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는 바람에 심상의 시묘막을 거둡니다
지난 40일, 상주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자제하며 지냈습니다
▲ 바람은 그렇게 다시 불었습니다. 그리고 또 불 것입니다. ⓒ 임윤수
대전에서도 바람이 불었습니다. 전국에 불고 있는 추모의 바람, 울화처럼 치솟고 있는 공분(公憤)의 바람이 대전에서도 불었습니다. 나뭇가지를 흔들고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아니라 노래와 시, 춤사위와 북소리, 창(唱)과 함성으로 가슴을 울리는 울림의 바람, 지켜주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회한의 바람, 가치를 꿈꾸게 된 희망의 바람, 꿈꾸던 세상을 이루겠다는 다짐의 바람, 위정에 치떠는 공분이 이는 마음의 바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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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대통령님 49재 추모콘서트 봉하마을과 서울 대한문에서 불고, 부산대학교와 서대전시민 광장에서 불던 바람, 아장아장한 아가의 걸음마에서도 일고, 머리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의 가슴에서도 일던 바람의 씨앗은 바로 바보 노무현대통령님이었기에 바람의 씨앗이 된 숭고한 당신의 자치는 내년에도 10년 후에도, 당신이 꿈꾸던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지 겨레의 가슴과 민족의 양심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불 것이라 확신합니다. ⓒ 임윤수
'노빠'도 아니었고, '노사모'도 못됐었지만 정말 좋아했었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서거소식은 충격이었으며 회한이었기에, 마음을 추스르는 그 시간부터 마음으로나마 상복을 입었고, 상주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자제하며 지냈습니다. 여행도 자제했고, 글쓰기도 자제했고, 웃음도 자제했습니다.
마음으로 지낸 시묘살이
그렇게 자제하며 살았건만 불쑥불쑥 찾아드는 헛헛함은 울컥거리는 서러움과 폭발할 듯한 분노로 찾아왔습니다. 그래도 정말 죄인 된 마음으로 꾸역꾸역 참았습니다. 뉴스나 인터넷을 통하여 이따금 공개된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미공개 자료나 살아생전 동영상을 접할 때마다 울었습니다. 꺼이꺼이 울지 못할 때는 찔끔찔끔 눈물만 흘렸고, 엉엉 소리 내어 울지 못할 때는 입 꼬리만 치켜 올라가는 흐느낌으로 비질비질 울었습니다.
▲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행사장에 불던 바람은 아가걸음 같은 아장아장한 바람이었습니다. ⓒ 임윤수
▲ 2000여명의 사람들이 추모의 묵념을 올렸습니다. ⓒ 임윤수
어디 필자만 상주의 마음이었고, 마음의 시묘살이를 했겠습니까. 살아생전의 노무현과는 상관없이 전국 방방곡곡에 설치되었던 분향소를 찾았던 참배객, 촛불을 움켜쥐었던 시민, 분향소도 찾지 못하고 촛불도 움켜쥐지 못했지만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상주의 마음이었으며, 시묘살이의 통한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마음에 가둬두고, 언제까지나 시묘살이를 할 수는 없기에 49재를 맞아 서대전시민광장에서 열리는 추모콘서트에서 마음의 시묘막을 거두겠다는 생각으로 행사장을 찾았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기 1시간쯤 전인 6시에 찾아간 서대전시민광장에는 아가걸음 같은 바람만 불고 있었습니다. 노란풍선이 띠로 내걸린 잔디광장에 앉아있는 엄마와 아가의 모습은 그 자체가 평화로움이며 아기발걸음 같은 행복한 바람이었습니다. 실바람처럼, 아가걸음처럼 아장아장하게 불던 바람이 행사가 시작될 시간이 되었을 땐 밀물 같은 바람으로 불어옵니다.
▲ 대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차라리 흐느낌이었습니다. ⓒ 임윤수
▲ 핸드피켓은 영정이 되었고, 영정을 든 사람의 가슴에도 시묘막이 있을 겁니다. ⓒ 임윤수
이러다 행사장이 텅 비는 것은 아닌가를 걱정했지만 기우였습니다. 어디 숨어있다 나오는 사람들처럼 비슷한 시간에 여기저기서 꾸역꾸역 몰려듭니다. 넥타이나 옷매무시로 봐 퇴근을 하고 오는 듯 보이는 직장인 무리, 저녁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나온 듯한 어르신들과 아주머니들,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 산책을 나온 듯 편한 복장의 사람들이 전부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보지만 소위 말하는 '꾼'은커녕 데모를 생각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웃집 어르신이며 동네 사람들 모습이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마음은 애잔한 추모였고, 드러내는 표정은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었습니다.
노빠나 노사모, 데모나 시위에는 빠지지 않는다는 '꾼'들의 모습이 보였다면 지나가는 바람, 싱겁고 맥없는 바람으로 느껴졌겠지만 이렇듯 이웃집 어르신들이며 이웃사촌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애틋하고도 절박한 바람이니 머릿결이 섬뜩해질 만큼 진지하고도 강한 바람으로 느껴집니다.
▲ 2000여명의 사람들이 바람이 되려고 모였습니다. ⓒ 임윤수
▲ 바람의 씨앗은 바로 노무현 전대통령님이었습니다. ⓒ 임윤수
정말 법 없이도 살아갈 것만 같은 착한 사람들이 한 사람을 잃고,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공분이 민심의 태풍으로 불 민심의 눈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으니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추모하는 민심, 드러나는 위정에 공분하는 민심이야 말로 천심이라는 생각입니다.
민심이 천심의 태풍으로 불 것
그랬습니다. 사회자까지도 그랬습니다. 살아생전의 노무현과는 별상관이 없었지만 떠나보내고 알게 된 참 가치를 지켜야 하겠다는 생각,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무대에서 부른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에서 메아리 쳤고, 관중석에서 지른 함성은 무대에 걸린 걸개그림에서 울림으로 반사됩니다. 흐느낌 같은 대금연주, 박장대소 같은 노래, 웅변 같은 북소리가 들릴 때마다 마음에 입고 있던 상복(喪服)을 하나둘 벗었습니다. 모두가 어우러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를 때쯤엔 움막처럼 짓고 마음의 시묘막까지도 거뒀습니다.
▲ 바람은 어느새 촛불이 되어 어둠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 북소리는 웅변이고 울림이었습니다. ⓒ 임윤수
봉하마을과 서울 대한문에서 불고, 부산대학교와 서대전시민 광장에서 불던 바람, 아장아장한 아가의 걸음마에서도 일고, 머리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의 가슴에서도 일던 바람의 씨앗은 바로 바보 노무현 대통령님이었기에 바람의 씨앗이 된 숭고한 당신의 자취는 내년에도 10년 후에도, 당신이 꿈꾸던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지 겨레의 가슴과 민족의 양심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불 것이라 확신합니다.
마음의 시묘막까지 다 거두고 일상으로 돌아서려는 순간, 누군가가 '노무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하고 비명처럼 지른 소리가 들려오니 어느새 눈 물 한 방울 찔끔 흐르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동영상 끝부분을 들어 보십시오. 그 애절한 외침은 님의 눈에도 눈물 방울로 맺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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