 포럼은 다음 학기로 이어지며 9월 시작한다. 8월에는 포럼을 개최하지 않는다. ⓒ 김준열


그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며, 모든 종교가 근본적으로 마음 속으로 불러일으키는 '열정'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기독교와 만났던 첫 번째 경험이다. 기독교와 만나서 경험한 종교적 열정은 죄의식을 다르게 부르는 단어다.

"기독교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종교입니다. 모든 종교가 본질적으로 그렇긴 합니다. 예수 믿어서 마음이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꾸 죄의식을 불러일으킵니다. 이건 어려운 문제예요. 기독교는 죄의식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종교인데, 한국교회가 기독교가 아닌 이유는 한국교회는 사람을 뻔뻔하게, 공격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선한 열정, 도덕성은 죄의식을 불러일으킨다는 말과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죄인이라는 것인가'라는 물음이 중요합니다."

김 교수는 기독교를 '사랑'이라는 낱말로 가르치는 종교라고 정의한다. 기독교 핵심단어는  '사랑'이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가르친다. 그는 거꾸로 '사랑이 하나님이다'고 말한다. 주어·대상·실체의 자리에 하나님을 놓고 하나님이 이렇다 저렇다 할 때 신성모독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속에 있습니다. 어린 마음에 배운 것이에요. 기독교와의 만남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만남재일조선인 지식인 서경식과 서로주체성의 철학자 김상봉이 2007년 5월 19일부터 8월 15일까지 아홉 차례, 40시간에 걸쳐 나눈 대담을 정리한 책. 두 사람은 각각 외부와 내부, 작가와 철학자의 시선으로 국민국가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동체를 고민하고, 형식적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새로운 과제들을 성찰한다.-책 소개 중에서 ⓒ 김준열

보기 드문 신앙 고백의 한 예로 '서준식' 선생 이야기를 꺼냈다. 김 교수는 서경식 선생과 만나 대담을 했다. 그 결과가 <만남>이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서준식은 서경식 형이다. 서준식은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17년 동안 형을 보냈다. 그때가 1971년이었다. 실제 형량은 7년이었지만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전향을 거부하여 10년을 더 복역했다.

서준식은 옥중에서 보낸 편지들을 모아 <옥중서한>을 출간했다. 이 책은 공산주의자(서준식)가 기독교·예수와의 만남을 얘기한다. 김 교수는 서준식의 고백만큼 그 이상 가슴 저미는 고백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옥중서한>을 필독하기를 권했다. 모든 논리·제도·도그마에 앞서 고통 받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예수만큼 구구절절하게 보여주는 사람은 없다고 서준식은 말한다.

두 번째 경험, 형이상학적 동요

기독교와 만남에서 첫 번째가 '열정'이라면 두 번째는 '형이상학적 동요'였다.

"무한히 빠른 속도의 로켓, 우주는 끝은 있는 걸까? 이 모든 것이 다 어디서 온 것일까. 철학자의 질문으로 바꿔서 말하면 왜 아무 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 있는 걸까? 나도 없고 집도 없고 해·달·별 아무 것도 없고, 시간과 공간조차 절대적인 무 속으로 던져버린다면 도대체 무엇이 남는 것일까. 어떻게 해서 이 모든 것이 있게 되었을까. 이렇게 묻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머리가 터져버린 줄 알았습니다. 왜 그런 물음을 던지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누가 창조했는데요?'라는 질문. 하나님은 왜 있나요? 왜, 언제, 어떻게 해서 무언가 있게 되었을까. 신, 하나님이? 평생 가는 형이상학적 동요입니다. 기독교와 함께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 역시 모든 철학, 종교에 근본적으로 있는 물음입니다. 그 만남이 기독교적인 문화와 함께 일어났습니다."

이런 형이상학적 동요는 철학과로 간 이유였다. 실은 정치를 하고 싶었단다. 정치를 하더라도 사이비 정치가가 되지 않으려고 깊은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는 대학 때 '왜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지은 세계에 까닭없는 고통, 불행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부딪혔다. 이 질문은 그를 하루에도 12번씩이나 자살 충동으로 내몰았고, 죽으면 그 순간에 깨달을 수 있을지 하고 생각했다. 수많은 신학책을 읽었고 급기야 감신대에 불쑥 찾아갔다. 그가 찾아간 한 신학 교수는 "신앙이라는 것은 확신하는 것이 아니고 의심하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이때 경험을 '비극적 체념'으로 술회한다. 그때 인생을 다 알아버린 것 같았다고 한다. 다시는 이 물음을 묻지 않았다고 한다. 그 물음을 덮어 온 셈이다.

"아무것도 세상에 이것이 진리, 저것이 진리이다는, 모든 것이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측량할 수 없는, 끝끝내 다가갈 수 없는, 절대자의 옷자락에 다가갈 수 없는 그 허무라는 것이 절대자가 우리에게 선물한 자유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진보적인 지식인 축에 속한다. 자신을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라고 말하지만 단 한번도 유물론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 형이상학자가 된 원칙은 기독교가 준 선물이라고 고백한다.

"신앙 고백으로써 신조를 믿든지 않든지 간에 인생에는 뜻이 있습니다."

매듭짓지 못한 물음을 덮은 채, 기독교적 실천으로 데모를 한다. 70년 후반,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 서울 지역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한국 교회와 맺은 인연은 이 정도까지다. 밑바닥에서 하는 것을 좋아하는 체질 탓에 야학 운동을 오랫동안 했다.

기독교의 본질은 염려하지 않는 것

1998년 2월 18일, 김 교수는 학교에서 쫓겨난다. 이 사건으로 깨닫게 된 게 있었다. 신앙은 본질적으로 누구를 믿는 것이 아니고 염려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

"신앙은 누구를 믿어 도움을 받는 게 아니고 내가 정말로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징표는 사랑이고 두 번째가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인생을 즐겁게 산다. 욕심이 없어서다. 두려움이 없다. 내일 먹을 것이 생기겠지 하고 생각해야 욕심이 생기기 않는다고 말한다.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한국 기독교가 처한 문제는 믿음이 없는 까닭에 염려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너무 부지런하다는 것이다. 각자가 자기 삶을 걱정하지 않게 되면, 믿음 때문에 세상은 자연스럽게 평화스러워질 것이라고.

내가 하나님 되자

"모든 복음서는 새로 쓰여져야 합니다."

김 교수는 성경만 읽어서는 신앙이 살아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경 자체가 신앙 고백이다. 하나님이 우리한테 하는 말이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하는 말이다. 김 교수는 함석헌 글을 읽고 있으면 그 말 속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을 건넨다고 느낀다. 함석헌이 말하는 신앙이란 '내가 하나님 되자'이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 신앙이다.

"세계의 고통이 내 고통으로, 세상의 모든 죄가 내 죄로 여기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존재의 온전함과 행복이 나 자신의 온전함과 행복이 되는 관계가 내가 하나님 되자는 뜻입니다. 뜻이 이루어지면 개별자인 나는 사라집니다."

세상의 모든 부조리에 대해서 아무리 분노한다고 하더라도 그 화살, 분노의 손가락을 밖이 아닌 내 자신에게 돌리는 것을 그는 함석헌에게 배웠다.

김상봉, 함석헌을 말하다김상봉 교수는 함석헌이 쓴 글을 읽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느낀다고 말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말로 이루어진 것이니까, 뜻이 있으니까, 그것은 목적, 사명이다. 내가 산다라는 것은 절대적인 당신 앞에 마주서는 것이다. 나한테 말을 건네는 것이다. 신앙이란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강의 질문에 답하며 ⓒ


"함석헌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 역사가 결국은 더 크게 전체가 하나되는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요. 어렸을 적 내가 깨닫지 못했지만, 인류 전체 역사는 진보합니다. 역사에 냉소하지 않게 되었죠.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역사가 덧없는 파노라마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 교수는 우리 역사 속의 기독교를 보았다. 한국 역사에서 한국기독교의 사명은 통일 문제에 있다고 말한다. 한국 역사는 혁명과 종교가 하나였다는 특이점이 있다. 불교의 미륵 신앙, 동학, 3·1운동 모두 하나의 종교·철학·혁명이었다. 종교적 열정과 혁명적 열정이 함께 갔다.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이후 운동의 지형이 달라진다. 우리의 선대들이 혁명과 종교를 마지막을 묶으려고 했던 운동이 신간회 운동(좌우 합작)이었다. 실패로 돌아가자 3·1운동과 같은 운동을 만들지 못했다. 그 결과가 남북 분단이었다고 말한다.

북한은 기독교인을, 남한은 공산주의자를 거의 멸균 수준으로 척결했다. 둘 다 비정상적이다. 김 교수는 결론을 내린다.

"예수, 바울, 부처, 나도 공산주의자입니다. 공산주의자가 아니면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란 돈이 주인이 아니고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입니다. 돈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늘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종교가 다 모여서 고통받는 이웃, 겨레를 구하기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제일 앞장서서 발언했던 것처럼, 그 당시 지배자·권력자 앞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이제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평화롭게 하나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일에 다시 앞장서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역사가 주는 소명이지 않을까요."

마지막 말이 MB정부가 보여주는 '역행하는 역사'를 되돌려야 한다는 메아리로 공명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에 중복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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