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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친서민 행보, 보수이념과 충돌하지 않아  죽을 때까지 '진보' 고민한 노무현 평가해야"

[인터뷰①] <한국진보세력연구> 펴낸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

등록|2009.07.13 08:25 수정|2009.07.20 13:28

▲ 최근 <한국진보세력연구>를 출간한 원로 언론인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은 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을 '정책적' 혹은 '이념적' 의지라기보다 '정치적' 의지로 분석했다. ⓒ 유성호


최근 집권 2년 차를 맞은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강화론'을 내놓은 뒤 친서민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 포기 선언과 300억원 대 재산 헌납 등도 '친서민-중도' 행보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를 두고 보수진영 내부에서는 '정체성 변화'를 우려하고 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이건 무슨 정체불명의 음식이냐"며 "이 대통령이 말하는 중도는 기회주의이고 편법"이라고 성토했다. 심지어 친이계 인사인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마저 이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을 "죽도 밥도 아닌 떡밥"에 비유하며 "고추가 매워야지 오이처럼 싱거우면 고추인가"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지지층 내부의 반발을 의식했는지 이 대통령은 "중도강화론은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MB의 중도강화론은 노무현 추모 열풍 때문"

▲ ⓒ 청미디어

그런 가운데 <한국보수세력연구>(2005년)에 이어 최근 <한국진보세력연구>를 출간한 원로 언론인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은 8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은 사회통합으로서 중산층 강화라는 해석과 좌우를 아우른 탈 이념적인 중도실용주의라는 해석이 있다"며 "아마도 노무현 추모 열풍 때문에 자세를 그리 잡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정책적' 혹은 '이념적' 의지라기보다 '정치적' 의지라는 것.

남 전 사장은 "소설가 황석영이 '이명박 대통령은 중도실용인데 우파 때문에 일을 못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런 말이 나오니까 보수진영의 지지층이 이 대통령을 불신한다"며 "대중영합적으로 나가는 인상을 주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만, 남 전 사장은 "사회통합으로서 친서민 행보는 잘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보수이념이나 노선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추켜세웠다.

이어 남 전 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 "죽을 때까지 진보주의를 연구하고 스스로 유연한 진보라고 했으면서도 '진보정권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한계가 있다'고 대답할 정도로 고민한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남 전 사장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열기는 부자만을 위한 정권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이명박 대통령 때문"이라면서도 "노 전 대통령이 검찰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것은 안타깝지만 그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남 전 사장은 "진보세력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국가의 정통성에 회의적이거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해방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0% 이상이 공산주의 등 좌파를 지지했지만 들어선 정권은 이승만 정권이었다"고 지적했다.

남 전 사장은 "진보세력·좌파세력도 국가를 인정하고 애국적인 세력이 되어야 한다"며 지난해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뒤 "이제 좌파는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고 선언한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 등 '뉴레프트그룹'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특히 '뉴레프트는 애국하는 진보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남 전 사장은 "좌파운동하는 사람은 주사파처럼 맨날 백두산에서 누가 났다고 할 게 아니라 여운형과 조봉암을 공부해야 한다"며 "특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하기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이 종북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 전 사장은 최근 펴낸 <한국진보세력연구>에서 "현재 기로에 서 있는 한국의 진보세력은 더 이상 사회주의사회의 도래를 꿈꾸는 낡은 진보사관이나 어떤 통일도 좋다는 식의 맹목적 민족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적 조류에 적응할 수 있도록 거듭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거듭 진보진영에 충고했다.

남 전 사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동아일보> 수습기자 1기생으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이후 <동아일보> 동경특파원과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을 거쳐 현재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체험적 기자론><인터넷시대의 취재와 보도><한국보수세력연구> 등이 있다.

다음은 남시욱 전 사장 인터뷰 전문이다. 인터뷰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에서 2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유물론적, 맑스주의적 진보사관은 파산했다"

▲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은 <한국진보세력연구> 출간 이유에 대해 "진보 없는 보수 없고, 보수 없는 진보 없다. 진보세력도 특별히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 유성호

- 2005년 말 <한국보수세력연구>를 펴낸 데 이어 <한국진보세력연구>까지 펴냈다. 이런 연구에 매진해온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대중 정권 들어섰을 무렵이다. 당시 이데올로기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됐다. 그래서 '우리나라 보수세력의 뿌리가 뭐냐, 공과는 뭐냐'는 질문을 던지며 보수세력 추적에 나섰다. 보수와 진보는 상대적 개념이다. 진보가 있으니까 보수가 있는 거다.

한국 보수의 뿌리는 구한말 개화파였다. 개화파의 뿌리는 실학사상이다.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가 개화파의 거두다. 개화파에도 1∼3세대가 있는데, 박규수 같은 사람이 1세대다. 2세대는 개화당을 만들어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박영효, 김옥균 등이다. 그중에 가장 젊은 사람이 서재필이다.

서재필은 구한말 일본의 군사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사관생도를 배출하는 신식군대를 만들려고 했지만 완전히 실패했다. 그가 망명갔다 돌아와서 배재학당에 있었는데 그에게 배운 사람이 이승만이다. 독립협회를 만들어 활동한 이승만은 개화파 3세대다. 이들이 독립운동도 하고 상해 임시정부도 만들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 화요회·수요회·토요회 등 국내에 사회주의 운동단체들이 생겼다. 당시 독립운동을 하던 민족 지도자들이 '사회주의(사상)를 함부로 하면 안되겠다'며 처음에는 호의적이었다. 조선 지식인들은 러시아 혁명에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1924년엔가 김윤식이라는 학자의 사회장을 하려고 하는데 좌파진영에서 반대했다. 일본에 협조한 사람이라는 거다.

그때에도 이념적 차이가 있었다. 결국 민족진영은 보수계가 되고, 새로운 사회주의 세력들은 진보계가 됐다. 독립협회 활동을 하던 개화파는 스스로 진보라고 했다. 독립문 기공식 할 때 배재학당 학생들이 '진보가'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개화해야 한다는 것이 진보였다. 개화란 일본 명치유신의 영향을 받아서 근대국가가 되고 산업화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 보수세력은 산업화·근대화와 맥이 닿는다. 그때부터 보수와 진보는 대립하기 시작했다. <한국보수세력연구>는 보수세력이 중심이지만 진보세력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진보 없는 보수 없고, 보수 없는 진보 없다. 진보세력도 특별히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도 보수세력 연구만 하지 말고 진보세력 연구도 해보라고 권유했다."

- 책 속에서 '진보'와 '좌파'라는 용어를 섞어서 쓰고 있던데.
"변화를 급격하게 하자는 것이 진보다. 현상의 변화나 타파를 주장하는 것이 진보다. 그럼 보수는 뭐냐? 고치되 보존할 가치는 보존하면서 고치자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보=좌파였다. 좌파는 그렇게 생각한다. 좌파지식인들은 <공산당선언>에 나오는 것처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로 간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었다. 그런데 소련이 붕괴했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실패한 것이다.

맑스는 다윈의 자연진화론을 사회적으로 적용하는 데 기울어져 있었다. 박헌영은 생물계의 다윈이즘이 사회에서는 사회진화론으로 통하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망하고 사회주의로 간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쿠바·중국·북한 등 공산당이 있다. 하지만 다 변형된 형태다. 적어도 자본주의를 넘어 사회주의로 간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결국 유물론적 진보사관, 맑스주의적 진보사관은 파산됐다.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낡은 진보주의자, 교조적 진보주의자다. 그렇다면 지금 진보는 뭐냐? 진보는 좌파보다 범위가 넓다. 생태·여성·소수자 등에서는 좌우파 구별이 애매하다. 현대의 녹색당을 생각해보라. 좌우파와 관계없다. 이것이 새로운 진보의 양식이다.

우리 지식인들 중에 딱 좌파라고 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 그럼 진보라고 하면 된다. 사회를 고쳐야겠다는 것이 진보다. 진보신당의 강령을 보니까 '남북한의 체제를 지양하는 진보적인 통일, 제3의 정치체제'라는 게 있다. 나는 이것을 믿지 않는다. 이상적으로 말할 수 있을 수는 있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양하는 새로운 체제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냐?

진보 자체도 자꾸 바뀐다. 미국의 예를 들면, 조지 워싱턴은 노예제 폐지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보수주의자다. 반면 링컨은 노예제 폐지론자였다. 진보주의자다. 레이건이나 대처가 100년 전에 있었다면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진보주의자였을 것이다."

"하이에크 등 시장근본주의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 "87년 민주화 이전 좌파는 구세대, 그 이후는 신세대다. 구세대는 완전히 가고 신세대가 왔다. 그것이 오늘날의 진보정당들이다." ⓒ 유성호


- 좌파를 규정하는 기준 중 하나로 국가개입을 들고 있는데, 보수우파 정권도 끊임없이 국가개입을 하고 있지 않나?
"보수파는 시장이 실패하거나 시장의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할 때만 국가에 개입한다. 지금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비상시기이지 않나. 다만 하이에크 등 시장근본주의는 찬성하지 않는다. 원칙은 시장의 기능에 맡기되 시장이 기능을 못할 때는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파는 공동체주의이고 보수파는 자유주의다. 그런데 박세일 같은 사람은 '공동체적 자유주의'라고 걸 내놓았다. 극우파가 아닌 중도 우파인 셈이다. 그런 식으로 (좌우파나 보수-진보가) 수렴하는 것이다. 자유냐 평등이냐, 성장이냐 분배냐 등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가 중요하다.

북한에 온건하고 유화적이고 친북적이거나 종북적이면 대체로 좌파인데, 요즘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진보신당의 노회찬 대표는 북한에 비판적이다. 말하자면 친북좌파도 있고 반북적인 좌파도 있는 것이다."

- 해방 이전과 이후 진보세력에 어떤 차이가 있나?
"차이는 없다. 맨 처음 좌파세력, 사회주의세력이 나온 때가 1910년대다. 이들이 1920년대에 비밀리에 조선공산당을 만들었다. 하지만 1929년에 해산됐고, 이후 조선공산당 재건사업이 이루어졌다.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박헌영이다. 1930년대 이후부터 해방될 때까지 공산주의자가 제일 많이 탄압을 받았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모이기 시작했다. 좌파들이 먼저 활동을 개시한 것이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해방 전 진보세력의) 맥을 박헌영이 이었다. 박헌영의 이상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 한국 진보세력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때가 해방을 전후한 시기였던 것 같다.
"미 군정에서도 조사했는데, 공산주의보다 사회주의 지지자가 더 많았을 것이다. 1940∼50년대면 세계 공산주의가 피크(peak)에 올라 있을 때다. 소련의 국제적 지위도 피크였다. 1930년대 후반에 앙드레 지드가 소련을 갔다 와서 '소련은 사회주의 이상이 아니라 스탈린 독재국가'라는 내용이 담긴 책을 썼다.

유럽은 좌파가 강해서, 이 책을 나오자 '지드가 파시스트에 매수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 책이 일본에서 번역돼 한국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이 책이 한국 (좌파)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준 건 아니다. 그들은 볼셰비키혁명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이 책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 한국의 진보세력(특히 합법적 진보정당)은 1960년대 이후 대체로 침체기에 들어간 것 같은데.
"1948년 8월 정부가 수립된 이후 공산주의는 불법화됐다. 1956년에서야 진보당이 나왔다. 물론 그전에는 조소항의 사회당이 있었다. 사회당은 정부 수립 이후 창당된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이었다. 이승만 박사는 사회당 창당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이승만은 축사에서 '공산당과 싸우는 나라에서는 사회당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익정당 일색인 마당에 사회당이 생긴다니 반갑고, 더구나 조소앙 선생이 이 당을 한다니 반갑다'고 말했다.

그런데 조소앙은 6·25 때 납치됐고 사회당도 소멸했다. 그런데 전쟁을 당하고 나니까 사회주의를 공산당으로 보게 됐다. 1950년대 말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사회주의 정당이 많이 나왔다. 이동화라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있었는데 그는 진보당과 혁신당의 강령을 기초했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정당은 반스탈린이다. 프랑크푸르트선언의 영향을 받아서 반공적인 것이다.

그리고 1980년 광주사태가 나니까 반미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과거에 사회민주주의나 민주사회주의 했던 사람들은 88년 총선에서 다 떨어졌다. 그리고 오늘날 좌파정당이 만들어졌다. 87년 민주화 이전 좌파는 구세대, 그 이후는 신세대다. 구세대는 완전히 가고 신세대가 왔다. 그것이 오늘날의 진보정당들이다."

"왜 해방 직후 들어선 정권이 이승만 정권이었겠나?"

- 최대 관심사가 "한국 진보세력이 어떤 역사적 이유로 인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형성되었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라고 했다. 먼저 '한국 진보세력의 현재'를 어떻게 진단하는가?
"진보세력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국가의 정통성에 회의적이거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해방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0% 이상이 공산주의 등 좌파를 지지하지만 들어선 정권은 이승만 정권이다. 그 당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었는데 안 일어났다. 브루킹스도 '배반된 혁명'이라고 했다. 민중의 의사는 달랐던 것이다.

진보세력은 대체로 수정주의적 역사관과 종속이론을 가지고 있다. 특히 종속이론은 우리가 미국 경제에 종속됐다는 게 아니라 체제 자체가 미국에 종속되도록 만들어졌다고 보는 시각이다. 영구히 평등할 수 없는 체제를 만들어놨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병직 교수는 그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자동차산업을 보라. 군사·안보분야에서 미국이 압도적이긴 하지만, 한미간에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나. 이것이 종속이론의 한계다. 군사적으로 보면 일본도 미국에 의존하고 있지 않나. 이걸 국제적으로 '상호의존'이라고 한다. 결국 수정주의 역사관과 종속이론을 합치니 한국이 식민지국가밖에 안된다. 독립국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의) 진보세력은 광주사태로부터 생겨났다. 이들은 미국이 광주사태를 승인했다고 본다. 80년대의 좌파운동은 자생적인 것도 있지만 실제로 북한의 지도와 지원 등이 있었다고 본다. 이후 일부 운동가는 북한에도 갔다 왔지 않나. 수정주의 역사관과 종속이론이 합쳐 나중에 주사파로 발전했다.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좌파, 진보파는 한국발전전략을 내놔야 하는데 그걸 안 한다."

- 그런 한국진보세력의 현재를 형성한 '역사적 배경(이유)'은 무엇인가?
"광주항쟁과 권위주의 통치로 인한 것이다. 더 근원적인 것은 한반도 분단이다. 우리나라 좌파는 분단과 광주항쟁을 거치면서 좌파의 국가관과 세계관이 형성됐다."

- 해방 이후 탄생과 소멸 등을 거듭해온 한국 진보세력의 특징은 무엇인가?
"박헌영 등 혁명적 좌파세력은 대한민국을 전복하려 했지만, 온건한 좌파세력에는 상당한 공로가 있다. 한민당의 송진우는 '보수-진보 두 정당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보수의 원조가 그렇게 말했다. 그 한민당과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다."

- 하지만 보수-진보 양당체제는 실현되지 않았다.
"전쟁이 났다. 피비린내나는 이념대결을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나. 그래서 생래적으로 (좌파에) 저항의식이 있다. 진보세력, 좌파세력도 국가를 인정해야 한다. 애국적이어야 한다. 2차 대전 당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는 다 모여라'고 했지만 전혀 모이지 않았다. 다 애국적으로 돼 버렸다."

- 한국 진보세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선진국처럼 사회민주주의나 민주사회주의로 나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안에서 복지정책을 추진하거나 인간해방 투쟁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진보좌파세력도 선진화해야 한다. 선진화되고 대안이 있는 진보, 발전프로그램이 있는 진보가 되어야 한다.

최근 뉴민주당 플랜 읽어보니까 김근태 등 진보파가 볼 때 한나라당 2중대라고밖에 할 수 없겠더라. 중도개혁이냐 진보개혁이냐에서 진보개혁이 졌다. 집권을 하기 위해 중도개혁으로 한 것이다."

- 왜 한국 진보세력은 선진화되지 못하고 새로운 진보적 대안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고 생각하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인물난 아닌가 싶다. 진보정당에서 슈퍼급 인사가 나와야 한다. 인재가 모여야 한다. 또 국민이 신뢰를 해야 하는데 신뢰를 안 한다. 민주노동당은 이명박 정권 타도를 당론으로 결정했다. 말로야 할 수 있지만 당의 방침으로 합법적 정부를 타도하겠다는 것이 타당한가?"

- 지난 노무현 정권 때 보수우파 인사들도 정권타도 주장을 자주 하지 않았나?  
"기억이 잘 안난다. 최고는 탄핵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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