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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꼭 '개띠'허고 결혼허야 헌다!"

복날(初伏)에 생각해 보는 '개띠와의 인연'

등록|2009.07.14 11:06 수정|2009.07.14 11:06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고, 비가 많이 내려서 온갖 작물이 잘 자란다는 소서(小暑), 대서(大暑) 절기입니다. 보신탕이 자주 화두에 오르는 철이기도 한데요. 보신탕 얘기를 하려면 "나는 '개'하고 특별한 인연을 타고 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행복한 개 가족’. 비록 개 가족이지만, 다복하고 어미가 믿음직스럽게 보여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 조종안


저는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개인데요. 서양에서 들여온 '애완견'보다는 '똥개'든 '진돗개'든 '삽살개'든 '토종개'를 더 좋아합니다. 특히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바구니에 담아와 키우던 강아지 '메리'는 학교에 다녀오면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기 무섭게 찾던 친한 친구였지요.

그렇게 친했던 '메리'가 어느 날 도둑이 던져준 약을 먹고 죽어 가슴을 아프게 했는데요. 동네 친구들과 들녘에 묻어주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울면서 절을 하던 그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그 후로는 강아지를 예뻐하면서도 기르지는 않습니다.

누님 넷 중에 가장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막내 누님(64세)도 개띠인데요. 어려서는 여름성경학교에 함께 다녔고, 사춘기 때는 친한 친구처럼 흉허물없이 지내면서 저와 제 친구들에게도 무척 잘해주었습니다. 정이 얼마나 깊이 들었는지 누님 결혼식 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눈물을 흘렸으니까요. 지금도 옛정을 잊지 않고 안부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당부했던 결혼 상대도 '개띠'

친구들보다 일찍 사업을 시작했던 저는 총각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민도 털어놓으면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지혜롭고 편한 어머니였지요. 그래서 잠자리는 그날에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하고, 상의하는 자리가 됐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작심한 듯 입술을 한 번 다물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하더군요.

"총각점쟁이도 그러고 해망동 할머니도 그러는디, 너는 결혼을 늦게 헐수록 좋고, 개띠를 만나야 잘 산다고 허드라, 그릉게 쫌 지달렸다가 꼭 개띠하고 결혼허야 헌다. 남자는 첫째가 처복이 있어야 허고, 늘그막 팔자가 좋아야 헝게. 그리고 연애를 허드라도 이왕이믄 궁합이 맞는 개띠허고 허능게 좋고···."

"가만있자, 그르믄 나허고 8년 차이니까 지금 중학생? 아니 고등학교 1학년이나 되겄는디, 내가 서른 살을 먹어도 각시는 스물두 살밖에 안 되겄네, 하이간 나이는 그렇다고 치드라도, 어느 세월에 그때까지 기다린다요. 답답허고만···."

은행에 입사한 친구가 대리로 승진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사관학교를 졸업한 동창이 대위로 진급하는 날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던 시절에 서른 살까지 5년은 '지루함' 그 자체였습니다. 지금이야 오십 대 초반이 되어 황혼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철없는 여학생으로만 보였으니 답답할 수밖에요.

"야가 승질도 급허기는, 애기 잘 낳고, 잘 살라고 허는 얘긴디 그것도 못 지달리냐. 하이간 너는 꼭 개띠를 만나야 헌다. 다 너 좋으라고 허는 얘깅게, 답답허드라도 참고 지달려야 헌다. '끝이 좋으믄 다 좋다'는 말도 있잖냐···."

"맞는 말인디, 그렇다고 막내 누님 동갑 허고 결혼헐 수는 없는 일이고, 늙어서 애들 허고 살라는 얘긴디, 쪼잔 허기도 허고, 챙피혀서 어떻게 사냐 그거요. 그리고 만나는 여자마다 무슨 띠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잖요. 그렇다고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한티 쫓아가서 결혼을 다짐받을 수도 없는 노릇잉게 엄니가 한 번 골라보셔유."

요즘은 네 살이 아니라 여덟 살 위인 여성과 결혼해도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축복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누님과 동갑인 여성과의 결혼은 흉이었으며 동네 말쟁이 아줌마들의 입만 즐겁게 해줄 뿐이었습니다.  

"일요일이믄 아가씨들 허고 등산도 댕기고, 점방(가게)으로 찾어오는 여자들도 많드만, 꼭 노인네가 나서야 허겄냐? 참, 요새 전화 걸려오는 거 보믄 사귀는 여자도 있는 모양이든디, 지가 데리고 사를 각시 하나 지대로 못 골로고 한심허다 한심혀!"

"참, 엄니도, ㅇㅇ은행 댕기는 여잔디 우연한 기회에 알게 돼서 사귀고는 있지만, 결혼헐 사이도 아니고 개띠도 아녀유. 골치 아픈 게 잠이나 잡시다. 인연이 있으믄 어디서든 만나겄지."

"알었다, 자야지. 근디 지금까지 헌 말은 가시로 듣지 말고 명심허야 혀 꼭···."

1974년이 저물어가는 12월 어느 겨울밤 잠자리에서 나눴던 대화인데요. 그때는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남자는 27세 여자는 23세가 결혼 적령기였던 시절에 여덟 살 아래 여성과 결혼해야 좋다고 하니까 어이가 없고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요. 

훗날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된 큰 누님도 한가할 때면 손가락으로 육십갑자를 꼽으면서 "너 한티는 토끼, 말, 개처럼 발이 네 개 달린 짐승 띠를 타고난 여자가 좋은디, 그중에서 '개'띠는 다른 것 따질 필요 없이 궁합이 좋다!"고 했습니다. 집에 오는 손님들까지도 개띠 여자와는 묻고 따질 필요 없이 결혼하라고 권하니까 정말 그럴 것 같더군요.  

어머니 당부는 첫째가 개띠 여성을 만나 결혼하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되도록 늦게 결혼하라는 것이었는데요.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개띠와는 거리가 먼 호랑이띠(동갑) 아내를 만나 티격태격하면서도 그런 대로 잘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 당부를 의식해서라기보다는 살다 보니까 결혼이 늦어졌는데요. 어쨌든 두 가지 당부 중 하나라도 지켰고, 살아생전에 며느리(아내)를 무척 좋아하셨으니 후레자식은 면했다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금반지나 다이아몬드계를 조직해서 제가 운영하는 가게에 이익을 주었던 아주머니 중에도 개띠가 두 분 있었고, 은행이나 동호회모임에서 친절을 베풀어주는 아가씨 중에서도 개띠를 여럿 봐서 그런지, 모르는 여성이 개띠라고 하면 반가운 마음부터 앞서더군요. 

결혼을 해서도 개띠 여성들과 즐겁고 의미 있는 만남을 경험했고, 7-8년 전에도 인터넷에서 '개장사'라는 아이디를 가진 누리꾼을 만나 재미있는 추억을 남겼는데요. 미신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날들을 반추해보면 개띠와는 상당한 인연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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