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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의장, '고르디우스의 매듭' 끊을까

여야 압박 속 직권상정 고심... "모종의 결심한 듯"

등록|2009.07.07 18:58 수정|2009.07.07 19:02

▲ 국회 문방위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방문이 예고된 가운데 김형오 국회의장이 7일 오후 의장실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키(key)는 국회의장이 쥐고 있다. 국회의장이 국민의 편에 설 것인지, 정권의 편에 설 것인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국회가 권력의 들러리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지난달 25일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의원총회 인사말에서 비장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정 대표의 말처럼 6월 임시국회의 닫힌 문을 여는 열쇠는 현재 김형오 국회의장의 손에 쥐어져 있다.

미디어법-비정규직법을 둘러싸고 얽힌 여야 관계는 흡사 '고르디우스의 매듭' 같다.

단독국회를 압박하고 있는 한나라당도,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도 얽힌 실타래의 끝을 찾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여당 내에선 김형오 의장이 나서서 매듭을 끊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을 칼을 들라는 요구다. 바로 '직권상정'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내리칠 칼날, 직권상정

6월 임시국회가 열린 지 9일째인 7일, 김 의장은 여전히 '대화와 타협'을 요구하고 있다. "쟁점 법안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밤을 새워서라도 타협해야 한다"는 게 김 의장의 생각이다. 여기에는 직권상정에 대한 부담감이 깔려있다.

국회의장실의 한 관계자는 "김 의장이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직권상정을 매우 부담스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야당의 반대를 물리치고 쟁점 법안을 직권상정해 처리한다면, 비난의 화살이 국회의장에게 집중될 것은 뻔한 일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회의장이 권력의 들러리로 전락했다"는 비판은 정치인생을 부드럽게 마감하고 싶은 김 의장으로선 아플 수밖에 없다. 김 의장이 '친정'인 한나라당의 호소를 짐짓 못 들은 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소집된 국회가 앞으로 굴러가지 못하고 공회전만 계속하고 있는 상황을 국회의장이 지켜만 보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국회 공전이 장기화되면 김 의장이 모종의 결심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의장이 정치적 부담을 떠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를 뒷받침하듯 김 의장은 최근 국회 정상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연이어 내고 있다. 지난 1일 김 의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 그만 국회를 열자고 요구했다. 그는 "직권상정에 의존하는 여당, 등원을 거부하며 국회 중앙홀을 점거한 야당 모두 반성하라"는 양비론을 폈지만, 그 속에는 '이제 국회의장이 제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 숨어 있었다.
1주일 뒤, 김 의장의 목소리는 더 강경해졌다. 김 의장은 7일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중앙홀)을 점거 농성중인 민주당을 향해 "자진 철수하라"는 통보했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오는 17일 제헌절 기념행사 준비를 위해서다. 그러나 속으로는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이강래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이명박 대통령 사과와 단독국회 철회를 요구하며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이날 김 의장의 개인 성명을 발표한 허용범 국회 대변인은 "김 의장은 형식과 절차, 방법에 구애받지 말고 여야 협상은 이뤄져야 하고, 국회 정상화는 즉각 이뤄져야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이번 성명은) 국회의 장기 공전사태를 막기 위해서 국회의장께서 모종의 결심을 하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허 대변인의 해석에 따르면, 김 의장은 실력행사(직권상정)에 들어가기 앞서 사실상 민주당에 '최후 통첩'을 보낸 셈이 된다.

"김 의장, 모종의 결심한 듯"... 협상 의지 접은 한나라당

김 의장의 태도 변화에 한나라당은 반색하고 있다. 겉으로는 "국회의장이 직무유기 하고 있다"며 볼멘 소리를 하지만, 속으로는 하루 빨리 김 의장이 결심해 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한나라당 스스로가 제안한 '6자 회담', '4자 회담'을 민주당이 받겠다고 나서자 갖은 이유를 들어 거부하고 있는게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김 의장이 직권상정만 해주면 쉽게 풀릴 문제를 협상장에서 언성 높이며 어렵게 해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김 의장이 야당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김 의장이 직권상정을 결심한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한나라당이 아예 협상할 생각도 않고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김 의장이 직권상정 카드를 내보였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전혀 협상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김 의장과 여당이 밀약을 맺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야당을 마구잡이로 대하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민주당의 강한 반발에도 김 의장과 한나라당은 쟁점 법안의 강행처리 수순을 차근차근 밟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날 "13일까지만 협상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13일 이후에는 김 의장과 함께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국회 정상화'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결사항전의 뜻을 거듭 밝히고 있지만, '모종의 결심'을 한 김 의장을 주저앉히기는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 문방위원들은 이날 오후 4시30분 김 의장을 항의방문 하려 했으나, 국회의장실에 도착하기 불과 1분전에 김 의장이 나가버리는 바람에 얼굴도 보지 못했다. '빗나간 저항'이 되고 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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