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 상자 속 F코드 주민들, 담담하게 희망을 껴안다
[서평]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
▲ 내 심장을 쏴라_표지내 심장을 쏴라_표지 ⓒ 은행나무
외딴 곳에 위치한 수리 희망병원에 두 사람이 당도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끌려왔다는 편이 옳을까. 어디까지나 두 사람은 타의에 의해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끌려온 두 사람 앞에 창살이 내리꽂히고 손발이 묶인다.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자유롭게 나다닐 수도 없고, 병원 밖으로 나갈 수는 더더욱 없다. 한 사람은 길을 물어보려다 성추행범으로 몰려 감방 신세가 될 뻔했다가 여기로 온 거고, 다른 한 사람은 잘 알 수 없지만 뭔가의 이유로 여기까지 끌려왔다(후자의 인물이 끌려온 이유는 책 후반부에 나온다).
'내 심장을 쏴라'. 이 소설 속에 깃든 세계는 (책 속에서는 F코드 -정신병원 입원 이력이 있는 자에게 붙는 낙인- 로 인용되는) 정신병원 폐쇄병동이라는 이름의 백색 상자다. 그 상자 속은 다소 험악하고 갑갑하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점박이와 원장 렉터 박사의 모습이 그러하듯 병동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주류를 형성하는 싸늘한 세계. 이 속에서 5병동 사람들은 서로를 껴안고 보듬는 방법을 우선 체득한다. 이런 사이클이 앞에서 말했던 두 사람, 즉 이수명과 류승민의 모습을 통해 비춰진다.
이 소박한 드라마가 나가는 길은 딱 이게 다다. 어찌 보면 일차원적 흐름이라 다소 심심할 법도 한데, 1장에 걸쳐 정황 설명을 한 이후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2장부터는 무서우리만치 담담하게 나아간다. 아니, 흡입력 있는 묘사로 쉴 틈 없이 독자들을 몰아붙인다고 하는 편이 더 온당할 게다.
이것이 '내 심장을 쏴라'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힘은 힘으로만 그치지 않고 실제로 독자들의 머릿속을 사정없이 파고든다. 뒷장으로 넘어갈수록 좁디좁던 백색 상자 속의 세계가 넓어져 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런 효과들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 규모를 무한 증식하여 도달한 최종장에서 5병동 주민들은 그들의 소소한 안식을 찾아나간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건 이 작은 소설이 병동 사람들의 어딘가 결핍된 이미지를 보여 주는 것보다는 아기자기하게 보여 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거다. 십운산 선생, 버킹엄 공주, 거리의 악사, 우울한 청소부, 경보 선수 등 몇 인물에게 그 특성을 잘 보여 주는 익명을 붙여준 것도 아마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익명들은 인물의 특성을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각자의 이미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남다른 재미를 선물한다. 주요 시점이 주인공 이수명의 시선에 고정되어 있고 이야기의 전개 또한 이수명과 류승민에 맞춰져 있으나 그 주변인에 대한 따스한 손길을 잊지 않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점이다.
여기에 저자가 직접 폐쇄병동 내부에서 생활하며 취재한 내용들과 처음 정신병원 실습을 나갔을 당시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가령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버킹엄 공주는 실제 저자가 취재 당시 만났던 수많은 이들 중 한 명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간 것이고, 후반부 이수명의 회상 장면에서 등장하는 실습생의 대사는 실제 저자가 실습을 나갔을 때 환자에게 했던 질문이라 한다(마지막 페이지 '저자의 말'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이런 경험들이 축적되어 탄생한 '내 심장을 쏴라'는 평범하면서도 어딘가 울림을 주는 드라마를 340페이지가 약간 넘는 책 안에 심어 놓았다. 여기에 전면을 지배하는 '희망'이라는 메시지는 보너스. 한 장 한 장 넘기는 순간, 그 F코드 주민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입 꼬리를 충분히 치켜세울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진사야의 비주얼 다이어리(www.zinsayascope.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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