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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으로 재미보겠다? 국민은 속지 않는다

[주장] 디도스 관련 국정원의 보고를 보면서

등록|2009.07.14 12:10 수정|2009.07.14 12:10
1986년 9월 14일 김포공항 청사의 어느 쓰레기통에서 폭발물이 터져 다수의 사상자가 났다. '86 아시안게임 개막을 코앞에 둔 시점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정부의 발표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시안 게임의 성공적 개최를 방해하기 위한 북한의 테러 공작이었단다. 국민은 그렇게 믿었다. 북한의 야욕에 울분을 토하며 똘똘 뭉쳐 아시안 게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아시안 게임이 끝날 때까지, 아니 지금까지, 그날 발생한 김포공항 청사의 폭발물 사고는 누구의 소행이었는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도 언론도 한 마디 언급이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어느 누구 한 사람 소환되거나 체포된 사실이 없다.

30년 간 들어온 '내년이 위기'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반공을 국시로 내건 정부는 매년 안보를 들먹이며 국민들의 알 권리를 묵살했다. 10·26 이후 들어선 전두환 군사정권 역시 그 전대의 악습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긴급조치가 그랬고, 위수령이라든가 비상계엄이 그랬다. 모든 것은 북한의 남침 위협 탓이었다. 그렇게 30년 동안 북한은 우리에게 주적이었고, 위협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해마다 북한의 남침 가능성이 있는 '내년이 위기'였다.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이런 국면은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며 일대 전환을 맞게 된다. 남북의 정상이 포옹을 하고 샴페인 잔을 부딪힌다. 이제 북한은 적이 아니라 한 민족, 한 겨레가 되었다. 이는 노무현의 참여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0년 동안, 서해 교전과 같은 위험 상황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의 동지이자 민족이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지난 30년간 되풀이 되던 북풍이 다시 불어온다. 아니 그러한 북풍의 조짐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 국정원이 지난 6월 22일부터 진행한 '간첩 및 좌익사범'을 색출해내는 이벤트. ⓒ 국정원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DDoS가 북한의 공작이라고?

국가정보원은 지난 7월 10일 인터넷 대란을 일으킨 분산서비스 거부(DDoS·디도스)에 의한 사이버 테러를 북한 인민군 산하의 사이버 전쟁 전담 부대가 주도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국회에 보고했단다. 사실 그러한 보도가 나오기 전부터 국정원 혹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한 언론의 보도는 DDoS와 관련하여 북한 혹은 친북세력 배후설을 들먹였다.

만일 그 보도가, 그리고 국정원의 보고가 사실이라면 치를 떨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확하지 않은 추측성 보고라는 사실이다. 왜 사실로 확인도 되지 않은 것들을 퍼뜨려 국민들을 호도했을까. 그렇게 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는 한결같이 '북한이 배후라는 어떠한 증거도 지금까지는 밝혀진 것이 없다'는 데에도 우리의 국정원은 북한의 공작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보고를 뒷받침하기 위해 북한 해커의 아이피라든가 북한의 총참모부 정찰국 소속의 사이버 전쟁 전담 부대라는 110호 연구소를 들먹인다. 그런데 이러한 근거들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DDoS가 북한의 공작이라는 사실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사실적인 정황 증거를 들이대며 전혀 관련이 없는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강조하는 과정을 보면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국정원과 언론의 보도는 노무현의 죽음을 떠올려

소위 말하는 재벌 서열 600위쯤에 해당하는 회사가 국세청의 집중 감사를 받았다. 그렇게 몇 달을 조사한 끝에 밝혀낸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뇌물을 받았다는 보도이다. 검찰이 기소하기도 전에 이러한 소식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인들, 그리고 가족들이 소환되었다. 재벌 10위 안에 드는 기업이 아니라 꼴랑 600위쯤에 드는 기업에 대한 감사가, 지방 지청의 조사가 아니라 국세청 본청 차원의 조사 결과로 검찰로 넘겨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조사과정에서 나오는 피의 사실들은 한껏 부풀려져서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박연차 전 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관계로 볼 때 이는 뇌물로 볼 수 없다는 일부 검사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포괄적 뇌물, 명품 시계란 단어가 나타났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뇌물을 받았다는 보도가 뒤를 이었다.

만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서 재판을 받고 대법원까지 갔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 두 사람의 관계, 임기 말이라는 시기, 송금 방법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에 대가를 바라고 건넨 뇌물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억측인지는 몰라도 대법원 판결은 무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2, 3년이 지나서의 일이다. 그리고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도덕성을 제일의 가치로 내세웠던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이미지는 물론이요 자존심 모두가 시정잡배마냥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후의 일일 것이고, 그렇게 받은 상처는 도저히 치유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북풍, 이제 장난 그만치자

야당을 비롯한 사이버 전문가들이 반론을 제기해도 꿈쩍 않던 국정원이 지난 11일 드디어 꼬리를 내렸단다.

분명 국정원은 지난 7월 10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는 이번 DDoS 공격에 대해 '한국과 중국, 일본, 미국, 과테말라 등 19개국의 92개 IP를 통해 사이버 테러가 감행된 것으로 파악한다'고 밝혔다. 또 19개국에 북한은 포함돼 있지 않지만 '북한 또는 북한 추종세력이 감행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더니 11일에는 대규모 '사이버 공격' 배후와 관련, '이번 사이버 공격의 배후가 북한이라는 여러 가지 증거를 가지고 정밀추적 및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아직 북한의 소행임을 최종 확인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단다. 또한, '북한 해커' IP로 지목된 '윤모씨'의 관련성을 한나라당에 보고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선 '앞서 나간 보도'라면서 '언론의 신중한 보도를 당부한다'고 했단다.

보도 내용을 보면 아직도 북한이 배후라는 심증을 버리지 못하고 추적 중이란다. 국내외에서 들끓는 반론에 슬쩍 꼬리를 내렸을 뿐 아직도 고집을 피우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리고는 '언론의 신중한 보도를 당부'한다고 한 발 물러선다.

필자는, 지난 세월 그리고 현재까지 북한의 행태를, 반공법이 아니더라도 아니 빈말로라도, 옹호한다거나 그들의 체제를 찬양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그러한 북한의 행태를 빌미로 국내 복잡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북한을 지목하여 책임을 전가하고 국민들을 호도하는 정부의 행태는 비판하고 싶다.

이번 DDoS의 배후가 북한 혹은 친북세력이라는 보도는 정부의 얄팍한 꼼수를 보는 느낌이다. 그렇게 국민들을 호도해서 북한을 주적으로 만들어 놓고, 이미 지난 세월이 되어버린 냉전 체제를 끌어들여 무엇을 얻으려 하는 짓인지 안타깝다. 이명박 정부가 그리고 보수 세력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며 비판한 그 세월 동안 우리 국민들의 민주의식, 그리고 북한에 대한 시각 나아가 정치적 꼼수를 판단하는 능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사실을 이명박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때만 되면 불거지는 북풍, 이제 국민은 속지 않는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양치기 소년 우화에도 나타나듯이, 정부가 진실을 말했을 때에도 국민들이 믿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북풍과 같은 장난은 이제 제발이지 그만 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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