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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다 괴로운 질병, 백반증의 공포

평생토록 형님을 괴롭힌 백반증

등록|2009.07.13 11:17 수정|2009.07.13 11:17
남들에게 공개하기 꺼리는 가족들의 비밀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남한테 말하기 조금 민망한 이야기가 있다. 형님의 '백반증'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게 뭐지?'라고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백반증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별 일 아닌 것 가지고 뭐 그래'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직접 겪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렇게도 여겨지지 않는 백반증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주는 질병. 이 병이 형님의 인생을 엉망으로 망쳐버렸다. 내 형님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식으로 몇 개의 글을 써볼까 한다.

형님이 스무 살 경에 흰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이미 백반증의 기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형도 부모님들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 역시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래서 처음에는 다들 '뭐, 점 정도려니'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형은 모 대학에 입학했다. 1년 후에 군에 입대했다. 그런데 흰 반점이 조금씩 많아졌다. 전염병이 아닌가하고 의심하는 장교들도 있었다. 형이 어딘가를 다쳐서 국군병원으로 호송되었다. 군의관은 전염병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전염이 안 된다는 보장도 딱히 없었다.  당시에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병이었다. 여하튼 형이 다친 허리 문제와 더불어 의가사 형태로 군을 제대했다.

그 때 형님은 한참 꿈에 부풀어 있었다. 백반 정도는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군대만 나오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피부에 흰점이 갈수록 더 많아지자 대학에 복학하지 않았다. 그 때 어떻게 해서라도 대학을 마쳤더라면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불행히도 아버지도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며 인생이 더 꼬이기 시작했다. 그 전철을 형이 그대로 밟고 있다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다. 백반증이 점점 심해지자 사람들 만나는 것 자체를 꺼려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낮에는 외출하지 않았다. 주로 밤에만 다녔다.
치료를 위해 병원이란 병원은 다 돌아다녔다. 누군가 불치병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레이저 치료를 잘한다는 곳이 있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매주 오가며 연고와 먹는 약, 레이저 치료를 병행했다. 하지만 백반증의 증세는 오히려 갈수록 더해갔다.

▲ 백반증에 평생토록 고생한 내 형님 ⓒ 정철상



(내 친형님의 사진. 백반증을 앓은지 30여 년이 다 되어 간다. 목에 흰 반점들이 보인다. 얼굴은 거의 전체가 흰색으로 바뀐 상태다. 주변 사람들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정작 본인은 괜찮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몸 전체가 백반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도 짧은 팔 셔츠를 입고 다니는 것을 못봤다. 백반증이 시작된 이후로 무더운 한 여름이라도 항상 긴 팔 셔츠를 입고 다녔다. 백반증으로 형님의 인생이 완전히 쪼개져 버렸다.)

그래도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병을 고쳐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병원치료가 안 되자, 민간요법을 찾았다. 별의별 것을 다 먹었다. 기억도 못하겠다. 양약, 한방을 다 해도 안 되자 까마귀, 지렁이, 전갈, 뱀 등 별의별 음식까지 다 먹었던 것 같다.

사실 엄밀히 말해 백반증은 전염병도 아니다. 본인에게 건강을 해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멜라닌 색소가 파괴되어 흰 점이 생기는 것이다. 보기에 조금 흉할 뿐이다. 미용 상의 문제일 뿐이다. 주변 사람들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본인만 잘 극복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결코 당사자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든 병이 백반증이다.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사람들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워 극도의 대인 기피증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한 심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마이클 잭슨이다. 왜 그 많은 돈을 가지고 자신의 백반증을 치료하지 못했겠는가. 예전에는 마이클 잭슨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가 백인이 되고 싶어서 수많은 성형을 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그의 백반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어느 정도 이해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런데 그의 죽음 후에도 여전히 이 백반증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백반증에 걸린 당사자가 겪는 고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마음의 상처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흰 점이 너무나 선명하게 온 몸에 번진다. 이 때문에 먹칠로 화장을 해도 지울 수 없다. 결국 마이클 잭슨은 백색으로 화장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백반이라는 것이 모든 피부에 다 퍼져 백인처럼 희게 되어버리면 차라리 좋겠다. 그런데 그렇질 못하다.  흰 점 자욱이  군데군데 남기 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흉물처럼 보이기 쉽다.

형은 '차라리 암이나 걸렸으면 더 좋겠다'고 까지 말을 했다. 그런 병이라도 앓으면 아프기라도 하고, 어쨌든 빨리 죽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사람들이 안타까워라도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백반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아프지도 않고, 어쨌든 남들하고 똑같이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힘을 내야지'하고 마음을 먹지만 계속되는 현실에 주저앉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해서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살아있는 그 자체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소리하지 말라고 꾸지람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었다.

* 솔직히 저 역시 형님을 욕하기도 했습니다. 왜 그깟 병 하나 뛰어넘지 못하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누가 감히 한 사람의 인생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이 처한 환경에 놓이지 않고 말입니다. 저 역시도 부끄러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 사죄의 뜻으로 형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철상의 커리어노트(www.careernote.co.kr)과 다음뷰에게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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