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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는 예측불허, 그래서 힘든 예능 PD"

[인터뷰] KBS <1박2일> '막내 PD' 유호진

등록|2009.07.07 17:34 수정|2009.07.07 19:49

▲ 지난해 방영한 <1박2일> 신입PD 몰래카메라 편 ⓒ 선희연


"우리 아이가 아파서 촬영 접고 가야해요." (김C)
"촬영이 더 중요해! 신입피디, 말해봐, 가야 돼, 안 가야 돼?" (강호동)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집에 가겠다'는 김C와 '방송을 중단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강호동 간에 싸움이 벌어진다. 누구 편을 들기도 애매한 상황에 끼어들게 된  것은 <1박2일> 팀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신입PD. 막무가내로 '가겠다'는 김C를 말리기 위해 촬영장을 뛰어다니길 수 차례, 화를 내던 강호동은 이 '넋 나간' 신입PD를 번쩍 들어올리기까지 한다.

새로 들어온 PD를 속이기 위해 강호동이 알 파치노처럼 열연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일명 '강파치노 사건'. 이 몰래카메라 사건 덕에 한 PD는 '어수룩한 신입 PD' 이미지로 뜻 하지 않은 유명세를 타야했다. 그가 바로 유호진(29) PD. 고대 신방과를 졸업하고 잡지사 기자 등을 거쳐 지난해 1월 KBS에 입사한 뒤 바로 <1박2일>팀에 합류했다. 몰래카메라 사건 이후,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한 획을 긋고 있는 <1박2일> 막내 PD로 1년 반을 보낸 그를 지난 6월 13일 만나 '예능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인터뷰 중인 <1박2일> 유호진 PD ⓒ 선희연

-1박2일 '신입PD 몰래카메라'편으로 얼굴이 많이 알려졌어요. 실제 주위에서 얼마나 알아보던가요.
"깜짝 놀랐어요, 엄청 많이 알아보세요. 요즘은 그나마 덜하지만 올해 2월까지는 정말 많이 알아보더라고요." 

-유명세(?)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지는 않나요.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조금은 불편했죠. 지하철이나 택시에서  자고 싶어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말을 거니 그럴 수도 없고. 연애하기도 불편하고.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쉽게 해 볼 수 없는 경험이기에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고. 예능PD는 늘 연예인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인데, 그 일을 겪고 나서 어느 정도 연예인을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신입PD 몰래카메라' 편이 너무 심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몰래카메라 당하고 나니 어떤 느낌이었어요?
"'아! 속았다'하는 생각이죠. 기분 나쁘거나 억울하거나 그런 느낌은 없었어요. 나영석 PD도 미안하다고 말했는데, '스태프들에게까지 완전히 속았구나' 하는 허탈함을 느꼈죠."

-PD가 되기 전에 아카펠라 멤버, 잡지사 기자, 소설 작가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고 들었어요.
"네, 돈 벌어야 할 시기에 딴 짓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마리끌레르>에서 기자로 3년 넘게 일 했고요, 거기를 나와서는 프리랜서 작가로 일했어요. 아카펠라 활동도 했고. 아카펠라는 앨범을 낸다든지 한 게 아니라 그냥 취미삼아 공연만 한 거예요."

-그렇다면 소설책은?
"아, 소설책은 사연이 좀 긴데… 2007년도인데요, 제가 아나운서로 방송 3사에 지원했어요. 군대에서 아나운서를 했었거든요. 시험을 쉽게 생각해서 별다른 준비도 안했어요. 그런데 막상 KBS, MBC, SBS 다 떨어지고 나니까 울화가 치밀어 오르더라고요. 뭔가 위안거리를 찾다가 인터넷에 글을 끄적였던 거죠. 댓글도 많이 달리고 하다보니 책으로 나왔어요. 예전부터 생각했던 이야기가 하나 있어서 그걸 쓴 건데…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고, 그냥 이야기예요."

-PD는 어떻게 지원하신건가요?
"사실 저는 잡지사 기자가 더 적성에 맞았던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아무래도 어머니한테 말씀드리기에는 방송사 PD가 더 나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지원을 한 거죠."

-그렇게 결심한 뒤 엄청 빨리 입사하셨네요. 단번에. 본인의 어떤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하세요?
"한국어 점수가 꽤 높았어요. 그것 말고 굳이 생각해본다면 제가 다른 지원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흥미로운 인간'으로 보여서 뽑아주신 것 아닐까 생각해요. 저에겐 독특한 저만의 이야기가 있거든요. 지금까지 한 활동도 그렇고, 취미나 특기도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면접 때 말씀드렸어요. 아무래도 예능PD를 뽑는데 학교 다닐 때 성적 좋고, 영어 점수 높은 사람들을 고르지는 않겠죠. 얼마나 재미있는 경험을 했는지, 독특한 마인드를 갖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1박2일>에서는 "음악 프로가 하고 싶다"는 얘길 한 적도 있죠.
"네, 꾸민 게 아니라 정말이에요. 처음에 PD 지원할 때도 '음악프로그램을 하기 위해 예능 PD를 지원한다'고 했거든요. 음악프로가 아니면 안 하겠다고까지 했었는데 <1박2일>에 배정해 주더라고요."

-그렇다면 언젠가는 음악프로그램을 만들고 싶겠군요.
"그럼요, 기회가 생긴다면. 지금의 음악프로그램들은 너무 무겁거나, 아니면 너무 가벼운 것 같아요. <윤도현의 러브레터> 같은 프로그램은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는 하지만 가수와 MC가 서로 농담을 주고받기는 어려울 만큼 무대 구성이나 분위기가 엄숙하죠. 아니면 순위프로그램처럼 단순히 노래만 나열하던가. 음악성이 있으면서도 비주얼이 지금보다 더 재미있고 우스꽝스러웠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을 만족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제가 공부를 좀 더 해야겠죠."

-<1박2일>에서 '막내 PD'의 일주일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우리 팀은 보통 2주 단위로 일해요. 고정 촬영은 격주 금, 토요일이고요. 촬영이 없는 주에 회의를 거쳐 컨셉트 잡고, 어디에서 촬영할지 답사가고. <1박2일>은 대본이 없으니 계획표 비슷한 것을 짜 놓고 촬영하는 순서로 진행되죠. 그러나 저 같은 막내가 하는 일이라곤 '편집과 행정'이 대부분이에요. 다른 일에 비해선 쉬운 편이죠.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내놓는 건 정말 힘들거든요. 이미 우리 팀에는 나영석 PD나 이우정 작가 같이 천재적인 감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으니 저 정도까지는 못하겠다 싶은 부분도 있죠."

-<1박2일>은 계획표만으로 진행된다고 했는데 대본은 전혀 없나요?
"대본이야 있죠. 그런데 적혀있는 것이 거의 없어서 대본이라고 할 수 없어요. 일종의 계획표 수준인데, 아무리 리얼 버라이어티라도 아무것도 없이 촬영장 갔다가 방송 펑크 낼 수는 없잖아요. '최악의 경우 이렇게 찍자' 정도로 정해놓는 거예요. '무슨 게임을 하자' 정도만. 하지만 연기자들이 더 재미있는 게임을 생각해내면 즉석에서 그 게임으로 바꿔요. 계획표대로만 가는 날이 거의 없죠."

-<패밀리가 떴다>는 대본이 있다는 것이 공개돼서 논란이 됐죠. 사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는 출연진의 실제 모습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한데 수십 대의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에서라면 좀 힘들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대본'은 필요할 것 같은데.
"그건 어느 선까지 연출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인위적인 연출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가 하는 거고, 시청자가 그것을 나쁘다고 생각하면 시청률에 반영되거나 여론의 비판을 받아도 어쩔 수 없는 거죠. 저희가 시청자에게 어떤 판단을 강요할 수는 없어요. 그저 각자의 스타일대로 가장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되겠죠. 저희는 저희 스타일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니까 이렇게 만드는 거고, 개입이나 연출이 필요하다 여기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될  거고. 리얼 버라이어티나 혹은 다른 프로세스를 갖고 있는 프로그램 모두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보면 다 장단점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요."

▲ 유호진 PD가 생각하는 연예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선희연


-그래도 최근에는 <1박2일> <무한도전>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에 대한 시청자의 사랑이 유독 컸다고 봐요. 리얼 버라이어티가 사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저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한창일 때 방송국에 들어와서 이전 프로그램에 비해 어떤 점이 특히 나은지 판단을 하기 어려워요. 저는 <천생연분>이나 <위험한 초대> 같은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봤는데 이런 쇼들은 설정이 있고, 그에 따라 패턴이 반복되는 면이 있어요. 이에 비해 리얼 버라이어티는 예측하기 힘들다는 면이 크죠. 또 시청자들이 비슷한 체험을 했던 상황을 떠올리면서 공감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1박2일>와 같은 다MC체제의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이런 가운데 <박중훈 쇼>와 같은 정통 토크쇼 부활의 시도가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보면 주인공 라이쿠더가 이런 말을 해요. '나는 대중음악을 30년 동안 만들었지만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할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듣고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에선 대사가 영어로 되어있어서 멋있던데(웃음). 시청자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다면 좋겠죠. 하지만 대중을 어떻게 움직여보겠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아요. 대중은 몹시 완고하고 예측하기 어렵거든요. <1박2일> 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도 분당 시청률, 인터넷에 쏟아지는 댓글, 기사들이 제작진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갈 때가 많아요. 이런 미시적인 아이템이나 연출에도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는데, 거시적 예측이라는 거 의미 없지 않을까요. 저 같은 수준에서 논하기엔 말이죠."

-요즘은 PD가 자막으로 멘트를 넣거나 혹은 직접 출연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버라이어티 쇼를 이끌어 가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시청자들의 참여도 이끌어 내는 것 같고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대중이 항상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누가 더 잘 건드리느냐'의 문제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에 대한 평가는 시청자들이 하는 거고."

-결국 대중을 파악하는 PD의 능력이 중요하다는 거군요.
"그렇죠. PD에게는 대중이 무엇을 생각하고 원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관찰력이 필요해요. 제작진들이 원하는 대로 시청자들을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예능PD란?'
"'웃음을 설계하는 사람'이죠.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논리적인 작업이에요. 웃음이 터지기 전부터 웃음이 터지고 난 후까지, PD는 철저히 그 과정을 분석하고 설계하죠. <1박2일>에도 그런 장치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까나리액젓을 마시게 하는 것도 출연진의 희비를 엇갈리게 하며 감정기복을 일으키는 일종의 장치죠. 이런 모든 것이 맞아 떨어져야 웃음이 나오니까 정말 예능PD는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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