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수라간 상궁도 탄복할 '녹두 삼계탕'

입이 까탈스런 손님들이 더 많이 찾는다는 곳

등록|2009.07.10 18:33 수정|2009.07.11 15:09

▲ 산 개복동 초원다방 골목. 사진에서 보듯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모두 떠나버린 골목을 지키고 있는 ‘운정식당’ 간판이 시원스럽게 보이네요. ⓒ 조종안


남진, 하춘화 등 인기가수가 출연하는 쇼가 들어오는 날이면 사람 물결로 통행이 불편했던 군산시 개복동 초원다방 골목. 술집과 식당이 많아 한때는 '먹자골목'으로 불리기도 했는데요. 대학생에서 기업체 사장님까지 다양한 계층이 즐겨 찾던 골목이었습니다.

음식점 주방 창틈으로 새어나오는 고소한 육수 냄새, 비릿한 맥주냄새, 새콤달콤한 막걸리 냄새에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는 아가씨들 분 냄새까지 더해져,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골목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떠나버려 대낮에도 적막강산처럼 고요가 흐릅니다.

그러나 70년대 말에 지금의 위치에 설렁탕집 간판을 걸고 개업한 '운정식당'은 모두 떠나버린 골목을 30년이 넘도록 지키고 있는데요. 비결은 손님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마음과 주인 아주머니의 손맛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그만인 '녹두삼계탕'

▲ 운정식당 녹두삼계탕.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떠오르는데요. 고명으로 얹은 잣과 볶은 깨가 입맛을 더욱 당겨줍니다. ⓒ 조종안


▲ 푸짐하게 차려나온 반찬. 개운한 파김치와 깍두기는 기본이고요. 오이무침이나 미역무침 등은 시장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만큼 싱싱한 재료를 이용한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 조종안


'운정식당'은 객지에 있을 때도 고향을 방문하면 들러서 설렁탕 한 그릇이라도 사먹고 가던 단골집인데요. 고희를 바라보는 조리사 부부가 정성을 다해 끓여내는 '녹두삼계탕'은 수라간 상궁도 맛보면 탄복할 정도로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서수 양계장에서 가져온 닭에 찹쌀, 녹두, 잣, 참깨, 밤, 대추, 인삼 등을 넣은 '녹두삼계탕'은 손님이 주문하면 삶아놓은 닭을 다시 뚝배기에 넣고 끓여서 내놓는 게 아니라 즉석에서 조리한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3개월 정도 키운(550g-600g) 닭을 재료로 하는데요. 일반 삼계탕 집에서 내놓는 닭보다 크고 살이 유난히 연합니다. 개업할 때부터 지금까지 한 양계장만을 거래해오고 있다고 하더군요.

정성스럽게 얹은 고명과 팔팔 끓는 육수의 구수한 냄새는 침샘을 자극하는데요. 닭을 다 발라먹고 먹는 녹두죽은 소화도 잘될 뿐만 아니라 고소한 맛이 환상적이어서 먹고 나서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알맞게 익은 깍두기와 생채, 파김치도 녹두죽 맛을 올리는데 한몫을 하는데요. 코를 톡 쏘는 조선파와 개운한 맛을 내는 젓국이 함께 어우러지는 파김치는 어머니의 손맛을 떠오르게 합니다. 

밑반찬 맛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더하는 콩나물무침, 씹을수록 개미가 있는 깍두기, 입을 개운하게 해주는 미역무침은 맛도 맛이지만 시원해서 좋습니다. 그래서 파김치와 미역무침은 별미 중의 별미로 꼽히고 있지요.

처음 개업할 때는 우족탕과 설렁탕 전문이었는데, 연구의 연구를 거듭한 끝에 2007년 여름부터 녹두삼계탕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족탕과 설렁탕이 따돌림당할 정도로 반응이 좋아 고민이라고 하더군요. 칠순을 바라보는 분들이 '삼계탕' 벤치마킹에 성공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마도 그치고 찜통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초복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요. 삼계탕은 복날에 먹는 전통음식으로 알려졌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달리 생각합니다. 소식(小食)을 전제로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골고루 잘 먹는 게 보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의 신체는 잠을 잘 때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렇게 신체의 각 부위가 각자 임무를 수행하면서 필요한 영양소가 있으면 그에 합당한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합니다. 감기에 걸리면 콩나물해장국이 생각나고 임산부가 미역국이 먹고 싶듯 말입니다.

맛으로 승부

'맛으로 승부를 보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밑반찬 준비에서 삼계탕을 끓여내기까지 부부가 함께 한다는 양기추(69) 사장님에게 몇 마디 여쭤보았습니다. 

"시청이 조촌동으로 이사한 지 10년이 넘었고 법원·검찰청 등 관공서들도 시청 부근으로 이전하니까 시내에 있던 유명한 식당들도 모두 이전개업을 했는데 이렇게 제자리를 고집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그럼유. 음식을 맛있게 허는 게 내 '영업철학'인디, 옛날부터 군산 입맛이 까탈시럽기로 소문났잖유. 그르케 입이 까탈시런 손님들일스락 맛있으믄 더 와유"

일반 삼계탕과 운정식당의 녹두삼계탕은 여러 면에서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연하자면 삶아놓은 닭을 손님이 오면 다시 뚝배기에 넣고 끓여서 내놓는 게 아니라 즉석에서 조리한다는 것이지요.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맛과 함께 닭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전혀 없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고기가 쫄깃하고 고소한 질감이 먹을수록 입맛을 당기는 게 즉석 녹두삼계탕의 진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녹두는 우리 몸 어디에 좋을까?

▲ 닭을 건져낸 녹두죽. 심신이 고달프고 피곤할 때 녹두죽 한 그릇 먹으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지요. ⓒ 조종안


어머니가 무쳐주시던 나물과 전봉준 장군을 떠오르게 하고, 20여 년 전 서울의 모 여자고등학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80%가 넘는 학생이 '숙주나물'을 모른다고 답변했다는 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아 남달리 느껴지는 녹두. 

죽은 물론, 밥을 해먹기도 하는 녹두는 1백여 가지 독을 풀어준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입술이 헐거나 몸이 피곤할 때, 또는 피부에 질환이 생겼을 때 녹두죽을 끓여 먹으면 효험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끓여주신 녹두죽을 먹고 효험을 봤던 경험이 있으니까요.

숙주나물은 씹을수록 개운한 맛이 더하고 입안에 고소한 맛이 감도는데요. 비타민 성분이 증가하여 소화가 잘 되고 해열 숙취에 좋다고 합니다. 막걸리 안주로 으뜸인 빈대떡의 주 재료이기도 한 '녹두'는 한방효능에도 뛰어나다고 하는데요. 동의보감에 나온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녹두로 베개를 만들어 베면 눈이 밝아지고 두통을 없애준다. ② 원기를 돋워주고, 정신을 안정시킨다. ③ 열을 다스리고, 독을 풀어주며 소변을 이롭게 한다. ④ 오장을 조화시켜 주며, 소갈증에도 좋다 ⑤ 설사를 그치게 하며, 당뇨, 해열 고혈압, 숙취에도 매우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녹두는 몸을 차게 하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혈압이 낮거나 냉증이 있는 분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더위가 극심하고 큰 비가 내린다는 소서(小暑), 대서(大暑) 절기입니다. 건강관리가 절실한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