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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부자의 혈통은 서로 달랐다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드라마 <선덕여왕>

등록|2009.07.15 10:58 수정|2009.07.15 10:58
"부자의 혈통이 서로 다르다"라는 말을 들을 때에, 우리는 크게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머리에 떠올릴 것이다. 하나는 다른 남자의 친자인 줄 '모르고' 자신의 호적에 올린 경우이고, 또 하나는 다른 남자의 친자인 줄 '알면서' 자신의 아들로 입양한 경우일 것이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주요인물로 등장하는 김유신 부자 즉 김서현과 김유신의 혈통은 서로 달랐다. 그렇다면, 김유신 부자는 위의 두 가지 중에서 어디에 해당할까?

'유감스럽게도' 김유신 부자의 경우는 두 가지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김유신은 김서현과 만명부인의 사이에서 태어난 김서현의 친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김서현과 김유신의 혈통이 서로 달랐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 <선덕여왕>에서 '김유신'으로 분한 엄태웅. ⓒ MBC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매우 간단한 문제인데도, 우리가 '김유신 부자의 혈통이 서로 달랐다'라는 이 명제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머릿속에 부계 중심의 사고방식이 확고하게 입력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들은 아버지의 혈통을 따르는 게 순리'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위의 명제를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모계를 중심으로 개인의 혈통을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김서현의 어머니와 김유신의 어머니가 서로 혈통을 달리했다고 생각하면, 다시 말해 김유신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서로 혈통을 달리했다고 생각하면, '김유신 부자의 혈통이 서로 달랐다'라는 명제에 대해 '이게 무슨 말인가?'하고 호기심을 갖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할머니와 어머니의 혈통이 서로 다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게 아닌가?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도 부자간에 혈통이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현대 한국사회는 기본적으로 부계 중심으로 개인의 혈통을 판정한다. 모계를 기준으로 개인의 혈통을 판단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혈통이 다르다고 해서 부자간의 혈통이 서로 다르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의 배경인 신라사회에서는 개인의 혈통을 판단할 때에 부계 외에 모계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은 어떤 경우였을까?

그것은 할머니나 어머니의 한쪽 혹은 양쪽이 왕비혈통인 경우를 가리킨다. 이런 경우에는 왕비 혈통을 타고났다는 요소가 개인의 신분과 정치활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할머니나 어머니의 혈통을 반드시 따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이것은 주로 왕비혈통의 할머니나 어머니를 둘 수 있는 신라 지배층에 관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대원신통'인 김서현과 '진골정통'인 김유신

그 같은 경우에 해당한 사람들이 바로 김유신 부자였다. 위작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비해 신라사회의 실상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에 따르면, 김유신의 경우 할머니와 어머니가 모두 다 왕비혈통이었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신라사회의 왕비혈통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신라사회에는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이라는 두 개의 왕비혈통이 있어서 이 두 혈통에서만 왕비가 배출되었고 두 혈통은 부계가 아닌 모계로만 계승되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대원신통 혹은 진골정통의 어머니를 둔 사람이면 아들이건 딸이건 간에 이런 신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왕비혈통은 모계를 통해서만 계승되기 때문에, 그 아들이 낳은 자녀들은 왕비혈통을 승계할 수 없는 데 비해 그 딸이 낳은 자녀들은 왕비혈통을 계승할 수 있었다. 김유신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모두 다 이런 왕비혈통의 계승자들이었다.      

그런데 김유신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서로 계통을 달리하는 왕비혈통에 속했다. <화랑세기> 제11세 풍월주 하종 편에 따르면, 김유신의 할머니 즉 김서현의 어머니인 아양공주(진흥왕의 딸)는 대원신통이고, 김유신의 어머니인 만명부인(진평왕의 어머니인 만호태후의 딸)은 진골정통이었다.

여기서 대원신통인 아양공주의 아들인 김서현은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아 역시 대원신통의 신분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김서현은 딸이 아닌 아들이기 때문에 이 혈통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김서현이 가진 대원신통이란 혈통은 그의 아들인 김유신에게는 계승되지 않았다. 

만약 김서현이 대원신통의 여인과 결혼했다면 김유신도 이 여인의 혈통을 이어받아 대원신통이 되었겠지만, 김서현은 진골정통인 만명부인과 결혼했기 때문에 김유신이 대원신통의 신분을 가질 여지는 없었다. 

한편, 김유신은 진골정통인 만명부인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역시 진골정통의 신분이 될 수 있었다. 김서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김유신 역시 진골정통의 여인과 결혼하지 않는 한 그의 자녀들이 진골정통의 신분을 가질 수는 없었다. 

이처럼 김서현의 어머니와 김유신의 어머니가 서로 다른 왕비혈통에 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김서현과 김유신의 혈통이 서로 달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왕비혈통은 아들이 아닌 딸을 통해서만 계승

▲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공(왼쪽) ⓒ MBC


물론 부계를 기준으로 할 때에는 김서현이나 김유신은 모두 다 가야계라는 동일 혈통의 계승자들이 된다. 하지만, 두 부자가 모두 다 왕비혈통의 여인을 어머니로 두었기 때문에, 이들의 신분을 파악할 때에는 부계뿐만 아니라 모계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부계를 기준으로 할 때는 동일 혈통이지만 모계를 기준으로 할 때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김유신 부자는 혈통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두 부자의 혈통이 서로 달랐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신라 지배층에 국한된 이야기다. 왕비혈통을 가진 할머니나 어머니를 둔 신라 고위층에 국한된 이야기이므로, 이를 신라사회 일반의 이야기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어머니의 왕비혈통이 아들이 아닌 딸을 통해서만 다음 대(代)로 계승되었다면, 아들의 경우에는 왕비혈통의 아들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를 띠었겠는가?'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았다. 왕비혈통의 어머니를 둔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혈통 못지않게 어머니의 혈통도 현실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띠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런 경우 그 아들의 자녀들에게는 왕비혈통이 계승되지 않지만 그 아들 자신에게는 어머니의 신분이 전해졌다.

그러므로 이런 아들은 자기 대(代)에 한해 대원신통 혹은 진골정통의 신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왕비혈통을 가진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요소는 그 아들의 정치적 성장이나 활동에도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그 점을 입증할 만한 사례로서 <화랑세기> 제10세 풍월주 미생랑 편의 설명을 들 수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미생랑(미실의 동생)이 풍월주로 재임했던 585~588년 시기에 화랑도 안에는 5개의 분파가 있었다. 그중에서 세 개의 파벌은 대원신통파·진골정통파·가야파라고 불렸다.

이는 대원신통이나 진골정통의 어머니를 둔 남자들의 경우에 그들의 모계혈통이 정치적 파벌을 결정하는 기준 중 하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남자들의 경우에는 아버지의 혈통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혈통도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좌우하는 핵심요소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유신 부자의 경우도 바로 그러했다.

김서현과 김유신은 부계혈통을 기준으로 하면 동일한 가야파에 속하지만, 모계혈통을 기준으로 하면 김서현은 대원신통파에 속하고 김유신은 진골정통파에 속했다. 따라서 모계혈통을 기준으로 할 때에는 김서현과 김유신은 서로 경쟁적인 정파에 속하게 되는 셈이었다. 물론 이런 경우에 가야파인 동시에 진골정통파인 아들은 대원신통파와 대립할 때에 자신의 아버지도 대원신통파인 점을 감안하여 여러 가지 복합적인 계산을 하게 될 것이다.

'모계혈통' 내용을 잘 살리지 못한 <선덕여왕>

부계를 기준으로 혈통을 판단하는 현대 사회와 달리, 부계뿐만 아니라 모계도 함께 고려하여 혈통을 판단하던 신라 지배층 사회에서는 위와 같이 한 개인의 혈통에 복합적 요인이 혼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신라 지배층 인물들의 혈통을 판단할 때에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에, 7월 14일에 방영된 드라마 <선덕여왕> 제16부는 이 같은 신라 지배층 사회의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제16부에서는 "가야세력을 서라벌 백리 밖으로 내쫓지 않으면 3일 안에 월식이 일어날 것"이라는 미실의 예언 때문에 가야세력인 김서현과 김유신이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제16부에 방영된 미실의 예언은 물론 허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정말로 현실화되었다면, 김유신 부자는 드라마에서보다도 훨씬 더 미묘하고 복합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두 부자의 모계혈통이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같은 가문의 위기 앞에서 부계혈통뿐만 아니라 모계혈통도 이들의 운명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점이 제대로 다루어질 수 없었다.

김유신 부자가 가야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계만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 국한된 것이다. 모계를 기준으로 할 때에는, 김서현은 미실과 같은 편인 대원신통이 되고 김유신은 미실과 경쟁적인 진골정통이 된다. 그러므로 부계혈통을 기준으로 할 때에는 김유신 부자가 모두 다 똑같은 위험에 처하게 되지만, 모계혈통을 기준으로 할 때에는 김서현과 김유신의 운명이 다소 엇갈리게 된다.

가야파인 동시에 대원신통파인 김서현은 '가야파이기 때문에 위험'해지는 동시에 '미실과 같은 편인 대원신통파이기 때문에 극적으로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된다. 이와 달리, 가야파인 동시에 미실과 경쟁적인 진골정통파인 김유신의 경우에는 가야파라는 점이 확실히 불리한 요소인 데에 비해 진골정통파이라는 점은 불리할 수도 있고 유리할 수도 있다. 미실이 진골정통파를 경계했다는 점에서는 불리했다고 할 수 있고, 진골정통파가 김유신을 도울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에서는 유리했다고 할 수 있다.

부자간의 입장이 이처럼 미묘하게 달랐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김유신 부자는 서로 간의 엇갈린 운명에 비애를 느끼면서 모두의 생존을 기약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내려고 고심하게 될 것이다. 이들 부자가 이처럼 서로 다른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은 두 사람의 어머니가 서로 다른 혈통에 속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내용은 분명히 픽션이지만 그런 내용이 정말로 현실화되었다면 김유신 부자의 운명이 이렇게 엇갈렸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위작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를 근거로 미실을 둘러싼 모계 중심 가족질서를 보여주는 등의 파격적 시도를 꾀하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이 드라마의 핵심인물 중 하나인 김유신 부자와 관련하여서는 기존의 부계 중심 세계관에서 과감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이 현대 한국사회의 속박을 과감히 깨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고대 한국사회의 진면목을 소개해주는 드라마가 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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