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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세력은 '노무현 정신' 계승주체 아니다"

[풀뿌리 사람들①] 윤난실 진보신당 부대표, '민주텃밭'서 진보정치를!

등록|2009.07.13 16:37 수정|2009.07.13 20:23
'풀뿌리를 가꾸는 사람들'은 지역에서 터를 잡고, 지역의 아젠다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 첫 인물로 민주당의 아성인 광주에서 진보정치를 주창하고 있는 윤난실 진보신당 광주시당 대표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 윤난실 진보신당 광주시당 대표. ⓒ 이주빈




"선거 치르고 나서야 나를 '정치인'이라고 소개하게 됐다"

오랫동안 남의 텃밭으로 불린 땅에 새 씨앗을 뿌리는 이가 있다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새로 뿌린 씨앗이 밭의 토양에 맞는가도 문제지만 새싹이라도 돋을라치면 텃밭의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이가 그걸 그냥 놔 둘리 없기 때문이다. 

헌데 그런 이가 있다. 민주당의 텃밭이라 불리는 광주에서, 정치의식이 타 지역보다 앞서있다고는 하지만 진보정당 소속 국회의원 한 명 없는 광주에서 그는 '진짜 진보정치'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윤난실(44) 진보신당 광주시당 대표(진보신당 부대표도 겸하고 있다). 그는 이른바 '학출(대학을 다닌 후 노동현장에 뛰어든 이들을 일컫는 말)'로 20년 넘게 노동운동의 현장을 누비고 다닌 인물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분당하기 전인 지난 2002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광주광역시의회 의원으로 진출했다.

광주시의회 의원시절 그는 민원인이 가장 많은 의원으로 유명했다. 장애인과 극빈여성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그의 민원인의 태반이었다. 그는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조례' 등 수많은 조례를 발의했다. 그는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인정하는 '일 잘하는 의원'이었다.

지금도 광주에서는 그가 의회에 첫 출석한 날 올린 '다짐 글'이 화제다.   

"의회 첫날, 나는 별로 밥값을 못한 것 같다. 오늘 나는 시민의 세금인 회의수당 8만 원을 받게 될 것이다. 호텔에서 내 돈 내지 않고, 비싼 점심도 먹었다. '밥값' 하는 의원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2002년 7월 9일

그렇게 일 잘하고, 나름대로 유명세를 탄 그였지만 2006년 지방선거에선 9% 차이로 낙선하고 만다. 당시 지역 여론은 '윤난실만큼은 무난하게 당선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실제로 그는 민주당 텃밭에서 32%를 득표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우리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팍팍 좀 밀어주시지 하는 서운함이야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얻은 게 있어요. 선거 때 진짜 공부를 많이 했어요. 공장 들어가서부터 이십 년을 넘게 사람을 만나고, 대중을 만나고 살아왔는데 그제서야 처음으로 대중을 만났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생활현장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는 얘기죠. 그때 깨달았어요. '힘들 때일수록 시민을 찾자, 거기에 힘도 있고 답도 있다'."

윤 대표는 "선거를 치르기 전에는 나를 정치인이라고 스스로 밝히기가 쑥스러웠는데 선거에 진 다음부턴 나를 스스로 '정치인'이라고 밝힌다"고 했다. 그 전엔 줄곧 노동운동을 해왔고, 비례대표 임기가 끝나면 민주노총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니라는 것이다.

▲ 윤난실 대표는 광주지역 진보정치인 가운데 드물게 높은 대중적 인지도와 지지도를 갖고 있다. ⓒ 이주빈




그가 그렇게 새로운 다짐을 하고 뛰어든 정치판은 하필이면 '광주'다. 광주는 민주당에 대한 전통적 지지가 무척 강한 곳이다. 시장부터 구청장까지, 국회의원부터 시의원까지 민주당 일색이다. 적어도 광주에서 민주당은 '만년 여당'임에 분명하다.

"광주를 비롯한 호남이 정치적 선진지라 하지만 보수정치를 벗어나 있지 못합니다. 물론 여기엔 역사적 배경이 있어요. 박정희 정권 이후로 군사독재와 싸워왔던 민주화세력으로서의 민주당 지분이 있는 거죠. 또 호남지역이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정치적 지향 속에서 심한 정치적·경제적 차별을 받아왔다는 점도 민주당에 대한 지지세를 역으로 강하게 만든 측면도 있어요.

하지만 87년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가 직선제 쟁취라는 성과로까지 이어졌다면 광주를 비롯한 호남의 투표경향도 보수 일색에서 진보로까지 나아가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어요. 소선거구제 등이 제도의 한계가 있는 거죠."

"민주당 지방권력 독점이 낳는 가장 큰 폐해는 사람을 키우지 못한다는 것"

윤 대표는 민주당 지지성향의 지속을 "여전히 광주가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 더 확장해가지 못하고 있다"며 뼈있는 말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여러 가지 평가 작업이 새롭게 이뤄지고 있어요. 저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 중 가장 지역주의를 넘어 국민통합을 지향했다는 점에 주목하는데요, 안타깝게도 지역주의 극복은 노 전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자산이긴 했지만 미완의 과제로 끝나버렸습니다. 열린우리당의 실패한 실험이 그 예지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정신계승을 얘기하는 사람이 지역주의 정당 구도를 그대로 놔두고 얘기하는 건 맞지 않다고 봅니다. 지역주의에 의존하는 세력이나 개인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새로운 주체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윤 대표는 민주당의 지방정치 독점 폐해로 "사람을 키우지 못하고, 지방자치가 제대로 서지 못하는" 점을 지적했다. "지방자치는 주민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는 것인데 위임권력을 한 당이 다 독점해 버리니 한 번도 지방권력을 교체해본 적이 없고, 집행과 견제가 한 당에 의해서 이뤄지는 파행적 지방자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영남에서의 한나라당 독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바로 그런 폐해 때문에 일각에서는 기초선거에서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윤 대표는 "근본문제를 봐야 한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당공천의 폐해가 어디로부터 나왔습니까, 정당민주화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은 한나라당·민주당에서 나온 것 아닙니까. 밀실에서 줄 세우기 공천하고 돈 공천하고 무능인사 공천해서 부패정치인이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성문부터 제출하는 것이 맞습니다. 즉 이 문제는 권력획득을 목표로 하는 정당의 정당민주화 측면에서 봐야 합니다.

실효성 문제에서도 기대효과 나오기 힘듭니다. 예전에 정당공천 하지 않을 때도 '내천'을 했습니다. 또 헌법재판소는 기초후보들이 정당 경력사항 등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정당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후보를 공천하지 않을 수 없고, 내천의 근거를 표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MB는 파상적으로 공세하는데 대응은 파상적이지 못해"

내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가 유지되든 폐지되든 민주당 텃밭인 광주에서 진보정치세력이 의미 있는 결실을 따내기엔 아직 힘이 딸린다. 윤 대표는 이 현실을 돌파해가는 길이 "자기생활로 대중을 만나고 생활자체를 바꿔내서 생활공동체를 회복하는 지역 밀착형 생활정치에 있다"고 주장한다. "지역 밑바닥에서만큼은 보수정당보다 경쟁력이 있으니 단기적 승부를 지양하면서 묵묵하게 걸어가자"는 것이다.

그래도 선거는 선거다. 상대는 너무 크고, 진보정치세력은 둘로 쪼개져 있다. 진보정치세력의 후보단일화 요구와 선거연합 등의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상대방(민주당)에 비해 명백하게 힘이 없는데, 상식 수준에서 봤을 때 '니네들 힘을 합쳐라'는 요구가 나오는 거죠. 이 문제는 열어놓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상대가 있는 만큼 함부로 어떻다고 지금 단계에선 얘기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면서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을 함께 해야지 차이를 묻어가면서 가는 부분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진보신당 광주시당 앞에 놓인 네발 자전거. 윤 대표는 이 자전거에 어떤 꿈을 싣고 달릴 것인가. ⓒ 이주빈




광주의 진보정치인 중에서 그나마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윤 대표에게도 지방선거 출마요구가 당 안팎에서 드세다.

"정치인이면 선거에 당연히 나가야죠. 진보신당이 신생정당이고, 복수의 진보정당이 존재한다는 현실과 내년 지방선거가 2012년 대선과 총선의 교두보 선거라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따라서 저의 후보출마를 포함한 선거참여는 당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어요. 특히 우리당으로선 광주에서 단체장을 내야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고민이 깊습니다."

윤 대표는 얼마 전 지역 교육단체들과 함께 여러 가지 이유로 자살을 한 청소년들을 추모하는 사업을 했다.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하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윤 대표가 일을 진행하는 방식은 그렇다. 사안을 중심으로 관련단체나 개인을 모아 집중한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교육·MB악법 등등 파상적으로 공세하고 있는데 우리의 대응은 파상적이지 못해요. 대응도 파상적이어야 하는데 조직을 만드는 방식으로만 풀려고 해요. 너무 경직돼 있는 거죠. 이미 자유로운 시민들은 확장된 사고와 정보를 가지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어요. 지금은 소위 활동가라 불리는 수많은 우리들이 많이 변해야 합니다. 문화적 구태의연과 상상력의 빈곤을 털어내는 것이 시급해요."

진보신당 광주시당 앞에는 꽃을 단 네발 자전거가 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정치인 윤난실'은 당연히 시민들의 지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용산 참사와 MB 악법, 그리고 지역 현안인 옛 전남도청 별관 문제가 1년이 넘도록 지지부진한데도 정치권이 나서지 않자 한 사찰 앞에서 "시민들에게 죄송하다"며 그는 단식농성과 참회의 108배를 했다.

그가 물었다, "제가 오버한건가요?"
이제 광주시민이 대답해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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